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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r 28. 2018

막내 여동생이 두고 간 ‘김치값’

 일본으로 수출(?)하는 김치 택배, 싸고 보내고 도착하기까지  

김치를 싸고, 김치를 보내고, 남은 김치를 정리하니 반나절이 훌쩍 갔다.


일본으로 수출(?)할 김치 택배 싸기 시작!
김치 봉지가 터지기라도 할까 봐, 더 담고 싶은 마음 애써 꾹꾹 누른다.

알루미늄 통에 든 건 일본에 사는 막내 여동생한테 보낼 것. 바다 건너로 김치를 보낼 땐 저런 통을 써야 한다나. 


아마도 내가 귀촌한 첫 해에 샀을 테지. 그러고 보니 내 산골살이 나이랑 요 알루미늄 통 나이가 똑같네. 그동안 일본과 한국을 참 많이도 오갔는지 울퉁불퉁 찌글찌글한 통. 은근히 짠하다. 이젠 새것으로 바꿔야 할 것도 같고.


상자에 든 건 서울 사는 둘째 언니한테 보낼 것. 지난해부터 우리 집 김장에 폭 빠져선 전에 잔뜩 보내줬더랬지. 근데 벌써 다 먹었는지 엄청 미안한 말투로 슬그머니 카톡이 왔지 뭔가. 자기한테 보내줄 김치 아직 남았느냐고. 안 그래도 얼마 전 마음 시린 일 겪은 언니한테 뭐라도 맛난 거 챙겨주고 싶었는데, 잘됐다. 막내 거 싸는 김에 같이 보내야지.


김치 택배는 싸기도, 보내기도 여느 택배보다 무척이나 힘이 든다. 왜냐, 김치가 샐 수 있으니까! 엄청 꼼꼼하게 싸야 한다. 상자도 아무거나 못 쓴다. 사과 상자 정도는 돼야 택배회사에서 받아준다. 


둘째 언니한테 보낼 김치는 단단한 과일 상자에 꼭꼭 눌러 담는다. 택배 보내는 김에 내가 만든 된장도 보태기로!


몇 년 전, 산골살이 시작하고 처음으로 김치 택배를 보낼 때가 생각난다. 나름 애써 고르고 고른 상자에 김치를 담아 택배 부치러 갔더니만, 글쎄 상자 때문에 안 되겠다고 퇴짜를 놓는 게 아닌가! 사과 상자나 다른 과일 상자에 다시 담아 오라는데, 둘레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구할 수가 없었다. 꼭 그날 보내야만 했기에, 애원하고 사정해서 간신히 보낼 수는 있었지. 그때는 참 속상했지만 여러 번 김치 택배를 보내면서 왜 단단한 상자를 써야 하는지 저절로 깨칠 수 있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김치가 익으면서 가스가 나오는데, 그 바람에 김치 담긴 비닐이 터지는 수가 있단다. 택배 회사에서 말하길 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고. 

 

택배 싸기 전 상자랑 통을 햇볕에 내놓는다.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김치를 담아 보내고 싶어서.  

김치 국물 뚝뚝 떨어지는 상자…. 들고 나르는 일도 문제지만 그 상자 때문에 다른 택배까지 상하게 된다. 그럴 때면 택배 기사님들이 책임져야 할 때가 많단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운반하고자 사과 상자처럼 두꺼운 데 담으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 백 번 맞고, 꼭 따라야 할 주문이라는 걸 이젠 알 수 있다. 


게다가 무게 제한도 있단 말씀. 마음껏 퍼 담고 싶어도 정해진 무게를 넘으면, 우체국 직원들 앞에서 김치 내음 폴폴 풍기며 시뻘건 김치를 빼내야 한다. 실제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어르신이 힘들게 들고 온 김장김치 상자. 택배회사에선 무게가 많다고 빼라 하고, 어르신은 다 보낼 수 없느냐고 애걸하고. 실랑이 끝에 그 어르신이 상자를 열어 안에 든 김치를 꾸역꾸역 덜어내셨는데, 보기에 어찌나 안쓰럽던지.


애써 싸고 부쳤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보낸 뒤에도 마음 쓰이긴 마찬가지니. 더군다나 삼사일은 지나야 도착하는 일본행 김치는 걱정이 잔뜩 인다. 혹여 비행기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김치 봉지가 터지기라도 할까 봐, 받았다는 연락받기까진 맘이 조마조마하기만.


된장 달고, 김치 달고. 친정엄마의 유품 '낡은 저울'이 제 몫을 한다. 10킬로그램까지만 잴 수 있는 게 좀 아쉽지만.


겨우내 시지 않고 여전히 싱싱한 김치를 국물 쪽쪽 짜서 차곡차곡 담는다. 친정엄마 유품, 오래된 낡은 저울이 이럴 때 제 몫을 한다. 10킬로그램까지만 잴 수 있는 게 좀 아쉽긴 하다만.


막내 여동생 것 싸고, 둘째 언니 것 싸고, 두 시간 가까이 그러고 있으니 못내 지친다. 어제 옆지기랑 술 한잔 나눈 게 과해서 그런가. 그래도, 힘이 달려 안 되겠다. 벌건 김치 한 장 쭉 찢어 벌건 대낮에 막걸리 한잔 마시고야 만다. 그제야 기운이 좀 난다. 다시 힘내서 마무리!


막걸리 한잔 마시고 힘내서 김치 택배 싸기 마무리!

다 쌌으니 우체국으로 가야지. 자주 드나드는 면 우체국에 들어가 택배 상자를 저울 위에 올리자마자 낯익은 직원 언니가 묻는다. 


