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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an 13. 2019

마음을 읽히는 순간

비교적 온전하게 상대를 이해하는 순간

“아까 머리치기 공격 시도할 때
뭔가 생각하면서 쳤지? 뭐였어?”


찌는 듯 더웠던 어느 해의 여름. 수련을 마치고 다 같이 도장에서 나와 걷던 길에 5단 L사범님이 말을 꺼냈다. 순간 내 눈이 살짝 커졌다.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셨을까? 마음에 구멍이 뚫려 말이 새어 나갔나.

사범님과 대련할 때 계속 맞기만 했다. “이번엔 중심을 뚫고 쳐보자”라고 각오한 터였다. 이 타이밍에 내가 할 공격은 딱 머리치기다. 사범님이 들어오시는 거리와 칼의 속도를 감안했을 때 “지금이다” 싶은 타이밍이 있었고, 그 순간에 몸을 훅 던졌다. 실행한 공격은 깔끔하게 성공. 그날의 대련 내용을 떠올렸을 때 성공한 기술이라 뿌듯했는데, 갑자기 저런 말씀을 하시면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무안한 감도 있고.. 마음을 읽힌 기분이었다.

몸을 앞으로 내던진다. 이런 마음을 실행하는 건 검도에서 방어할 여력을 한줌도 남기지 않는다는 결의의 몸짓이다. 내 몸의 어디가 비던 상관없다. 어디 칠 테면 쳐봐라. 이런 마음가짐으로 공격하라고 일본의 검도수련 유튜브 영상 속 고단자 분도 설명하더라. 뭐가 어떻게 되던 내 할 것을 해낸다는 그런 박력과 각오가 마음을 넘어 몸으로 튀어나간다.

이렇게 진심을 표하는 몸짓을 나만 하지 않는다. 이 도장에서 여러 사람이 매순간 해낸다. “머리!!” “손목!!” “허리!!” 같은 기합이야말로 그들 마음의 부침과 극복의 과정이 압축된 소리다. 수련시간 동안 기합 소리 외에 다들 굳이 말로 대화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고단자가 저단자를 가르칠 때 말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 외에는 오로지 고함과 발구름, 죽도 타격소리가 전부다. 이렇게 시끄럽지만 대화는 거의 없는 이곳. 그런 점을 떠올리며 혼자 기분이 묘해진 적이 있다.

내게는 말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말이 더 선명하게 잘 와닿는다. 상대를 보는 눈빛, 기합 소리에 담긴 투지, 몸을 부딪힐 때의 강도나 공격 빈도. 이런 것들을 상대가 툭툭 던져놓으면 머리는 그 정보를 처리 못 해도 몸이 반응한다. 상대가 내 손목을 노려 치려 하면 죽도를 살짝 옆으로 뉘어 받아낸 다음 머리치기. 혹은 치려는 마음이 급한 상대가 크게 움직일 때 상대의 공격을 피한 다음 죽도를 빼었다가 머리치기. 매 순간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치는 게 아니다. 몸이 반응한 다음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동작을 해버린다. 고마운 몸 같으니.

몸으로는 자기 성격을 연기할 수 없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한번은 대련 전에 신사적인 말투를 쓰던 사람과 대련한 적이 있다. 곱게 빗어넘긴 머리, 흰 셔츠깃, 낮게 깔린 음성 등이 차분하고 예의 있는 상대로 느껴졌다. 새로 본 상대라 ‘재미있겠다’ 싶어 대련에 임했는데 왠걸. 막상 대련했을 때의 몸짓을 보며 기분이 상했다. 내 머리를 치고 나서도 자세를 올곧게 유지하기 보다 터벅터벅 걷질 않나, 내가 공격 빈도를 높였더니. 몹시 거리가 가까운데도 나를 향해 죽도를 계속 내려찍질 않나. ‘시시하다’라던가 혹은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마음이 몸 밖으로 뛰쳐나온 느낌을 받았다.

지기 싫어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공격할 거리를 주지 않고 쉴새 없이 공격한다. 때로는 검도가 죽도로 서로의 중심을 다투는 무도인데도, 그 두 팔을 타격부위를 맞추는 데 쓰지 않고 상대의 몸을 밀치는 데 쓰는 사람도 종종 만났다. 상대의 몸 어딘가에서 “지기 싫다"는 외침이 음성지원되는 것 같았다.

반면 겁이 많은 사람은 공격 방식이 수동적이다. 상대가 먼저 공격할 때를 기다리다가 막은 다음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먼저 공격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칼이 주춤거려 상대에게 막히는 순간도 있다. 찰나의 순간으로 승패가 결정나는 검도에서 망설임은 많은 기회를 놓치게 한다. 인생이나 검도나 주저없이 몸을 던질 때가 필요한데, 겁많은 사람들에게는 망설임을 넘어선 그 ‘한 번의 공격'이 잘 나오지 않곤 했다.

초심자의 경우는 마음이 드러난다기 보다, 미숙한 데서 오는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에서 상대의 생각이 읽힌다. 자신이 타격하고 싶은 부위가 허리면 그쪽으로 몸이 쏠리거나, 급하게 달려드는 바람에 허점이 보인다. 그럴 때는 훤히 보이는 손목 부위를 보며 “때려달라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타격. 초심자들이 몸으로 하는 말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 같다.

경험의 결과를 종합하면 이런 가설을 내놓고 싶어진다. 말은 성격을 연기할 수 있어도 몸으로는 자기 마음을 꾸며낼 수 없다고. 몸이 부딪히는 대련 속에서는 도무지 자기 자신을 꾸미거나 속일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 같다고.

내 경험상 대련하며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몸으로 깨닫는 과정이야말로, 타인을 읽어낼 때 오독의 편차가 적었다. 많은 말을 안 해도 거의 비슷한 감각을 공유하는 상황. 그 소통이 내 마음에는 크게 남았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말 거는 게 서툰 나다. 그 때문에 생긴 다툼도 종종 겪다보니 사람을 만날 때 적정선에서 거리를 두며 관계 맺는다. 물론 검도에서 공격을 성공시키는 데 있어 적정한 거리도 중요한 요소긴 하지만..

타인의 존재감이 좋다.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나도 좋다.선배들과 대련내용을 복기할 때 서로 어떤 공격을 썼을 때의 순간을 기억해낸다. 그 사실을 말할 때마다 ‘말 안 해도 알잖아’ 같은 느낌을 공유하며 같은 순간에 대해 비슷한 감각으로 말한다.

비교적 온전한 이해의 순간. 대화의 밀도가 높진 않아도 오독은 없는 느낌. 말로 하는 대화를 시작하면 또 서로를 오해하겠지. 그래도 몸으로 소통하는 순간, 그때의 기억을 복기하는 잠시 동안의 대화만큼은 서로를 충실히 이해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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