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가을 하늘에 마늘을 심어~♪”
가을의 절정을 알리는 달, 시월을 맞이하여
흐린 가을 하늘 아래 마늘을 심었다.
다음 날 비 온다는 예보를 안고
땅에 무언가를 심을 땐 편안하다. 안심이 된다.
자라는, 자라야 하는 생명에게 비는
참으로 귀한 생명수가 되어 줄 테니까.
그동안 마늘 농사가 올곧게 잘된 적은 거의 없지 싶다.
마늘쫑 뽑을 수 있을 만큼이라도 자란 게 두어 번쯤 되려나.
올해 거둔 마늘은 진짜로, 완전히 망했다.
전보다 무얼 그리 잘못했는지, 잘못됐는지 알 수 없는 채
턱없이 작은 마늘을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캐고 다듬으면서 한숨이 푹푹.
지난해 초겨울,
추위 뚫고 파르르 솟아난 마늘 싹을 보며
대견하고 어여뻐 한참을 바라보고 또 보았던 시간.
춥지 말라고 왕겨 덮어 주고 거름 되라고 나뭇재 뿌리고
새봄엔 김매기도 정성껏 했는데.
심은 마늘보다 캐낸 것이 훨씬 더 작고 작은,
완벽하게 처참한 결실 앞에서
그 소중한 시간들은 재가 되어 훨훨 날아가 버렸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고, 혼자 위로하려 애쓰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더는 이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옆지기 마음이 나와는 달랐을까.
그럴 리가~
나보다 훨씬 더 애쓴 사람인데.
속이 더 쓰리면 쓰렸을 테지.
내가 집에 없던 어느 장날, 옆지기가
마늘을 사서 하나하나 갈랐을 때만 해도 난,
“심지 말자~. 망하는 농사 이젠 지긋지긋해!”
애먼 소리를 되풀이했으나 묵묵부답.
그러고선 같이 사는 이 남자, 고구마 거둔 밭을 곱게 다듬고는
퇴비까지 정성스레 부려 놓는데….
그 모습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네그랴.
안 그래도 산골 겨울 오지게 추운데.
마늘 싹마저 없으면 왠지 더 시릴 것 같아.
저이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까짓것(이 아닌 걸 너무도 잘 알지만),
다시 또 해 보자!
옆지기가 깔끔히 마련해 준 밭에
누군가 농사지었을 토실토실 마늘을 꾹꾹 깊숙이 박았다.
이제 이 자리에서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지날 때까지 마늘은 자랄 것이다.
무려 2년에 걸쳐서!
시원한 가을바람 맞으며 마늘을 심고
서리 내린 밭을 보면서 애잔하게 싹을 기다리는 마음.
다행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겪고 지닐 수 있게 되었으니.
마늘 농사에서 도망치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 준 옆지기에게
마음 다해 고맙다.
마늘을 땅에 맡긴 지 하루가 지나고.
예보 그대로 새벽부터 세차게 비가 내린다.
하늘이 조금 잠잠해진 틈을 타 밭으로 가 봤지.
가을비 한껏 머금은 흙이 촉촉하게 곱기도 하구나.
땅속 마늘도 나처럼 이 비가 좋았기를.
마늘 농사 첫발 내디딘 기념으로 부르자꾸나,
가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고 또 떠오르는 이 노래를~♪
“비가 내리면 음~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음~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마늘을 심어~^^)♪”
(김창기 작사, 작곡/ 동물원 노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