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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an 13. 2019

나쁜 습관 떨치기

단순한 반복이 스스로를 구한다



“머리치기를 할 때 엇박자로만 치려는 경향이 있어.” 

“손목을 칠 때 몸이 옆으로 기우는구나. 그러다가 중심이 비면 머리를 맞아.”

“네 중심을 지켜야 하는데 칼 겨눔세가 비틀렸어.  진검 싸움이면 넌 이미 죽었어.”


선배들이나 관장님에게 자세를 지적받는 순간이 있다. 좋은 습관이나 기술은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데로 연습해도 몸에 익질 않는데, 나쁜 습관은 몸이 알아서 쑥쑥 만들어낸다. 참 신기할 노릇. 그러고 싶어 생긴 게 아니다보니, 지적받으면서도 왠지 억울하다. 죽을 땐 죽더라도 하소연은 하고 죽어야겠다. 사범님 선배님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랍니다...


10년 넘게 검도하면 그래도 자세 면에서 결점 없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고단자가 되면 알 수 있다. 기본바탕이야 충실하긴 하지만, 다들 어딘가 자기만의 곤조와 결점을 가진 채 연차를 채우게 된다는 것을. 


예를 들어 아무리 “칼을 크게 들어쳐라”라는 말을 들어도 빨리 치는 데 급급한 사람은 칼을 들었다 치는 궤도가 유난히 짧다. “칼이 머리 위로 올라갔을 때 체공 시간이 길면 안된다. 올라가는 순간 바로 내려쳐야 해.” 이런 말을 들어도 자기 칼이 머리 위에서 나무늘보마냥 느리게 머물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다(때때로의 나다). 


몸은 왜 원하지 않는 엄한 습관들을 구현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검도는 공격하려는 목표를 향해 가장 효율적인 거리와 움직임을 구현하는 무도다. 군더더기는 없을수록, 움직임의 방식은 단순명쾌할 수록 좋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몸이란 군더더기의 집합같다. 어딘가 축 늘어져 있고, 바른 정렬의 움직임을 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조차 등허리가 휜 채 승모근에 불필요한 힘을 주며 글을 쓴다. 몸을 제대로 펴고 살아가기란 이렇게 어렵다.


그러니 바른 자세의 영역, 그 자세로 몸의 각 부위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건 지극히 인위적인 노력의 영역이다. 몇번이고 의식해야 한다. 그 의식의 과정에서 검도 수련자들은 몸에게 ‘이것이 바른자세다’라며 반복 동작을 통해 주입시킨다. 그때의 가장 좋은 스승은 도장 벽면의 거울. 하지만 몇번 집중할 땐 조금 되는 듯 싶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자세는 다시 흐트러지고 만다.


우리가 어떻게 매 순간 스스로의 몸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까. 일터에서의 지친 몸을 겨우 이끌고 오는 이 수련의 장에서 한번 더 자기 몸을 긴장상태로 몰고 가는 건 몸한테도 참 가련한 일. 그러니 조금이라도 몸이 뭔가 제대로 된 걸 해낸다면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못 하는 나’에 너그럽자, ‘시도하는 나 자신’을 칭찬해. 이런 말로 내 몸을 다독여도 본다. 조금이라도 꾸준히하면 언젠가는 뭐든 고쳐질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정신승리만이 계속되는 나날이면 가끔은 미치고 환장하겠다. 좋아하니까 잘 하고 싶은데! 수련에 진심인 이 마음은 왜 번번히 좌절되는지. 몸의 부침이 큰 날은 수련 끝날 때 즈음 넓은 도복소매를 얼굴에 부비며 운 날도 있다.


스스로 느끼기에 총체적 난국인 내 몸. 지적받은 결점을 한꺼번에 고치려고 하면 과부하가 걸린다. 그럴 때는 일단 까먹지 않도록 간단히 얘기 들었던 내용을 메모해둔다. 다행히 적힌 습관들의 목록에는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고쳐지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오른손을 습관적으로 놓는다'라거나 하는 부분. 이건 ‘오른손을 안 놓기로' 마음 먹어도 충분하다.  


반면 ‘왼발이 빨리 따라 붙는다’ 같은 부분은 좀 곤란하다. 왼발 힘을 키우는 등 꾸준한 연습량이 쌓여야 한다. 검도에서 오른발을 앞에, 왼발을 뒤에 둔 자세로 대련에 임하는데, 여기서 왼발은 뒤에서 몸을 밀어주는 역할을 하기에 특히 중요하다. 왼발이 뒤에서 몸을 확실히 밀어준 다음 신속하게 오른발 가까이 따라 붙어야 다음 공격으로 이어진다. “검도의 왠만한 기술은 왼발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중요한 포인트니 오래 걸려도 연습을 안 할 수 없다. 


이렇게 세세하게 자세를 조정하는 과정은 아무리 검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도 지루하다. 단번에 늘어서 성취감이 느껴지는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도 아니다. 유튜브에서 화려한 기술을 보고 따라하거나 연속 타격으로 상대를 한번에 제압하는 게 더 멋있는데, 지루한 부분을 집중해서 매번 해내야 하다니! 


어느 날은 집중해서 고쳐야 할 것들이 생각나 연습을 하고, 어느 날은 연습할 걸 까먹는다. 그래도 생각나는 날에는 반드시 반복, 반복, 반복. 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된다. 이런 단조로움이 스스로를 구한다는 것을. 힘이 붙은 왼발만큼 단단해진 자세가, 그 자세에서 나오는 완성된 기술이 멋진 일격을 만들어낸다. 기본기를 갖췄을 때 해내는 검도에는 자세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다. 


무술에도 춤이나 연기처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자기만의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쌓이는 묵묵한 아름다움. 그게 나라는 사람에게 있으면 좋겠다. 



그치만 지루하고 싫어도 묵묵히 한다니. 그거 참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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