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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Dec 23. 2021

동치미로 속 풀고 마음도 풀고

몸에 좋고 마음에는 더 좋은 겨울 김치

어느 날 어느 밤, 

목이 마른지 속이 답답한지

시원한 뭔가를 마시고만 싶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다른 거 다 제끼고 동치미 그릇을 꺼냈다. 

선 채로 국물을 벌컥 들이켜고

손으로 무를 집어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캬~"

 

짭조름한 국물이

물보다 잘 넘어가고,

탄산수라도 섞은 양  

톡 쏘는 맛이 짜릿하다. 

좀 매콤한 무는 담백한 과일 같고. 


텃밭에서 자란 무는 크기가 작아서 모조리 동치미를 담갔다.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동치미 무가 참 귀엽다.


겨울밤 야식을 동치미로 채우니

마음도 꽉 찬 듯 흐뭇하다. 

무심결에 흐르는 노래.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아마도, 동치미를 먹기 위해서?’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동치미 먹는 이 순간만큼은 내 길이 맞는 듯!’


“이 길의 끝에서 난 웃을 수 있을까♪”

‘울고 또 울더라도 한겨울 동치미를 떠올릴 땐 분명 웃을 수 있을 거야~’


지오디 노래 ‘길’을 

홀로 문답하듯 주고받자니 피식 웃음이 난다. 

이그, 동치미가 그리도 좋더냐.^^


겨울이면, 겨울마다

한 해 묵은 답답함까지

시원하게 풀어 주던 동치미.  

담그면서부터 한 달 넘게 기다린, 

먹기 딱 좋은 때가 지금부터다.


동치미 항아리의 둥그스름한 자태는 언제 봐도 아담하고 듬직하다.
항아리에서 동치미를 꺼내는 순간은 마음도 좋고 손맛도 즐겁다.


한 통 퍼 둔 동치미가 어느덧 바닥을 보여

다시금 항아리를 연다. 

추운 날에도 꼿꼿하고 단정하게

서 있는 동치미 항아리.  

둥그스름한 자태가 언제 봐도 아담하고 듬직하다.  


국물 뜨고 무 건지고.

텃밭에서 자란 작디작은 무들이

앙증맞게 둥둥 떠 있다.  

아유~ 귀엽다, 귀여워.

항아리에서 동치미를 꺼내는 순간은

마음도 좋고 손맛도 즐겁다. 


혼자 먹는 소박한 밥상, 동치미와 고구마! 모두 산골살이가 준 선물이다.


혼자 먹는 점심,

갓 꺼낸 동치미에 고구마를 곁들인다. 

어울린다, 어울려! 

뻘건 김치랑 먹을 때보다

고구마 맛이 더 알차게 스민다. 


“꺼억~ 꺽!”

아따, 트림 한번 시원하게 터져부네.

뭉친 마음까정 쫙 펴지는 듯도 허니,

동치미로 속 풀고 마음도 푸는구나.


동치미 몸에 좋은 거야

인터넷 잠시만 뒤져도 오만가지가 나오던디.  

고런데 내가 겪고 느낀 

딱 한 가지가 잘 안 보인다.


바로바로~

얹힌 마음도 소화시켜 주는 놀라운 능력! 


내가 산골 동치미에 

이다지도 깊이 정든 것은…. 


숙취로 인한 속풀이보다는, 

‘술 권하는’ 이놈의 산골살이에 지친 마음풀이에 

시원하게 도움이 된다는 것,

그게 더 큰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위가 쓰릴 때보다

마음이 쓰라릴 때

더 자주 동치미를 찾는 것만 봐도.    


고구마랑 짝꿍처럼 어울린 동치미 덕분에, 때문에라도 이 겨울 잘 보낼 수 있으리.


몸에 좋고 마음엔 더 좋은 겨울 김치

동치미 덕분에, 때문에라도 

이 겨울 잘 보낼 수 있으리,

믿고 또 바라는 저녁. 

나는 또 동치미를 꺼낸다.

낮에 먹던 고구마랑 함께.


속이 답답한 건 아니고,

동치미 믿고 고구마를 너무 많이 쪄 버렸네.  

이리하여 점심에 이어 저녁도

밥 대신 고구마, 

국 대신 동치미!


이것이 오늘은 나의 길~♪
오늘의 끝에서 난 웃을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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