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학교는 만 4살에 시작한다. 1~2학년은 ‘enfantine’이라고 일컫는데 과거 유치원 과정이 공교육에 편입된 것이어서 2학년까지는 숙제가 없고 교과 과정도 놀이 위주이다. 3학년부터 8학년까지 정식 초등학교 교육이 시작되며, 학기마다 성적표가 나온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기술학교 또는 인문학교 입학 여부가 정해지며, 대략 20~30% 정도의 학생들만 인문 과정을 통해 대학교로 진학한다.
스위스 어린이들의 공부는 모두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숙제가 없다. 3학년이 되면 숙제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숙제하는 데 쓰는 시간이 하루 평균 10분도 채 안 될 정도다. 게다가 대부분의 숙제는 제대로 했는지 선생님이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수학을 예로 들면 문제지를 푸는 숙제가 아니라 학교에서 만든 더하기 빼기 연습용 카드로 한 번 연습하기가 숙제이다. 불어는 학교에서 다 같이 읽은 프린트물을 집에서 한 번 읽어보기가 숙제일 때가 많았다. 특히 수학 숙제는 수준이 낮아서 집에서 굳이 숙제할 필요가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학교 숙제는 꼭 해야 함을 체화하도록 아이들에게 그날의 숙제는 그날 무조건 하도록 가르쳤다.
영민이가 4학년이 되니까 숙제 수준도 제법 올라갔다. 불어는 작문 숙제까지 나오고, 수학도 한국의 2학년(스위스의 4학년)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도 하루 숙제 분량을 다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게다가 스위스 학교는 한국과 달리 준비물이 별로 필요 없다.
거의 모든 것(심지어 필통과 지우개 같은 학용품까지)을 학교에서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부모는 학기 초에 실내화와 미술 시간에 입을 헌 덧옷 정도만 챙겨주면 됐다. 다만 매일 쉬는 시간에 먹을 간식을 챙기는 것은 빠뜨리면 안 됐다. 가능한 한 몸에 좋은 것을 싸주자는 생각에 바나나나 사과 같은 과일과 유기농 과자를 챙겨줬는데 금세 질렸는지 손을 대지 않았다. 결국은 과일과 각종 비스킷이나 과자 종류를 번갈아 가면서 싸줬다.
스위스 학교는 너무 숙제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것인지……. 결국 열성 한국 학부모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영민이가 취약한 불어 공부를 집에서 더 시키기 위해 적절한 불어 참고서와 문제지를 찾았다. 그런데 동네 책방을 아무리 뒤져 봐도 한국식의 참고서와 문제지는 없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프랑스 쪽 마트에 가니까 학습지 비슷한 형식의 문제집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몇 개 사서 집에 와 영민이에게 시켜 보았다. 그러나 불어가 아직 익숙치 않은 영민이에게 불어 문제집을 풀도록 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영민이에게는 완전히 고문 시간이나 다름없었기에, 나 또한 무턱대고 문제집을 풀게 하여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결국, 집에서 추가로 공부시키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스위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오후에 가는 한글학교에서만큼은 역시나 한국식으로 아주 많은 분량의 숙제를 내줬다. 한글학교는 제네바 대표부의 재정지원을 받아서 운영되었으며, 교사들은 주로 주재원・국제기구・대표부 직원의 부인이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 과정까지 운영되었고, 스위스에 오랫동안 거주한 교포 자녀와 주재원・국제기구・대표부 자녀가 다녔다. 교포 자녀들을 대상으로는 주로 한국어 말하기 위주의 수업이 이루어졌고, 여타 학생들에게는 한국 교과 과정 중 국어, 수학을 한국 수준에 맞춰서 가르쳤다.
일주일 한 번 수업으로 정규 국어, 수학 과정을 가르치는 것인 만큼 수업이 상당히 집중적으로 이루어졌고, 숙제도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내주기 때문에 분량이 꽤 되었다. 결국 스위스에 있는 동안 영민이가 집에서 제일 많이 한 숙제는 한글학교 숙제였다.
헌신적인 선생님들 덕분에 영민이는 적어도 국어, 수학만큼은 한국 학년에 맞춰서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제네바에 있는 2년간 둘째 정민이는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으나, 한글학교에 다닌 덕분에 한글을 깨쳤다. 한글 읽기뿐만 아니라, 쌍받침이 들어가는 단어를 쓰는 것까지 익혔다.
한글학교 숙제까지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뭘 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제네바에서 살게 된 지 1년이 지나 애들이 스위스 학교에 완전히 적응하며 불어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까, 어느 날 아내가 영민이에게는 한국 아이들이 푸는 수학 문제집 하나 정도는 풀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완강히 반대하였다. 아내의 제안은 내가 주부로서 갖고 있는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졌다.
“여보, 왜 그래? 내가 못 미더워? 영민이 스위스 학교, 한글학교 두 군데 다니면서 공부 충분히 하고 있어. 무슨 문제집을 또 시키려고 해”
“당신이 잘 하고 있는데, 한국의 현실은 또 많이 다르잖아. 영민이 나이에 문제집 하나 안 하는 아이는 없어. 영민이가 영영 한국에 안 돌아갈 것도 아니고. 조금씩 준비시켜야 하지 않겠어”
“나 어렸을 때는 이런 문제집 안 풀고도 다들 학교 잘만 다녔어.”
“아이구, 답답해라. 전형적인 한국 아빠처럼 이야기하시네.”
큰소리는 쳤지만, 솔직히 마음 한구석은 찝찝한 것이 사실이었다. ‘음. 어떻게 하지. 이 좋은 스위스에 와서까지 한국 문제집을 풀게 해야 하나’ 일단 주변에 영민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동료들에게 슬쩍 어떻게 공부를 시키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웬만하면 문제집 한두 개 정도는 풀고 있었고, 그 이상을 하는 집도 있었다. 어떤 부모는 한국에있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일찌감치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 이럴 수가. 영민이도 뭐라도 하나 시켜야 하나. 정말 시키기 싫은데.’
다른 집들이 다 하고 있다고 하니 나도 마음이 흔들렸다.
“여보, 당신 말이 맞는 거 같아. 문제집 하나 정도는 시키는 게 맞겠어. 대신 문제집 진도는 당신이 맡아줄 수 있을까”
아내는 기꺼이 자신이 맡겠다고 했다. 다만 선행 학습은 하지 않고, 한국 해당 학년 진도에 맞춰 문제집 두 권씩만 풀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하루에 2~3장 정도를 푸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하기 싫어하는 영민이와 아내는 꽤나 실랑이를 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