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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28. 2018

나는 왜 이 짓을,
아니 김장을 하는가!

산골생활 6년 차에 다가온, 김장 사춘기 같은 것?

김장이 눈앞에 다가오면 늘 낯설고 두렵다. 올해도 여지없다. 벌써 여섯 번째 하는 김장인데, 꼭 처음 하는 것처럼 잔뜩 겁이 났다.


11월 어느 날부터 시작한 산골 혜원네 2018년 김장. 하루도 쉼 없이 매달렸건만 무려 일주일이나, 아니 갈무리까지 더해서 열흘 넘게 걸렸다. 손이 느려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외치고만 싶)다. 텃밭에 난 채소들 거두어 다듬기부터 시간을 차근차근 잡아먹는 김장에 딸린 일들이 워낙 많기만 했으니까. 


김장 첫날. 옆지기와 나 두 사람이 꼬박 반나절 넘게 마늘까기. 여기까진 그럭저럭 괜찮았지. 둘째 날 이어진 쪽파 일. 올가을 쪽파 밭은 볼 때마다 마음에 쏙 들었다. 다른 밭에 견주면 가늘고 여리기 한량없지만 내 눈에는 굵고 튼실해 보이기만 했나니.


올가을 쪽파 밭은 볼 때마다 마음에 쏙 들었다. 다른 밭에 견주면 한없이 작고 여린 쪽파일지라도.
쪽파 시든 잎 다듬고 뿌리 갈라내고. 우리 부부 꼼짝 않고 붙어서 하는데 다섯 시간도 더 걸리는구나.


허허, 그런데 갈무리가 영 어렵다. 시든 잎 다듬고 뿌리 갈라내고, 우리 부부 꼼짝 않고 붙어서 하는데 다섯 시간도 더 걸리는구나. 하도 지난한 일이라 노트북 앞에 두고 영화 두 편 볼 때까지 내리 쪽파를 다듬었네. 그래, 쪽파까지도 괜찮았다. 큰일 앞둔 걱정보다는 나름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김장 셋째 날 일감은 텃밭 가을 무시 거두기. 한없이 작디작다. 무시 박박 씻어 아주 작은 건 동치미 할 거로 빼놓고, 그나마 큰 놈 열 개쯤 겨우내 먹을거리로 남긴 뒤에 나머지는 죄다 깍두기로 만들기! 


텃밭에서 자란 가을 무시 거두기. 한없이 작디작아서 김장 속에 넣기는 무리다. 깍두기랑 동치미로 모두 보내기~


무시는 작아도 딴딴해서 ‘깍둑깍둑’ 써는 데 꽤 힘드네. 보통 땐 옆지기가 도맡아 하는 일이었건만. 그날 막 김장 마친 아랫집 아주머니가 몸소 김치 한 봉지 들고 납셔서는 술이랑 고기 먹으라면서 열심히 깍두기 썰고 있는 옆지기를 애써 데리고 가는 바람에 나머지 무시는 죄다 내 몫으로 떨어졌음. 


나도 가고는 싶었지. 한데 그럴 수가 있나. 깍두기랑 동치미 담그기까지 그날 다 마쳐야만 했기에, 나마저 몸을 뺄 수는 없었음이니. 물론 이 바쁜 와중에 옆지기도 보내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마을살이가 어디 그런가. 술이랑 고기랑 먹으라고 불러주는 게 얼마나 고맙고 또 인정 넘치는 풍경이야. 


홀로 남아 깍두기 다 썰어선 소금에 절이고, 동치미에 넣을 재료들 ‘따박따박’ 준비했지. 동치미 국물로 쓸 소금물은 아침부터 천연소금 풀어서 대략 만들어 놓았고.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작은 무시라서 매운가? 텃밭 무시로 만든 깍두기가 참 맵다. 푹 익어야만 먹을 수 있을 듯.


