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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Apr 17. 2018

노릇노릇 바삭바삭
‘고구마 튀김’은 마음을 싣고

밭으로, 집으로 뜨끈 달큼한 고구마튀김 배달이요~

꾸역꾸역 밀린 밭일을 하다가 급작스레 고구마튀김을 했다. 두 가지 까닭으로.


까닭 하나, 마을 아저씨가 좀 많이 다치셨다. 


비탈 밭에서 관리기를 몰다 사고가 났단다. 열흘 전쯤 벌어진 일. 사고가 컸는지 전주까지 가서 입원하시고, 병간호 때문에 옆지기 아주머니도 한동안 마을에서 보이지 않았다.


설핏설핏 김을 매다 보았다. 불쑥 나타난 그 아주머니가 밀린 밭일 치른다고 동분서주 바쁜 모습을. 안 그래도 아저씨 괜찮은지 궁금했는데, 불쑥 다가서기도 좀 뭐하고. 그래, 참으로 드시라고 고구마튀김 들고 가서 슬쩍 여쭤 볼까?


꾸역꾸역 밭일하다 급작스레 만든, 노릇노릇 고구마튀김.


집집마다 나름 고구마가 흔한 산골. 찐 고구마는 감히 내밀 수 없다. 다들 밥 대신으로도 참으로도 자주 드시는 걸 아니깐. 하지만 튀긴 고구마는 다르지! 자기 한입 먹자고 번거로운 튀김을 하실 리가 없으니까. 그것도 이 바쁜 농사철에. 게으른 텃밭 농부인 나조차도 그러한 걸. 고구마튀김은 오로지 손님 올 때만 한다는 말씀.


까닭 둘, 며칠 전 앞집 할머니가 고구마를 주셨다. 


지난번에 산골 손님이 들고 온 제과점 빵 몇 조각 가져다 드렸는데, 그게 고마우셨던 걸까. 불쑥 비닐봉지 가득 호박 고구마를 들고 오셨다. 아마도 농사 허술한 우리 집에 아직까지 고구마가 남았을 리 없다고 여기셨겠지? 아닌데, 고구마 아직 있는데. 그것도 작은 놈, 큰 놈 여러 개 남았는데…. 


안방 화장대 옆을 꿰찬 고구마 상자. 뜨신 데 둬야 썩지 않고 오래가기에 겨우내 고구마랑 동거를 했지.


지난겨울, 찾아오는 이마다 구수하고 달큰한 군고구마 열심히 내줬건만 아직도 고구마가 남았다. 하긴, 손님 올 때 말곤 고구마를 거의 먹지 않으니. 군고구마 하기에 못생기고 작은 것들 애써 골라 골라 쪄 먹은 적은 있어도. 함께 나누어 먹으려고 농사지은 거다 보니 혼자 먹으면 왠지 아깝더군. 


얼마 전 장에 갔을 때, 고구마 작은 바구니에 오천 원 넘게 부르던 게 떠오른다. 꽤 비싸다는 생각에(농산물 두고 비싸다, 어쩌다 궁시렁대는 마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집에 고구마 있어요!’ 혼잣말하며 고구마 파는 집 앞을 흐뭇하게 지나쳤더랬지. 


조금 마른 듯해도 여전히 고운 자태 뽐내는 텃밭 고구마.


안방 화장대 옆을 떡 꿰찬 초록빛 상자. 뜨신 데 둬야 썩지 않고 오래가기에 겨우내 고구마랑 동거를 했지. 오랜만에 고구마 상자를 열어 본다. 물기가 빠져 비쩍 마른 놈도 더러 있지만 그럭저럭 생생해. 싹은 없지만 더 놔두면 말라비틀어질 것만 같아서 아까운 맘 접고 한 솥 쪄냈다. 


조금 마른 듯해도 여전히 고운 자태 뽐내는 텃밭 고구마. 사람들한테 내줄 땐 군것질거리였는데 혼자 먹을 땐 밥 대신이다. 보릿고개 간신히 지켜 주던 구황작물이라 그런가, 군것질로만 넘기기엔 고구마한테 왠지 미안스러워. 


어렵던 시절 소중한 구황작물이던 고구마. 군것질거리로만 넘기기엔 왠지 미안스러워 밥 대신 먹는다.


군침 도는 노란 때깔에, 식으니까 달콤한 맛이 훨씬 빛이 나던 고구마. 막걸리랑도 잘 어울리던, 땅에서 나온 지 오 개월도 훌쩍 넘었는데 여전히 맛있는 고구마가 참참 용하기만 했지.


그렇게 우리 집 고구마도 애써 챙겨 먹으려 하던 차에, 갑자기 새로운 고구마까지 생겼으니. 이 고구마들 얼른 먹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며칠째 지니고 있었다. 고구마 선물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겠고. 다른 것보단 그 고구마로 요리해서 드리는 게 젤 좋겠단 생각 또한 여러 날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지.


앞집 할머니, 사고 난 집 아주머니, 그리고 나까지 모두 밭에 있는 오후…. 


참 먹기 딱 좋은 이 시간, 두 가지 까닭에서 비롯된 두 가지 목적을 한꺼번에 이룰 절호의 기회가 될 듯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고무장화, 장갑 벗어젖히고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긴급하게 고구마튀김을 만들기 시작했다.


