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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y 02. 2018

고사리도 취나물도 바로 이 맛에!

연속극처럼 짜릿하고 재미난 나물 노동 이야기 

취 뜯다 고사리 꺾고, 고사리 꺾다 취 뜯고.


뜨거운 오후, 산그늘 드문 산길이 꽤 힘겹다. 마을 아주머니들처럼 아침 일찍 나서야 했는데 느긋하게 점심 먹고 발걸음을 했더니만, 오후 나물 산행이 못내 버겁다.


낮은 산에 있는 건 마을 할머니들 몫이라 여기고, 우리 부부는 되도록 험한 산길로 떠난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길이 많다 보니, 복분자나 청미래처럼 가시 돋힌 식물들한테 긁히고 찔리는 일도 다반사.


어젯밤 늦게 잠들어 그런 걸까, 취도 고사리도 드물게 보여 그럴까. 나물 뜯는 손에 힘이 없다. 햇볕도 너무 뜨겁고 머리까지 아프고. 지친 몸과 마음에 그만 돌아가고 싶기만 하다. 취나물, 고사리 없어도 우리 부부 밥상엔 별 탈 없는데. 이거 아녀도 먹을 채소들 많은데.


하지만 애써, 힘써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이 지나면, 고사리순이 활짝 피어서 더는 꺾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전에 해 놓은 걸로 내년까지 손님맞이하기엔 좀 모자랄 것만 같으니까. 


산나물도 다 한철! 고사리순이 활짝 피면 더는 나물로 먹지 못한다.  취도 훌쩍 자라기 전에 뜯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취도 그래. 봄 들어 아직 제대로 뜯질 못했으니 손님들 나물 밥상 내주려면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시작을 해야만 해. 저기 취 자란 것 좀 봐. 얘들도 조금만 지나면 훌쩍 커서 나물로 먹기엔 질겨진다고.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야, 그러니 힘들어도 뜯어야 해. 


무엇보다 혜원이 너! 나물 가운데 취나물이 가장 좋다며. 데쳐서 생으로 무치면 향긋하게 고소하고, 묵나물로 먹으면 담백하게 고소하고. 취나물 전은 또 얼마나 맛있어. 아니, 아니지. 음식 만들기 전부터 사람을 취하게 하는 풀이잖아, 취는. 갓 뜯은 취에서 풍기는 매혹 넘치는 향기, 정말 취하지 않고는 배겨낼 도리가 없으니까. 그 맛에 취해 조금은 힘겨운 산골살이 버텨내고 있다고도 스스로 여러 번 말했잖아. 


그렇게 속으로 다짐에 또 다짐을 하면서 꾸역꾸역 오른 산길. 가장 먼저 눈앞에 떡 나타난 길쭉한 고사리 하나. “야, 고사리 봤다!” 거의 ‘심 봤다!’ 수준으로 소리를 질렀다. 고사리, 아~ 고사리. 추운 겨울 내내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가장 먼저 눈앞에 떡 나타난 길쭉한 고사리 하나. “야, 심 봤다!”
올망졸망 귀여운 고사리순. 어린아이 손을 '고사리손'이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그리운 마음 가득 담아, 첫 고사리를 부드럽게 꺾어 준다. 고개를 드니 풀숲 사이로 올망졸망 고사리순이 보일 듯 말 듯 손짓을 한다. “나 찾아봐라.” 하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 전에 깊은 산골 살면서 고사리 꺾을 만치 꺾어 봤다고. 제 아무리 숨어 있어도 다 보인다니깐! 


고것들 찾아내고 꺾는 재미가 어찌나 쏠쏠한지. 어디 그뿐인가. 산길을 걷다 가시에 찔려 잠깐 멈칫하면 바로 그 순간 발 밑에 고사리가 있다. 그런 순간이 여러 번 있다 보니, ‘이거 고사리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나무가 나를 잡아 주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렇게 험한 산길 따라 가끔은 기다시피 오르락내리락하며 고사리를 꺾고 취를 뜯었다. 


험한 산길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고사리와 취를 만났다.


고사리 찾고, 꺾는 재미에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이렇게 싹 훑고 가도 되나 걱정도 됐지만 ‘순이 다시 또 올라오겠지’ 하면서 작은 고사리까지 톡톡 많이도 꺾었다. 아 요거, 정말 재미난 일이야. 


숨 돌릴 겸 졸졸 흐르는 작은 계곡에서 잠시 쉰다. 그거 좀 움직였다고 허기가 져서는 간식으로 싼 떡도 몇 조각 집어먹고.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고사리 꺾고 취 뜯기. 
오로지 먹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일. 
쉽게 말해 ‘돈’과 상관없는, 
‘대가’가 없고 ‘돈’이 안 되는 나물 노동. 


그런 생각이 슬며시 머릿속을 스치고 간다. 그냥 거기까지. 그래서 안타깝거나 그런 건 아니고. 


노동하는 보람은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일 그 자체? 일하고 얻는 돈, 또는 물품? 왠지 그 두 가지가 고루 섞여야 할 것도 같고. 손발은 놀리되 ‘돈’ 버는 일은 아닌(그러나 일 자체는 흥미롭고 재밌을 때가 많다) 산골 속 여러 노동들. 난 아직 그 값어치를 스스로 잘 깨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좀 더 성찰하고 느끼고 깨닫는 시간이 필요할 듯.  


등이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를 닮아 이름도 할미꽃이 되었다지.
산등성이에 외로이 자리한 무덤. 그 앞을 지키고 선 할미꽃을 보니 불쑥 서글퍼진다.