마을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간 옆지기가 두 시간 훌쩍 넘어 얼큰한 얼굴로 돌아왔네. 안 봐도 소주 두 병은 마셨을 본새. 다른 때 같으면 벌렁 누워야 마땅한데 오자마자 냉큼 칼 잡더니 생강 다듬고 전전날 까둔 마늘 빻고 생강까지 마저 빻는구먼. 


안쓰러워도 어쩔 수 없음. 다음 날은 시어머니 생신 때문에 서울에 가야 하는 고로, 이날 해야 할 일은 모조리 끝내야만 했으니까.


곧이어 소금에 적당히 절인 무시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고 소금물 붓고 마늘, 생강, 양파, 쪽파, 배, 사과 퐁퐁 그 물에 빠뜨리곤 맨 위를 넓적한 갓 잎으로 덮으면서 동치미 담그기는 마무리! 숨 쉴 틈도 없이 곧바로 깍두기를 버무리곤 이날의 김장 노동을 마쳤다. 이때부터 살살 ‘힘들기’ 시작했다. 


깍두기로 만들기에도 작디작은 무시들을 모아 동치미를 담근다.


‘내가 왜 이 짓을 하는고?’

김장 노동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김장을 빌미로 찾아든 감정노동이 슬슬 꿈틀대는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 덕분인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부부싸움이 잠시나마 펼쳐졌나니. (싸움의 주제도 김장이었음.) 다행히 너무 지친 나머지 소리 높여 싸울 힘은 없고, 그저 한 시간쯤 서로 쳐다보지 않고, 아무리 화나고 힘들어도 차마 미룰 수 없는 각자 맡은 김장 노동을 꾸역꾸역 했다. 


아마도 이번만큼은!, 나보다 좀 더 잘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옆지기가 먼저 손을 내밀어 냉전은 금세 끝이 났고.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화목한 사이로 돌아왔지만 ‘김장, 이 짓을 왜 하는고?’, 마음을 하염없이 갉아먹는 이 물음은 여전히 마음에서 맴돌이를 했다. 김장 3일째 접어든 그날 밤부터 김장이 끝날 때까지 죽.  


사흘 동안 이어진 김장 노동을 마치고 하루치기로 서울에 가서 시어머니 생신맞이 식구 모임을 나름 즐겁게(케이크랑 맛있는 빵이 많았으니까!^^) 하고는 그날 새벽녘 집으로 돌아왔다. 


귀촌하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우리 집 김장배추를 책임져 주는 유기농 부부 밭에 가서 실한 배추를 한가득 실어 왔다.


자, 김장 4일째 되는 날. 느지막이 일어나 배추를 모시러 가고자 피곤한 몸을 부렸다. 귀촌하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우리 집 김장배추를 책임져 주는 유기농 부부 밭에 가서 실한 배추를 한가득 실어 왔다. 고맙게도 미리 잘라 놓은 배추를 차에 꽉꽉 밀어 넣고, 돌산 갓부터 당근, 대파 등등 온갖 채소 거리들 주는 대로 덥석덥석 받아왔지.


서울행 피로가 덜 풀렸기에 이날은 배추 모셔오기로만 김장 노동을 일단락, 하고팠으나 김장 속 마련도 마저 해냈다. 다음 날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싶어서. 무, 당근 채 썰고 양파, 갓, 쪽파, 대파 썰고. 팔 긴 옆지기가 온몸을 던져 이리 휘젓고 저리 휘저어 간신히 김장 속 마무리.  


무, 당근 채 썰고 양파, 갓, 쪽파, 대파 썰고. 팔 긴 옆지기가 온몸을 던져 이리 휘젓고 저리 휘저어 간신히 김장 속 마무리.


사실, 이제까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만고불변의 진리, 김장의 고갱이는 절이기와 버무리기일지니!


김장 5일째, 배추를 절인다. 언제나 그렇듯 이때만 되면 소금 양을 잘 맞출지 와락 겁부터 난다. 하나 도망칠 수 없는 일이니 오로지 감에 기대 옆지기가 잘라 건네주는 구십 포기 넘어 뵈는 배추에 소금을 마구 친다. 