앞집 할머니표 호박 고구마. 어찌나 큰지, 한두 개만 썰어도 그릇 가득 넘친다.


봄을 맞아 봄나물 부침 자주 해 먹으니 다행히 밀가루 반죽이 냉장고에 있다. 밀가루랑 달걀, 소금만 넣고 걸쭉하게 만들어 놓은 것. 고구마튀김에도 딱 좋을 듯. 숙성돼서 더 맛날 것도 같고. 남은 일은 고구마 손질. 이쯤이야 후루룩 해낼 수 있지. 우리 집 고구마도 있지만 앞집 할머니 기분 좋으시라고 부러 선물 주신 걸로 씻고 썰고. 


자, 고구마를 튀기자! 기왕 하는 거 아랫집 할머니도 같다 드려야지. 모두 세 집 드릴 마음으로 가장 예쁘게 썰어진 고구마부터 정성 가득 담아 노릇노릇 튀긴다.


첫 고구마튀김 한입 맛보니 좋다, 좋아! 다들 맛나게 드실 만하겠어!


만들면서 눈으로 귀로 먼저 맛보는 고구마튀김.


고구마튀김의 생명은 따스함과 바삭함. 그걸 지키자면 빠르게 전해드려야 한다! 세 접시 곱게 담자마자 번개같이 한 집 한 집 대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아랫집 할머니께 전달 성공! 마당 텃밭에서 일하시던 중이니 요거 참으로 바로 드시기 안성맞춤일 거야. 좋아하시는 얼굴, 분명 느껴졌음.  


다음으로 사고 입은 아저씨네 집. 이걸 어쩐다, 아무도 없다. 여직 밭에 계신 걸까, 아니면 병원으로 다시 가셨나. 고구마튀김보다 아저씨 안부 여쭙는 게 목적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아무도 없는 부엌 귀퉁이에 튀김 접시를 두고 왔다. 조금 지나면 눅눅해질 텐데, 안타까운 마음 안고.


자, 마지막으로 앞집 할머니! 아까부터 저 위 밭에서 할아버지랑 일하는 모습이 보이네. 밭일 끝날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밭으로 직배송 결정! 


“뭘 또 가져와~”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할머니께, “전에 주신 고구마로 튀김 좀 했어요. 고구마 맛있어요. 남은 것도 마저 잘 먹을게요!” 하면서 돌아 나오는 길, 뿌듯함이 넘친다. 


고구마튀김의 생명은 따스함과 바삭함. 세 접시 곱게 담자마자 번개같이 한 집 한 집 대문을 열었다.


문득 마음에 밟히는 집. 앞집 옆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가까이 있는, 이 마을로 한참 전에 귀촌하셨으나 우리처럼 가끔씩 산골살이 버거워하시는 어른 부부가 사는 집.


계실까? 고구마튀김 한 접시 담아 들고 바삐 찾아가니 마침 계신다! 


“뜨거울 때 얼른 먹어야지, 잘 먹을게요~”


마침 배고프셨는지 마당 일 하시던 거 바로 접고 집 안으로 들어가신다. 야호, 이 맛에 내가 고구마튀김을 한 거지! 


남은 고구마들, 작고 못생긴 것들 좍 튀겨서 막걸리랑 같이 먹는다. 참으로 먹으려던 게 저절로 저녁밥이 돼 버렸네.


뜨거운 기름 앞에서 쉼 없이 튀기고, 헐레벌떡 뛰어다니면서 네 집 배달까지 하느라 얼굴은 벌겋고 숨도 헉헉. 하지만 쉴 수 없음이야. 나도 밭일했는데 참을 먹어야지.


남은 고구마들, 작고 못생긴 것들 좍 튀겨서 막걸리랑 같이 먹는다. 저절로 저녁밥이 돼 버렸네. 이로써 앞집 할머니표 호박 고구마 큰 거 세 개 말끔히, 행복하게 해치웠음! 


문득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생각난다. 저녁때면 이 집 저 집 서로 반찬 나누던 모습.  음식 들고 나르던 한 아이가 그랬던가, 아마? 


“이럴 거면 그냥 같이 밥을 먹던가.” 


드라마 속 그 풍경이 참 좋았지. 내 어릴 적에도 자주는 아녀도 이웃집과 떡이며 과일이며 먹을거리 자주 나누던 생각도 뭉게뭉게 피어나면서.  


처음으로 손수 만든 음식을 마을 어머니들께 갖다 드린 날, 내 마음도 노릇노릇 익어 간다.


불량과자나 남이 만든 떡, 빵이 아니라 아마도 처음으로 손수 만든 음식으로 마을 어머니들께 갖다 드린 날, 노릇노릇 맛난 고구마튀김처럼 내 마음도 노릇노릇 익어 간다. 


그나저나, 부엌에 둔 고구마는 어찌 됐을까. 눅눅해지기 전에 드셨을까, 아니 그보다 아저씨는 좀 나아지셨을까….  


아무도 없는 부엌 귀퉁이에 튀김 접시를 두고 왔다. 조금 지나면 눅눅해질 텐데, 안타까운 마음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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