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번 버스 맞나요?"
"네 맞습니다."
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젊은 남성은 부리나케 질문을 하고 자신이 타야 할 버스임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적절한 수준 이상으로 오른발을 벌려 버스에 올라탄다. 요즘 버스정류장에는 "405번 버스가 곧 도착합니다."라고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어서 그런지 남자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움직일 준비를 한다. 물론 이 남성이 탑승하기도 전에 급한 마음에 불을 끄지 못한 몇몇의 남녀 승객은 새치기하듯 먼저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은 나의 흔한 아침 풍경이다.
그 남자는 시각장애인이다. 톡 톡 톡" 지팡이로 보도블럭을 두두리며 버스 정거장 근처에 다다르면 "여기가 405번 정거장 맞나요?"라고 듣는 대상이 누군지 모르게 일단 말한다. 큰 목소로리로. 출근 지하처를 타려면 딱 두 정거장을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내가 기다리는 정류장은 작은 2차선 도로에 펫말만 있는 많지 않은 사람이 기다리는 정거장이다. 그곳에는 나와 늘 같은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하얀색의 긴 지팡이를 짚고 있는 앞이 안 보이는 탑승객. 또 같은 장소에서 탑승해서 같은 장소에서 내리는 남자는 큰 서류가방을 메고 출근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이 남자를 알게 된 지도 어느덧 반년이 된 것 같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럴까. 이날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지팡이 소리가 나고 잠시 후 익숙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405번 정거장 맞나요?", "네 맞아요!" 나도 모르게 바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뿐만이 아니라 버스 표지판 인근에 있던 몇몇이 약속이나 한 듯 대답했다. "405번 버스 오면 다시 알려 줄게요" 내 앞에 서있는 중년 남성은 아예 이분의 손을 잡아버린다.
"아저씨 405번 버스 맞나요?"라고 큰 소리로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버스기사님께 물어보는 그 시각장애인의 모습은 활기찼다는 게 기억난다. 가끔은 조금만 기다렸다가, 이분이 탑승하고 올라타도 될 텐데, 아침 출근시간에 작은 온정에 신경 쓸 만한 여유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나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그 시각장애인이 나에게 다가오기 전에 도망치듯 버스에 올라타서 가장 뒤쪽 자리로 줄행랑을 쳤던 기억도 있다.
"자신의 일터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게 힘들지 않을까" 또 "아침 출근길 자체가 전쟁인데, 이분한테는 더 힘들겠지"라는 걱정의 생각이 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함께하다 보니 사람들은 그 상황에 익숙해졌나보다. 익숙해지니 사람들은 그 남성을 탑승에서부터 하차에까지 함께 해주는 것이다. 어차피 같은 버스에 올라탈 텐데 뭐 기다리고 할 게 뭐 있을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내 귓가를 톡톡 두드렸던 지팡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쓸데없는 걱정 같은 게 들기도 했다. "이분 오는 길을 잃어서 늦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 "오늘은 출근하지 않나"라는 남에 일에 이제는 회사의 근태문제까지 걱정하게 된다. 왠지 모르게 걱정되는 하루 내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고 다음날, 다시 보게 된 "톡 톡, 톡"소리와 다시 나타난 그 남성이 왜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을까. 나 혼자 그냥 얼굴이 확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반가울까. 이런게 일상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