‘나,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언제쯤이 되어야 이런 걱정과 두려움 없이 배추를 절일 수 있을지, 참말 모르겠더라. 


세 시간 넘게 배추에 소금을 치고, 여섯 시간쯤 지나 밤 열두 시에 배추를 뒤집고, 김장 6일째를 맞는 날 아침부터 배추를 씻는다. 진정으로 고되고 고된 일. 정말이지 허리가, 허리가 너무 힘겹다. ‘어이구~’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눈물마저 찔끔 난다.  


김장 5일째, 배추를 절인다. 언제나 그렇듯 이때만 되면 소금 양을 잘 맞출지 와락 겁부터 난다.


절인 배추 씻을 때면 허리가 너무나 아파서 '아이고' 소리가 수도 없이 튀어 나온다.


‘내가 왜 이 짓을, 아니 김장을 하는가….’ 

마음속에서 새어 나오는 힘없는 넋두리를 막걸리 몇 모금으로 꾹꾹 누르면서 네 시간 넘게 배추를 씻고 또 씻었다. 


드디어 김장 버무리기 시작! 옆지기와 나,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배추를 무치고 또 무친다. 그렇게 다섯 시간쯤 지났을까. 이걸 어쩐다, 김치 속 양념이 모자란다!


흑흑, 대체 얼마나 더 김장을 해 봐야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지. 허연 배추는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게다가 얻어 온 돌산 갓도 양이 꽤 많아서 김치로 만들려면 양념이 필요한데. 어쩔 수 없다, 양념을 다시 만드는 수밖에.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지만 대체 내 머리가 얼마나 나쁘기에 벌써 몇 번째 하는 김장인데 이렇게 실수, 또 실수 연발인지 답답하다 못해 기가 막힐 지경이다. 


그래도 벌여놓은 일 수습은 해야지 어쩌겠나. 일 년 먹을 김장인데, 거의 다 왔는데 여기서 쓰러지면 아니 된다, 아니 된다….


김장 속을 처음부터 다시 마련한다. 양이 적다지만 일감 종류는 똑같다. 채소들 썰고, 멸치 다시마 국물 내고, 찹쌀 풀마저 새로 쑤고 있자니 속에서 한숨이 절로 난다. 


‘허당, 허당, 이런 허당 같으니라고!’ 


재료 준비만 간신히 마치고 쓰러졌다. 버무리는 일은 다음 날로 미루자. 김장 하루 길어진다 한들 산골살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음이야.


길고도 길었던 김장, 그렇게 일주일을 가뜩 채우고야 끝이 났다. 물론, 온전히 끝난 건 아니다. 


김장과 함께한 온갖 그릇부터 비닐, 고무장갑, 옷, 장판까지 씻고 말리고. 오롯이 김장하는 데만 일주일, 김장에 이어진 갈무리하는 데만 사나흘. 그렇게 열흘 넘는 시간이 김장과 함께 흘러갔다.


소금에 덜 절여진 것 같은 배추 때문에, 맛이 알차지 않은 듯한 양념 때문에, 버무리면서도 버무리고 난 뒤에도 내내 마음이 쓰이고 속도 쓰리기만 했던 김장김치를 싣고 일주일 만에 또 서울에 다녀왔다. 이번엔 친정엄마 기일이 다가왔기에.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에 김치를 담아 고속버스에 이어 지하철 타고 또 갈아타고 친정 오빠네 집에 도착한 그 순간, 언니 오빠 동생들이 그 김치를 보며 환성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긴 시간 나를 휘감았던 김장 스트레스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김장하는 내내 더부룩하기만 하던 속도 슬슬 가라앉는 기분. 


친정엄마 기일을 맞아 서울로 가는 길, 식구들 맛보여 줄 김장김치도 한가득 싣고 갔다. 

쳐다보기만 해도 지겹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하고, 슬쩍 한 잎 뜯어먹어 보아도 영 맘에 안 차던 김장김치, 서울에 가서야 제대로 우걱우걱 씹는다. 