“상자 속에 든 거 뭐예요?”


“김치요.”


“전에 일본에도 김치 보내셨죠?”


“네, 맞아요. 오늘도 보낼 거예요. 저기 가져오네요.”


알루미늄 통 든 옆지기가 문을 열고 들어오니, 그걸 본 직원 언니 두 분 다 웃으신다.


“아유, 통이 많이 찌그러졌네요.”


“일본을 하도 많이 다녀와서 그렇죠. 동생이 일본 김치는 입에 안 맞는다고 해서요. 우리 집 김치만 좋아해요.”


“그렇게 여기저기 보내려면 김치 많아야겠네요. 김장은 몇 포기나 했어요?”


“백 포기쯤 했어요.”


“어머, 많이 했네. 나도 백이십 포기쯤 한 적 있는데 아이고, 힘들어요. 힘들어….”


“그렇죠, 힘들죠. 근데 한번 힘들고 나면 여럿이 오래 행복하니까요, 할 만은 해요.”


서울 가는 택배 7,500원, 일본 가는 택배 82,500원. 더해서 김치 택배값 90,000원이 나왔다.


김치 무게 달고, 주소 적고 하는 틈에 손님 하나 없는 우체국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그러는 가운데 택배값이 나왔다. 


일본 가는 김치 택배값 82,500원.
서울 가는 김치 택배값 7,500원. 


일본 가는 택배비, 몇 번 보내본지라 이미 알고 있기에 그리 놀라진 않는다. 그럼에도 참 비싸긴 하다, 생각하는데 불쑥 들어오는 질문.


“동생이 김치값은 줘요?”


“네? 네…. 안 줘도 되는데 우리 집에 왔을 때 봉투에다 슬며시 두고 가더라고요. 글쎄 택배비까지도 따로 주던 걸요.”


“여기, 김치값 얼마로 적을까요?”


“삼십만 원이요!”


해외로 나가는 거라 그런지, 배송 사고를 대비해 전에도 이렇게 내용물 값을 묻더라. 삼십만 원이 맞게 부른 값인지 어떤지 잘은 모르겠다. 건강한 유기농 배추로 만든 김치 16킬로그램. 요즘 김치가 비싸다고들 하니 뭐, 너무 세게 부른 건 아닐 거야.


택배 부치고 집에 돌아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김치통 씻고 정리하고 나니 어느덧 저녁때. 저녁밥 배불리 먹고는 바로 뻗는다. 김치 택배 보내는 일 한두 번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독 몸이 처지네. 두 집 김치 한꺼번에 챙기느라 그런 걸까. 힘들게 밭일한 것도 아닌데 저녁 일곱 시부터 눕는 건 아무래도 아닌 듯해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고이 넣어 둔 봉투 하나 꺼낸다.


 어느 날, 막내여동생이 슬며시 두고 간 하얀 봉투.

지난해 어느 날, 언니네 집에서 며칠 쉬고 일본으로 돌아간 막내 여동생이 말도 없이 슬며시 두고 간 바로 그 봉투. 


동생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허전하고 아릿한 마음 어루만지다 문득 눈에 들어온 하얀 봉투, 그리고 거기에 씌어 있는 글씨. 



김치값


철없는 막내가 남긴 세 글자를 보며 그만 눈물이 치솟고 말았다. 


이 안에 든 건 하나도 안 건드리고 고대로 보관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적지 않던 그 돈은 슬금슬금 빠져나가 이젠 빈 봉투만 남았다. 언니네 김치 가져간다고,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애틋하게 묻어나는 동생 글씨. 그때는 이 봉투 때문에 울었지만, 지금은 이 봉투 덕분에 웃는다. 


김치 보내고 하루 뒤, 둘째 언니한테 카톡이 왔다.


“김치 잘 받았어. 상자 가득 보냈네. 가족들 김치까지 다 챙겨주는 노고를 누가 알아주려나…. 정말 고맙게 잘 먹을께.”


이야, 빠르게도 갔구나. 나도 빠르게 답장 보내야지. 


“맛있게 먹으면, 그게 바로 알아주는 거지!^^ 잘 먹어주는 사람 있어서 나두 좋아~”  


잘 도착했다니 다행이고, 잘 먹겠다니 기쁘고. 


일본에 부친 김치 택배가 잘 도착했다!  동생이 보낸 인증 사진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이제 남은 건 일본으로 보낸 김치. 이제나 저제나 동생 연락 오기만 기다린다. 드디어 왔다!


“이쁘게도 묶었네~ ㅎㅎ ㅋㅋ”


택배 부치고 나흘 뒤, 동생이 김치 택배 인증 사진을 보내왔다. 열심히 싸고 묶은 고대로 바다 건너로 잘 도착한 김치. 감개무량하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꽉 담아 꽁꽁 묶은 봉지가 약간 부풀었네. 며칠 더 지났으면 탈이 났을지도! 그나마 날이 시원해서 그렇지, 더운 여름에 김치 보낼 땐 좀 헐렁하게 담아야지 싶다. 


서울로 간 김치, 일본으로 간 김치 모두 무탈하다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언니랑 동생이 활짝 웃으며 김치 한 포기 한 포기 꺼내는 장면,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아직 김장하려면 한참 남았건만, 지난해 백 포기 김장이 너무 힘겨워 올해는 좀 줄일 생각도 적잖이 있었건만, 때 이르게 행복한 다짐부터 해본다.  


“올 김장도 백 포기, 까짓 거 가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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