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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Dec 08. 2018

‘뚱딴지처럼’ 살고 싶은 밤이야~

꽃 예쁘지, 맛 좋고 몸에는 더 좋은 돼지감자로 차를 만든 날 

태어나 처음으로 뚱딴지 차를 만든 날! 이게 정말 차가 되다니, 더구나 맛까지 있다니 무척 무척 신기한 날~^^


얼마 전 시어머니 덕에 뚱딴지가 생겼지. 어느 밭에서 방치 농법으로 자란 뚱딴지를 손수 캐셨다지 뭔가. 시어머니 생신 축하하러 서울 간 길에 꾸역꾸역 안겨 주셔서 그 무거운 걸 (짐꾼이 따로 있기는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산골로 실어는 왔다만. 


김장에 치이느라 구석에 처박아 두고 여러 날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못 쓰다가 갑자기 추워진다는 어느 날, 그놈들을 꺼냈다. 그래도 어머니가 주신 건데, 하물며 땅과 자연이 준 선물인데 뭐든 만들기는 해야 죄짓지 않을 것만 같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득 안고서. 


뚱딴지 씻고 써는 건 ‘뚱딴지같이’ 마음 좋은 옆지기 몫. 나는 그저 입만 거들 뿐.


옆지기가 흙 묻은 뚱딴지를 박박 씻는 동안 나는 편히 누워 인터넷을 뒤진다. 뚱딴지 장아찌, 뚱딴지 차, 뚱딴지 효소. 


‘뭐가 좋을까? 뭘 해야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장아찌와 차 낙점! 반쯤은 얇게 썰어 햇볕에 널고 나머지는 조금 두껍게 썰어 바로 장아찌를 만들었다. 


이 추운 겨울에 햇님께 뭔가를 맡기게 되다니, 감개무량….
햇님 덕에, 그리고 따스한 집 온기로 삼사일 만에 뚱딴지가 적당히 말랐다.


추워서 이게 마를까 걱정이었는데 햇볕에 쪼이고, 집안 뜨뜻하게 덥혀서 삼사일 두었더니 포실포실해지긴 하네. 적당히 마른 뚱딴지를 프라이팬에 볶는다. 음, 냄새 구수하군. 뭐가 되긴 될 것도 같은 예감. 


바삭해질 만큼 볶은 뒤에 커다란 쟁반에서 팍팍 식힌 다음 통에 차곡차곡 담는다. 그러곤 부스러기들 모아 바로 차를 끓였지.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마음 안고 뚱딴지 차를 따른다. 냄새, 구수해. 자, 맛을 봅시다.


태어나 처음 만든 뚱딴지 차, 구수하고 달큰하고 때깔도 참 곱다.
적당히 마른 뚱딴지를 프라이팬에 잘 볶으면 맛 좋고 몸에는 더 좋은 뚱딴지 차가 된다.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좋구나, 좋아! 둥굴레 차랑 비슷한 듯 구수하면서도 달큰한 맛. 호호호, 요거 요거 추운 겨울 홀짝홀짝 마시면 딱 좋겠는걸!


맛이 마음에 드니 효능을 좀 알아보고 싶다. 몸에 좋다고 하도 말들이 많으셔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좀 해야만 하겠음. 오메오메~ 몸에 좋은 이야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야! 


가장 먼저는 ‘천연 인슐린’이라는 ‘이눌린’ 성분이 엄청 많아서 혈당 조절에 끝내주게 좋다는구먼. 인슐린이 또 뭔가 살펴보니 당뇨병에 쓰는 약이라고 하네. 어디 그뿐인가. 고혈압, 살 빼기, 골다공증에도 좋고 췌장도 강하게 만들고 면역력도 높이고 피부 미용에도 좋고, 온갖 효능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땅에서 나는 것치고 몸에 안 좋은 거 없다지만 이건 뭔가 차원을 달리하는 분위기. 대단한 보물이라도 손에 쥔 듯 기분이 막 좋아진다.


울퉁불퉁 못생겨도 맛도 건강에도 참 좋은 뚱딴지.


저 효능들이 다 들어맞는다는 보장, 없다는 거 나도 알지. 그러면 어때. 어딘가에 좋기는 좋을 거 아녀. 하물며 농약도 거름도 없이 막 자란 놈이니까. 


꽃은 무척 고운데, 땅속을 파니 난데없이 울퉁불퉁 못생긴 덩이줄기가 나타나서 이름이 ‘뚱딴지’가 되었다나? 감자 비슷하게 생긴 데다가 맛이 덜해 돼지 사료로 주곤 해서 '돼지감자'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옛날엔 인디언들이 많이 먹었다고 하지.

 

뚱딴지 꽃 앞에 선 ‘뚱딴지처럼’ 참 좋은 두 사람, 엄마와 아들!


나도 지난가을 뚱딴지 꽃을 보고 조금 놀라기는 했어. (우리 밭에도 뚱딴지가 있단 말씀! 올해 처음 심은지라 캐지는 않았고 내년부터 살살 거두어 볼 생각임.) 국화과라 그런지 국화꽃 비슷하게 생겨선 샛노랗게 예쁜 데다가 꽃 내음이 너무 멋졌지. 달콤한 초콜릿 비슷한 향이 참 향긋해서 꽃잎에 얼마나 코를 킁킁댔는지 몰라. 


국어사전에선 ‘뚱딴지’를 ‘행동이나 사고방식 따위가 너무 엉뚱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네. 이 말이 먼저 나온 건지, 이 식물 때문에 저 말이 생겼는지 궁금한데 고것까진 찾아내지 못하겠고. 

 

하여튼 ‘뚱딴지같은 사람’ ‘뚱딴지처럼’ 같은 말은 보통 좋은 뜻으로 쓰지 않는 듯하지. 뚱딴지 차를 벅찬 마음으로 두 잔 연거푸 마시며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뚱딴지’에 얽힌 뜻풀이를 바꿔야만 할 것 같아. 예를 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 뭐 이런 식으로.  


여느 보물단지 부럽지 않은 뚱딴지 차를 보고 또 보면서 마냥 웃는다.
뚱딴지 장아찌는 아직 맛을 안 봤음. 맛없어도 몸에 좋다니 열심히, 즐겁게 먹어야지.

돼지감자보다는 ‘뚱딴지’라는 말이 더 정겹고 좋아서 차도 장아찌도 담은 통에 ‘뚱딴지’라고 이름을 썼다. 국어사전까지 바꾸는 거야 꿈에나 이루어질 수 있을 테니, 그저 나 혼자만이라도 ‘뚱딴지’를 좋은 뜻으로 쓰면서 살아보련다. 예를 들면 요렇게! 


“꽃 예쁘고, 몸에 좋은 덩이줄기 차 구수하니
정말이지 뚱딴지처럼 살고 싶은 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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