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Dec 10. 2018

겨울에 먹는 김치 동치미, 항아리에 담가야 참맛!

‘살얼음 낀 항아리 가득 귀한 보약이 담겨 있구나~’

밤 날씨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이때, 문득 항아리에 담긴 ‘동치미’가 떠올랐다. 


‘얼었으면 어떡하지? 혹시 항아리에 금이라도 갔으면?’ 


항아리 가득 채운지라 걱정이 불쑥. 얼른 뒤란으로 내달려 동치미를 살폈다. 


“얼었다!” 


근데 항아리 터질 만큼 꽝꽝 언 게 아니라, 먹기 딱 좋은 그만큼만 살얼음이 끼었다. 이 추운 날씨에 요만큼 얼었으면 소금 농도가 적당했다고 보아도 될까나? 오히려 좀 짤 수도 있으려나? 


“얼었다!” 먹기 딱 좋은 그만큼만 동치미 항아리에 살얼음이 끼었다.


국자로 얼음 통통 깨며 국물이랑 무를 건지는데 기분 참말 좋다. 전에 큰 유리그릇이나 플라스틱 통에서 꺼낼 때랑은 차원이 다른 손맛이 느껴지네.  이젠 맛을 봐야지. ‘두 구두구 둥~.’ 


우와, 톡 쏘는 듯 알싸하고 시원한 맛. 전에 담근 거랑을 좀 다른, 뭔가 진짜 동치미 맛 같은 느낌이랄까? 얼른 옆지기한테도 맛을 보인다.  


“어때, 어때?”


“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서 먹던 그 맛이랑 얼추 가까운 것 같군. 근데 무가 매워서 좀 아쉽네.”


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서 먹던 그 맛이랑 가깝다는 '찬사'를 받다니, 자태 시원하게 멋진 산골 동치미여!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텃밭 작은 무도 힘겹게 자라 그런지 잔뜩 매워서 여직 그 맛이 사그라지지 않았나 보다. 그럼 어때, 동치미를 뭐, 무 먹으려고 담그나 국물 맛에 먹는 거지.


김장철만 다가오면 ‘동치미, 동치미~’ 하고 노래 부르던 옆지기. 왜 그런가 하니, 어릴 때 외가댁에서 할머니가 담근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훌훌 마시던 그 추억이 애틋하게 그리워서 그렇단다. 그러니 산골 동치미가 외할머니 손맛을 떠오르게 했다면 이거야 말로 최고의 찬사가 아니겠는가!


‘역시, 동치미는 항아리에 담가야 꺼낼 때도 맛볼 때도 참맛이야. 항아리에 담그길 정말 잘했다, 잘했어!’ 


텃밭 무가 워낙 작게 자라서 김장 양념에는 아예 쓰지 못할 분위기. 깍두기랑 동치미로 죄다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작은 무(왼쪽)는 동치미로, 그나마 좀 큰 건(오른쪽) 깍두기로!


나도 어릴 때 엄마표 동치미를 먹어는 왔으나, 꼭 담그고 싶을 만큼 그 추억이 애틋하지는 않다. 배추 김장이랑 깍두기만으로도 늘 일이 벅차곤 했으니 사실 비껴가고 싶을 때도 많았지. 


그래도 어릴 적 추억을 못 잊어 산골 김장 시작하자마자 동치미 만들자고 꼬드기는 옆지기 덕분에 나름 빼놓지 않고 만들었다. 배추 다 버무린 뒤에 남은 무 모아 꾸역꾸역 담그는 걸로 동치미 그리는 한 남자에 대한 ‘성실의무’를 다했다는 말씀. 


그러다 보니 배도, 또 다른 주요 재료를 더러 많이 빠뜨려서 좀 심심하고도 적당히 담백하고 시원한 동치미가 주로 만들어졌지. 물론 그것만으로도 내 입에는 썩 괜찮아서 겨우내 속 푸는 몫으로 동치미를 자주 그리고 잘도 먹어 왔고.     


동치미를 위해 굳세게 마음 먹고 얇은 지갑을 열어 품이 넉넉한 항아리를 샀다.

올해는 작심을 좀 했다. 


