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or 헤어샵

by 한상권

삭둑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타일 바닥에 떨어지는 첫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긋이 눈을 감고 그 신랄한 가위질 소리에 취해버린다. 가위질 소리에 심취하는 내가 정신 온전한 손님일까 걱정은 안해도 된다. 나는 그저 미용실이 나만의 휴식처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미용실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바쁜 일상 속에 내 마음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니, 그곳이 미용실이고 요즘 말로는 샵이다.


내가 머리 자른 걸 좋아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내 머리를 마음껏 지지고 볶는데 그것이 온전한 내 모습을 찾아내기 위한 춤사위처럼 느껴져서이다. 분무기로 이곳저곳 간간이 배어들도록 물을 뿌리고 난 후 가장 아래 부위부터 머리를 잘라버린다. 정말 시원하다. 케케묵은 두피의 때가 한 번에 밀려 없어지는 느낌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는지 요즘 미용실은 예약을 해야 한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내가 가고 싶은 시간에 가서 모서리가 말려있는 오래된 잡지를 들여다보며 앞에 여성이 파마를 약품 처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렇게 내 차례를 10분이면 운이 좋은 것이고, 1시간 2시간도 기다려 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이제 옛 티브이에서 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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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을 한 시간에 맞추어 자동문에 들어서자마자 스텝이 이름을 물어본다. 곧바로 사전 머리 감기를 간단하게 하고 안내받은 거울 앞에 앉으면, 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한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때 나는 솔직하고 세상 피곤해하는 내 스타일과 딱 맞아떨어지는 말투로 심정을 말한다. "가장 멋지게 해주세요."


나는 미용실에 들어서서 나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 질문 자체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반기지를 않는다. 누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미용실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미용사'라는 호칭이 사라진 이 시점에 '디자이너'라는 것은 창의를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멋을 연출해내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그만큼 해준다면 '뭐 하러 디자이너에게 맡길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멋진 머리만을 부탁하고 두 눈을 감아버린다. 머리 손질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속셈이 아니라, 그저 피곤해서 잠시 쉬려는 의도이다. 이때 내 머리에 맞닿는 가위와 디자이너의 손사위에 나는 스스로 피곤함을 풀어 헤쳐버린다. 잠시 앉아서 졸아도 그게 내가 취할 수 있는 휴식의 자세라면 앉아있는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는 솔직히 미용실에 쉬러 간다. 머리 자를 때 잠시, 그리고 머리 감을 때 잠시 그렇게 두 번에 걸쳐 두 눈을 감고 숙면을 취한다. 그게 가능할지 싶냐마는 나는 정말 편하게 쉬고 나온다. 내 머리를 자른 디자이너는 5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서로 아는 게 없을 정도로 고객과 디자이너 그 이상의 행동과 말은 없다. 좀 심심할 것도 사실 없으니 더 좋다.


그래서 헤어 디자이너와의 대화는 딱 한 마디다. "멋지게 해주세요."

나에게 미용실은 도심 속 오아시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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