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고 마음에는 더 좋은 겨울 김치
어느 날 어느 밤,
목이 마른지 속이 답답한지
시원한 뭔가를 마시고만 싶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다른 거 다 제끼고 동치미 그릇을 꺼냈다.
선 채로 국물을 벌컥 들이켜고
손으로 무를 집어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캬~"
짭조름한 국물이
물보다 잘 넘어가고,
탄산수라도 섞은 양
톡 쏘는 맛이 짜릿하다.
좀 매콤한 무는 담백한 과일 같고.
겨울밤 야식을 동치미로 채우니
마음도 꽉 찬 듯 흐뭇하다.
무심결에 흐르는 노래.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아마도, 동치미를 먹기 위해서?’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동치미 먹는 이 순간만큼은 내 길이 맞는 듯!’
“이 길의 끝에서 난 웃을 수 있을까♪”
‘울고 또 울더라도 한겨울 동치미를 떠올릴 땐 분명 웃을 수 있을 거야~’
지오디 노래 ‘길’을
홀로 문답하듯 주고받자니 피식 웃음이 난다.
이그, 동치미가 그리도 좋더냐.^^
겨울이면, 겨울마다
한 해 묵은 답답함까지
시원하게 풀어 주던 동치미.
담그면서부터 한 달 넘게 기다린,
먹기 딱 좋은 때가 지금부터다.
한 통 퍼 둔 동치미가 어느덧 바닥을 보여
다시금 항아리를 연다.
추운 날에도 꼿꼿하고 단정하게
서 있는 동치미 항아리.
둥그스름한 자태가 언제 봐도 아담하고 듬직하다.
국물 뜨고 무 건지고.
텃밭에서 자란 작디작은 무들이
앙증맞게 둥둥 떠 있다.
아유~ 귀엽다, 귀여워.
항아리에서 동치미를 꺼내는 순간은
마음도 좋고 손맛도 즐겁다.
혼자 먹는 점심,
갓 꺼낸 동치미에 고구마를 곁들인다.
어울린다, 어울려!
뻘건 김치랑 먹을 때보다
고구마 맛이 더 알차게 스민다.
“꺼억~ 꺽!”
아따, 트림 한번 시원하게 터져부네.
뭉친 마음까정 쫙 펴지는 듯도 허니,
동치미로 속 풀고 마음도 푸는구나.
동치미 몸에 좋은 거야
인터넷 잠시만 뒤져도 오만가지가 나오던디.
고런데 내가 겪고 느낀
딱 한 가지가 잘 안 보인다.
바로바로~
얹힌 마음도 소화시켜 주는 놀라운 능력!
내가 산골 동치미에
이다지도 깊이 정든 것은….
숙취로 인한 속풀이보다는,
‘술 권하는’ 이놈의 산골살이에 지친 마음풀이에
시원하게 도움이 된다는 것,
그게 더 큰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위가 쓰릴 때보다
마음이 쓰라릴 때
더 자주 동치미를 찾는 것만 봐도.
몸에 좋고 마음엔 더 좋은 겨울 김치
동치미 덕분에, 때문에라도
이 겨울 잘 보낼 수 있으리,
믿고 또 바라는 저녁.
나는 또 동치미를 꺼낸다.
낮에 먹던 고구마랑 함께.
속이 답답한 건 아니고,
동치미 믿고 고구마를 너무 많이 쪄 버렸네.
이리하여 점심에 이어 저녁도
밥 대신 고구마,
국 대신 동치미!
이것이 오늘은 나의 길~♪
오늘의 끝에서 난 웃을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