텃밭 무가 워낙 작게 자라서 김장 양념에는 아예 쓰지 못할 분위기라 깍두기랑 동치미로 죄다 처분(?)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 그러자니 동치미로 쓸 무가 많아져서 아무래도 항아리쯤은 있어야겠더라.


김장거리들 사느라 지갑이 잔뜩 얇아져서 조금 고민을 했으나, 굳세게 마음먹고 크기가 넉넉해 뵈는 항아리 하나를 골랐다. 


값을 치르려는 손이 조금 떨리려던 순간, 입심 좋게 옆지기가 5천 원을 딱 깎지 뭔가. 


“와, 당신 대단해!”


가게 주인이 앞에 있는데도 너무 기쁜 나머지 옆지기 등짝을 툭툭 두드리던 그날이 오늘따라 어쩜 그리 새록새록 생각나던지. 그땐 5천 원이 그렇게 커 보였나니.(나는 물건 값 깎는 건 아예, 전혀 못한다. 앞으로도 못할 거야.)


동치미에 쓰고자 배를 산 것도 아마 이번이 처음이지 싶네. 사과도 넣고 생강, 마늘, 쪽파에 이어 삭은 고추랑 갓까지, 여하튼 동치미에 넣으라는 건 거의 다 챙기려고 애쓴 2018년산 산골 동치미. 


항아리 덕분일까, 소금물이 잘 맞은 걸까, 온갖 재료들 때문일까, 작고 매운 무가 한몫한 걸까. 아니, 그보단 항아리를 징검다리 삼아 자연의 기운을 오롯이 받아들인 덕이 더 클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내 입에는 참 시원하게 맛나는구나.  


작고 매운 텃밭 무가 톡 쏘는 동치미 맛에 한몫했을까?
그냥 감으로 맞춘 소금물, 뜻밖에도 농도를 잘 맞춘 걸까?
항아리를 징검다리 삼아 자연의 기운을 오롯이 받아들인 덕이 더 클지도 모르겠군.


예전에 연탄가스 마시면 동치미 물부터 벌컥벌컥 들이마시곤 했다지.(나는 겪지 못했으나 지천명 언저리인 옆지기는 어릴 때 몇 번 그래 봤다네.) 어쩌면 탄산 비슷한 이 톡 쏘는 맛에 몸속 가스를 밀어내든, 녹이든 하는 성분이 담겨 있는 거 같아서 내 굳이 찾아봤네. 


어머나, 얼추 맞나 봐! 동치미에 ‘유황 아미노산’인지 뭔지가 있어서 정말로 연탄가스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를 중화시키는 ‘능력’이 있다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치미 한 사발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다음' 백과사전 말씀부터 ‘충치 예방, 천연 소화제, 노화 방지, 암 예방, 숙취 해소…’ 같은 동치미를 다룬 글마다 끝내주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이번엔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뭔가 믿음이 간다.  


와, 동치미 항아리 가득 귀한 보약이 담겨 있구나. 예전엔 미처 몰랐지. 


동치미쯤, 김장 떨거지로 여겨 온 지난 시간들이 불쑥 부끄러워지는 순간. 시원한 국물 조금 떠서 천천히 입에 넣는다. 귀한 약을 마시듯이. 


알싸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동치미를 마시며 행복한 상상 시작.


한 해살이 지친 이들의 입도 마음도 이 동치미가 시원하게 보듬어 줄 수 있다면, 나도 동치미도 정말 행복할 거야.


‘이 국물에 국시를 말아먹으면 무슨 맛일까. 냉면 맛? 맞아, 옛날엔 냉면을 겨울에 먹었다지. 바로 이 동치미 국물에 말아서. 겨울 손님들 찾아오거들랑 동치미에 국수 말고, 동치미로 술안주 하고, 동치미랑 군고구마 맛있게 냠냠해야지. 얼른 사람들에게 맛 보여 주고 싶다. 이 시원하고 알싸하게 톡 쏘는 동치미를. 한 해살이 지친 이들의 입도 마음도 이 동치미가 시원하게 보듬어 줄 수 있다면, 나도 동치미도 같이 정말 행복할 거야.’


‘동치미’는 겨울에 먹는 김치라는 뜻이라지. 그러니 당연히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겠고. 왠지 산골 겨울 손님들한테 김장김치보다 더 인기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작가의 이전글 ‘뚱딴지처럼’ 살고 싶은 밤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