고사리 꺾는 길에 만난 할미꽃. 세월의 무게만큼 등이 굽은,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를 닮아 이름도 '할미꽃'이되었다지.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야트막한 무덤이 보인다. 돌보는 이도, 찾는 이도 없는지 이름 모를 풀이 성글게 돋아 있고 여기저기 허물어진 무덤. 나물 좇기에 바빠 자칫 발자욱 스칠 뻔한 그 무덤을, 할미꽃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다. 휴우, 얼마나 다행이던지. 


산등성이에 외로이 자리한 무덤. 그 앞을 지키고 선 할미꽃. 자식에, 손주에 내리사랑 또 내리사랑에, 머리 허옇게 세는 줄도 모르고 이 밭 저 산에서 허리 굽히고 또 굽히는 우리네 할머니들 모습과 참으로 닮았구나. 할미꽃 꽃말은 ‘슬픈 추억’이라지. 나물하는 길에 만나서 더 그런가, 하얀 할미꽃이 조금은 서글프게 다가온다. 


나물 산행 마치고 나물 씻고 다듬기. 작은 검불들을 골라 내느라  세심하게 손을 놀린다. 
녹두빛 고사리, 초록빛 취나물. 싱그러운 빛깔과 내음에 흠뻑 젖는다.


아슬아슬한 산자락에 매달려 꽃도 보고 나물도 하는 산길. 낮은 산에 있는 건 마을 할머니들 몫이라 여기고, 우리 부부는 되도록 험한 산길을 택한다. 여기까진 어르신들이 오지 못하겠다 싶은 그런 자리로. 


그러다 보니 무척 조심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미끄러지기 십상. 특히 복분자나 청미래처럼 가시 돋친 식물들한테 긁히고 찔리는 일도 다반사.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눈을 찔릴 수도 있기에 모자도 꼭 써야만 하고. 더구나 밤송이들도 산길 곳곳에 숨어 있어 힘들어도 철퍼덕 아무 데나 앉아 쉴 수도 없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야 한다.  


고난의 행군에 가까운 나물 산행 세 시간쯤. 집에 돌아와 나물 짐을 푼다.  


이야, 많네! 


취나물(왼쪽)이랑 고사리(오른쪽) 데치고 삶을 준비 완료!
끓는 물에 풍덩 빠지면 생생한 잎들이 푹 줄어든다. 취 데치고, 고사리까지 삶고 난 물빛이 꽤 검다.
취는 살짝만 데치고, 고사리는 뭉근하게 읽을 만큼 팍팍 삶는다. 물과 만난 뒤로 더 고운 때깔이 나온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옆지기랑 같이 꺾고 뜯은 고사리랑 취가 쏠쏠하다. 오래간만에 큰 들통을 꺼냈다. 가마솥에 데치기엔 좀 적고 큰 냄비에 하기엔 또 많고 하니깐. 나물 따라온 검불들 골라내며 여러 차례 씻고 또 씻고. 물 끓이는 데만도 긴 시간이 걸리고, 취나물도 고사리도 두 번에 거쳐 나누어 삶고. 나물 산행에 이어 씻고, 데치고, 삶고, 널기까지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니 나름 긴 노동이다. 


삶은 고사리는 연한 녹두 빛깔 비슷하게 바뀐다. 삶기 전보다 더 옅어진 것도 같고. 취도 데치고 나니 처음보다 더 연해진 빛깔이다. 어쨌든 둘 다 맘에 쏙 드는 빛깔이야. 고사리도 취도 잘 삶았으니 이젠 말려야 할 차례. 


이제부터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이 따라올 테지. 밤에는 이슬 젖을까 지붕 밑에 들이고, 아침에는 다시 해님 쪽으로 내놓는 일. 하지만 지겹지 않아. 오히려 뿌듯하고 흐뭇하고 재미도 넘쳐나. 녹두빛 고사리가 진한 밤색으로 바뀌고, 고운 초록빛 취가 검은빛 묻어나는 짙은 녹색으로 바뀌고…. 자연의 힘으로 조금씩 마르고 있는 먹을거리들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니까. 날마다 연속극 보듯 신기하고.  


나물 산행 세 시간의 결과물! 마당 가득 좌르륵 늘어선 나물 잔치에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취가 마르면서 묵나물로 거듭나는 모습.
 자연의 힘으로 조금씩 마르는 나물들 보는 재미가 연속극이라도 보듯이 쏠쏠하다.


산나물과 함께한 노동의 시간을 마치고 취나물 냉큼 무쳐 막걸리를 마신다. 산골 노동에 이어진 술자리니만큼 밖에서 마셔줘야 제맛이지! 봄바람에 실려 오는 취 내음, 고사리 향기가 술맛 잔뜩 북돋는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나물의 여왕, 향긋함이 일품인 취나물 무침!

그나저나 취나물 와 이리 맛있노. 막걸리랑도 너무나 잘 어울려. 역시 봄나물의 여왕님! 


더구나 취가 몸에 무지 좋다지. 칼슘이 많아 뼈에 좋고, 염분도 몸 밖으로 빼주고 혈액순환에도 좋고, 비타민이 많아 감기도 막아주고. 인터넷이 알려주는 취 효능에 끝이 없네 그려. 맛도 이렇게나 멋진데 몸에도 저렇게나 좋다니 취나물 먹는 입도 마음도 행복하기만 하다. 


힘겨움 딛고 나물 산행을 마친 날. 뿌듯하고 보람찬 마음으로 막걸리를 마시고 취나물을 먹는다. 술에는 안 취하고 취나물에 흠뻑 취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그래, 바로 이 맛에 내가 고사리를 꺾고, 취를 뜯는 게야!   


나물 노동 끝에 먹는 막걸리 한잔, 정말 끝내주는구나! 
술에는 안 취하고 취나물에 흠뻑 취하는 이 시간. 그래, 바로 이 맛에 내가 고사리를 꺾고, 취를 뜯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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