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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16. 2018

마늘을 까며 마음도 다듬는  
산골 김장 주간 시작!

김장을 앞두고 장을 보는데 모든 것이 비싸다, 참 비싸다. 새우젓도 마늘도 당근도 생강도 또 다른 무엇도, 무엇도. 1년 전보다, 2년 전보다 그러니까 5년도 더 전에 산골 김장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줄곧 값이 오르고 있다. (양파만큼은 싸다. 이건 너무 싸서 오히려 안타깝다.ㅠㅠ)


미리 사 둔 고춧가루만 해도 그렇지. 내년 봄, 여름에 철 맞춘 김치 담글 때도 쓰겠노라 조금 넉넉히 샀다지만 무려 40만 원! 김장 재료 가운데 값이 가장 많이 뛴 걸로 치자면 고춧가루가 일 순위일 듯. 


고춧가루 값을 건넬 때 마음도 손도 적잖이 떨렸더랬다. 이거, 이거 올해 김장값 엄청 들겠구나. 그리고 골똘히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고춧가루만이라도 우리 텃밭에서 농사지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다 고춧가루 값 겁나서 김장도 하고 싶은 만큼 못하게 되는 때가 머잖아 닥칠 것만 같은 두려움(?)마저 밀려들더라니. 


‘마늘, 당근, 생강, 갓. 양파.’ 올해 텃밭농사에서 명백하게 ‘실패’한 것들. 이것들을 하나하나 사면서 값을 치를 때 다시금 그 생각이 찾아왔다. 


‘다른 건 몰라도, 김장 속에 들어가는 것만이라도
우리 텃밭에서 길러내야 하지 않을까….’ 


크기들만 컸지 다 농약 치고 길렀을 농산물들을 지난해보다 한껏 오른 값을 치르고 손에 쥐니 한숨이 밀려온다. 그동안 제아무리 농사가 안 돼도 기쁘게 맞으며 웃고 살아왔건만 오늘만큼은 과연 내가 산골살이 잘 해온 게 맞는가, 나름대론 깊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곧이어 배추도 무시도 사야 한다. 아직까진 백 포기 가깝게, 많고도 많게 김장하고 싶은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라 요것들도 꽤 돈이 들어야 할 게다. 에효, 배추도 무시도 내 손으로 농사지어서 김장하고만 싶다, 정말!


값비싼 꼬막과 회 대신 값싸고 질 좋은 달걀찜과 순두부찌개로 마음을 달랬다.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으로 시장에서 살 거 사고 마트에 들러 김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생필품 ‘막걸리’부터  이거 저거 또 산다. 그러다 꼬막이 보이네. 허걱! 스무 개쯤 들었나 싶은데 1만 원이 훌쩍 넘는다. 요즘 꼬막 철이라고 하던데 집을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참았다. ‘이까짓 꺼’, 먹어도 안 먹어도 그만이지.


그러다 또 회 한 접시 포장해서 파는 게 보인다. 2만 원! 횟집에서 먹는 거보다야 싸겠지만 그냥 또 참았다. 김장 앞두고 몰아서 쓴 돈이, 또 써야 할 돈이 너무 많아서 참 오랜만에 ‘돈 스트레스’에다가 게으른 텃밭 농부의 한스러움까지 밀려오는 바람에 안 먹어도 ‘사는 데 크게 문제없는’ 먹을거리에까지 돈을 쓰기가 싫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순두부찌개 끓이고 달걀찜까지 해서는 꼬막과 회 대신 값싸고 질 좋은 단백질을 보충하면서 살짝 다짐했다. 김장 잘 마치면 그때 꼬막도 회도 나한테 선물로 대접해야지!  


마늘 참 잘 까는 남자. 마늘 열 개 까고 막걸리 한 잔 먹기. 그래야 일과 놀이가 하나 될 수 있음~^^
마늘 까는 남자의 손. ‘알흠답지’ 아니한가….


저녁 푸짐히 먹고 한 접쯤 되는 마늘 까기 시작. 우리 집에서 마늘 한 접을 한 번에 까기 시작한다는 건, 바로 김장 주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탄.


손 빠르고 진득한 옆지기가 꼼짝 않고 마늘 앞에만 붙어 있었음에도 (난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또 딴짓도 하느라 늘 그랬듯이 조금만 했음.) 마늘을 다 까는 데 다섯 시간쯤 걸렸나 보다. 어느덧 밤 12시가 가깝다.  


우리 집에서 마늘 한 접을 한 번에 까기 시작한다는 건, 바로 김장 주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탄.


큰 그릇 가득한 마늘 깨끗이 씻고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 


이제 농사 못 지은 한탄일랑 접고, 다른 이들이 애써 농사지은 것들을 고맙게 받아 안으며 그분들의 땀과 정성까지 스며든 김장을 행복하게 맞이해 보련다. 농사는 디립따 허당이지만 김장만큼은 옹골차게 해내야지. 며칠이 걸릴지 당최 가늠이 안 되는 요노무 김장, 마음껏 즐겨 보자고! *^^* 


산골혜원네 2018년 김장 이야기,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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