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미국 텍사스 남부지역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엘파소'라는 지역에 회사 일로 주재하고 있을 때였다. 슈퍼나 편의점을 가듯 차를 타고 저 앞에 있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멕시코 '후아레즈'인 지역, 나는 엘파소에서 거주하고 회사의 공장은 후아레즈에 자리 잡은 재미있는 일상이었다.
미국에서 멕시코로 축근해 현지 직원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 마약문제로 범죄가 많기로도 소문나 있던 후아레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는 웃으며 무엇이든 대화하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한 번은 손녀딸이 태어났다며 연일 즐거워하던 동료가 이런 말을 하더라. "미스터 한, 행복은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거야."
나는 언젠가 SNS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적은 없었다."라고 말이다.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그 생각이 왜 갑자기 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이었고, 또 사실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나가고 아이가 웃는 모습에 덩달아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내를 보면서 그런 행복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요즘 모든 게 다 그렇게 행복을 느끼고 있다.
알고 보면 그렇게 대단한 변화를 가진 것도 아닐 텐데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의 잊었던 여유를 돼찾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새로운 행복의 씨앗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발견하면서부터일까.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해 본다. 그냥 있었던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축복받은 존재임은 틀림없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는 생명의 도움이 필요한 지구촌 곳곳, 그리고 우리 주변의 환경이 존재하겠지만, 일반적인 우리의 삶의 출발은 말 그대로 축복이지 않는가. 삶에 지치고, 또 힘들어서 내가 말하는 행복의 존재설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 당연한 반박일 수 있고 또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것 하나만 말해보고 싶다.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한다고.
그런데 행복을 좇아 나서는 듯한 그 '행복을 추구하다.'라는 말이 어쩌면 행복하지 않지만 행복해지고 싶다는 불쾌한 말로 이어지는 듯하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게 아니겠지만 말이다. 멕시코 후아레즈에서 만났던 동료가 나에게 던졌던 행복의 존재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요즘에서 다시 생각난다. 어떻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정보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런 교육과 정보들로는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다.
그저, 지금의 삶에서 여유를 찾아 나설 수만 있다면 그때부터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순간에 호흡이 되돌아오면서 내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또 나 만큼이나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을 인정하게 되면서 힘이 꽉 차게 들어갔던 어깨의 근육은 긴장을 풀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의 긴 호흡은 이미 세상이 나에게 주었던 행복의 존재를 느끼게 되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행복은 갈망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야."
글쎄 어렵게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만한 그 이야기, 그때는 잘 몰랐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던 그 말이 요즘에 떠오르는 건 어쩌면 나 역시도 행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