좀 싱겁고 뭔가 좀 모자란 듯해도 그럭저럭 ‘맛.은.든.것.같.다.’ 아,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  


저 많은 김장김치 당최 맛이 없을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걱정해 봐야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왜 그렇게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던지.


이 정도면 젓가락 내려놓을 정도는 아닐 듯하니 마음 놓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겠다. 겨울맞이 산골 손님 밥상에도 수줍게나마 내놓을 수 있겠다.  


‘내가 왜 이 짓을, 아니 김장을 하는가….’ 


수도 없이 터져 나오던 저 물음도.


‘다음부턴 조금만 하자, 이렇게 힘들어서야 더는, 정말 더는 못하겠어!’ 


몇 번이나 입을 앙다물었던 맹서도 봄눈 녹듯 사르륵 사그라진다. 


김장도 김장 갈무리도 모두 마친 지금 몸은 군데군데 뻐근하지만 마음만은 한껏 시원하고 흐뭇하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김치 통을 바라보며 혼자 가만히 웃다가는 여지없이, 참말 다행히도 이런 생각을 또 하고야 마는구나.


‘내년에도 김장 많이 많이 해야겠어. 우리 부부 일 년 내내 먹고 식구들이랑 고마운 이웃들과 나누고, 또 산골 손님들 마음껏 맛 보이려면 말이지. 김장 6년 차에 다가온,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몸과 마음.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었을까. 김장 사춘기 같은 것? 사춘기를 힘겹게 건넜으니 다음부턴 지금보다 덜 힘들게, 더 즐겁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가서 또 후회하더라도, 아니 이제 더는 후회 같은 거 하지 않을 자신 같은 게 생겼으니까, 김장 백 포기쯤 까짓것 앞으로도 죽 가 보자고!’ 


이런 마음이 다시금 찾아와 주어서 정말, 정말 고맙기만 하다.   


몇 날 며칠 이어진 산골혜원 김장 스트레스 받아주느라 나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덩달아 마음고생까지 많았을 옆지기한테 미안하고도 고맙기만 하다.


몇 날 며칠 이어진 산골혜원 김장 스트레스 받아주느라 나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덩달아 마음고생까지 많았을 옆지기 님 고마워요. 김장김치치곤 아무래도 싱겁기 짝이 없는, 참 어수룩한 산골 김치 맛나게 받아주고 먹어준 식구들 고마워요. 


무엇보다 끝도 없는 시련 속에 나를 조금씩 여물게 이끌어 준 우리들의 ‘김장님’도, 또 우리 텃밭에서 또 많은 이들 밭에서 애써 자라준 그 많은 김장 재료님들도 참말, 참말 고맙습니다! 


김장에 딸린 온갖 물건들 씻고 말리느라 김장 갈무리에만 사나흘이 걸린다.
이제야 제대로 맛보는 산골 혜원네 김장김치. 그럭저럭 맛이 든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김장과 이어진 모든 노동을 마친 지금 이 순간, 노래 한 자락 부르고만 싶다. 배추 절이고 씻고 버무리면서 그저 너무 힘이 들어서 세 번쯤 혼자 훌쩍훌쩍 소리 죽여 울었는데 그때마다 이 노래가 생각났다. 안치환이 부른 명곡 가운데 명곡,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라는 김장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이 노래가…. 


일에 치일 땐 너무 바쁘고 힘들어 생각만 하고 미처 불러보지 못한 이 노래를 김장 노동에 걸맞게 노랫말 살짝 바꾸어서 이 밤 기타 동무 옆에 끼고 읊조려 보는데, 맑고 따스한 눈물 몇 방울 또르르 흐른다. 이건 확실히, 기분 좋은 눈물이야!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내게 김장의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새 김장의 목전에, 눈물 고개 넘어 산골살이 길 걸어 한 걸음씩 딛고 왔을 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주지 않았네, 고통과 보람 흘러넘칠 김장 노동 이 길을~♪”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내게 김장의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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