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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Feb 13. 2023

엄마의 저녁

"여보세요~?"


정적을 깨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7호선으로 환승을 해야만 하는 구간이라 늘 거쳐 가야 하는 이곳에서 들리는 심상치 않은 소리. 하필 바로 옆자리에서 내 귀에 대고 말하는 듯 해 불편했다. 첫마디만 들어서는 오늘 하루도 별로 좋은 일이 없었는지 왠지 모를 짜증이 배어 있는 목소리에 함께 타고 있던 내 귀는 쫑긋 했다. 늦은 오후에 한가한 지하철이라 휴대폰을 보고 있던 내 귀는 옆자리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졌다. 


딸: 응 엄마 왜?

엄마: 오늘 늦게 들어올 거니?

딸: 어 저녁에 들어갈 건데 왜?

엄마: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저녁에 늦지 않으면 저녁 같이 먹자"

딸: 아니, 없는데?

엄마: 그러면 너 좋아하는 팽이버섯 넣어서 된장찌개 해둘게 응?

딸: 7시쯤에 들어갈게..


대화 내내 이 여성분은 "왜, 왜, 왜"를 제일 편한 단어로 아주 짧고 의사전달이 확실한 용어만 사용한다. 그래도 드는 생각은, "도대체 뭐지? 시끄럽지만 마음 따스해지는 저 대화는 뭐지?" 세상에서 나 만큼이나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그분 '엄마'와 통화하는 모습이라서 그런가? 평소 같았으면 "좀 조용히 해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타이밍인데 그저 그녀의 대화를 살짝 엿들으며 '이 여자의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는 짭조름할까 아니면 연하면서도 시원한 맛일까'라며 혼자 된장 뚝배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그냥 생각나는 한 마디는 "아~ 맛있겠다." 


요즘처럼 대중교통에서 타인의 편안함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 전철 안에서 자기 편한 맛으로 쉽게 떠드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서로의 개인의 편안함을 지켜줄 수 있는 지하철. '여보세요'라는 귀찮은 듯한 전화받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엄마"라는 단어가 내뱉어지는 순간. "나 된장찌개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그 한 마디에 나는 그저 말없이 긴장감이 풀리는 데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오늘은 늦지 않고 집에 돌아가서 엄마게 해주신 뜨끈한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내려놓기를 살짝 기원했다. 사실 스피커폰 건너편에서 하는 말이 잘 들리지는 않았다. 그저 '엄마'라는 한 마디와 '된장찌개'만이 줄 수 있는 대화의 안정감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있고, 또 바라보고 있는 엄마가 아니면 누구였을까. 괜스레 나도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대중교통 안에서 전화를 큰소리로 하는 사람이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사회에서는 나 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일상도 존중해 줄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 왔다. 반가우면서도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 엄마라는 한 마디 정도라면, 조용했던 지하철 안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시끄러워하든지 상관없다는 듯한 전화받는 태도이더라도, 이 정도는 이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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