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표 택배 상자는 ‘사랑과 행운의 상자’가 맞았어!
미리 전화로 예고하신, 새해 첫 시어머니 택배 상자. 북어 말린 거 보낸다 하셨지만, 어디 그러실 분인가? 분명 뭔가 더 있을 거야, 택배 오기 전까지 내내 궁금 또 궁금.
늦은 오후, 드디어 택배 도착! 얼른 열어 보기.
'하이고야', 북어에 딸려온 한가득 떡 뭉치야 예상했지만 비누, 치약, 샴푸에 바디워시는 또 웬 말인고? 바디워시인지 뭔지는 미끈거리는 게 싫어서 여태 제대로 써 본 적도 없고만.
그래, 더는 생각하지 말자. 전화부터 드리는 게 순서. 이제 떡에 대한 건 묻지도 않고 넘어간다.
“비누랑 샴푸랑 바디워시까지 엄청 많네요! 다 어디서 나셨어요?”
(속마음은 “이런 거 집에도 많은데, 전에도 많이 주셨는데, 또 뭐 하러 보내셨어요?”)
추석 때 선물 받으신 거란다. 사지 않으셨다니 그걸로 다행. 오래 둬도 썩지 않는 것이니 이 또한 다행.
“북어는 직접 말리셨어요? 서울에서 어떻게 그런 걸 다 하세요!”
“지난해 가을볕이랑 날이 워낙 좋았잖니. 근데 너무 많이 말라서 많이 딱딱해. 좀 물렁할 때 줄 걸 그랬어. 북어 물에 푹 불려서 아주 많이 패서 먹어야 한다."
“냄새 좋은데요. 걱정 마세요, 잘 불려서 먹을게요. 북엇국도 해 먹고요.”
산골 살면서 뭐든 해님께 맡기는 걸 좋아하지만 여태 생선 말리기는 못해 봤는데. 어머니도 참 대단하시지, 도시에서 저런 걸 다 하시다니. 자식한테 먹이려는 정성으로 애써 해내셨을 거야, 분명!
‘풀어서 정리하는 데만도 이리 시간이 드는데
싸고 보내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꼬?
뭣보다 저 상자를 이 추운 겨울에 택배회사까지 싣고 가는 걸음은
또 얼마나 시렸을꼬?’
전화 끊고 택배 상자 정리에,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느라 시간이 적잖이 걸린다. 시어머니 택배 받을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여지없이 또 밀려드는군.
냉동실을 보니 몇 달 전 시어머니가 택배 상자에 실어 보낸 떡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옆에 꾸역꾸역 새로 입고된 냉동 떡을 쑤셔 넣자니 고맙고 애틋하던 마음은 어느새 뒷전. 그러면 참 안 되는데, 못난 게 사람이고 며느리인지라 약간 짜증이 나려고 한다.
‘휴~ 이 떡은 또 언제 다 먹는담?’
사실, 어릴 때부터 떡을 참 좋아했다. 제사나 명절에만 맛보는 귀한 음식이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귀촌하고 끊임없이 이어진 시어머니표 ‘떡’ 택배 상자 덕분에 언제부턴가 그만, 떡에 질려버렸다.
어쩌다 떡집 앞을 지날 때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떡 김을 보아도, 푸근한 떡 내음이 바람 타고 실려와도 눈길은커녕, 왠지 쳐다보기도 좀 지겨웠다. 갓 만든 떡을 먹어도 맛있는 줄도 잘 모르게 되었다. 가끔은 걱정이 되기도 했지. 떡에 질린 나머지 떡에 대한 미각마저 ‘상실’한 것만 같기도 해서.
냉동실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곤 하는 시어머니표 냉동 떡. 양이 워낙 많아서, ‘참’만으론 해결이 안 되어 밥 대신으로도 자꾸 먹어 주어야만 떡으로 꽉 찬 냉동실을 비울 수 있었다. 비워야 또 들이닥칠 택배 상자를 채워 넣을 수 있으니 먹기 싫어도 먹어 치우려고 참말 애썼다. 버릴 수는 없으니까. 시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그 떡에 스민 누군가의 땀과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한데 이번엔 지난번 택배에 담겨 온 떡이 여직 냉동실을 지키고 있다 보니(나름 열심히 먹느라 참말 애썼음에도!) 귀한 떡 앞에 두고 짜증 비슷한 심정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 일보직전.
‘이제 떡은 어머니가 드시고 그만 보내주세요. 저, 이제 떡에 너무 질렸어요. 보내주시는 거 다 먹기가 정말 힘들어요.’
다시 전화기 들어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만 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가슴에 손 얹고 얼른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가 또 누군가. 숱한 택배 상자에 실려 온 시어머니 사랑에 흠뻑 물든 산골 며느리! 전화 너머로 들리던 그 밝고 신나고 행복한 어머니 목소리를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저리도 행복해하시는데, 그만 보내라고 말하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어. 나도 고맙게, 기쁘게, 행복하게 어떡하든 먹어 보자고. 어머니의 사랑이니까, 맛없어도 맛있게! 그나마 말린 북어는 냉동실 안 차지할 테니 그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야.’
하여, 오늘 저녁은 밥 대신 떡! 반찬 준비 안 하고 좋긴 하네. 고슬고슬 떡고물에 시어머니 사랑이 폴폴 묻어나는 것만 같아. 그렇다면 맛은? 그냥 밥 먹는 기분이랑 비슷해. 그러니 앞으로도 떡은 간식보단 밥으로 먹어야겠어. 그래야 한 번에 많~이 먹을 수(없앨 수) 있을 테니까.
‘밥’은 ‘맛’ 따라 입에 담기도 하지만 또 많이들 살려고, 살기 위해 먹기도 하잖아. 그러니 ‘떡심’도 ‘밥심’만큼 제 몫을 분명 할 거야. 그러니 산골혜원, 떡에는 질렸어도 떡에 실린 시어머니 마음만큼은 평생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밥 대신 떡 저녁 잘 먹었으니 이젠 북어 요리를 고민해 보련다. 북어찜? 북어조림? 북엇국? 술에 찌든 속풀이에 좋은 ‘내 사랑 북어’로는 뭘 해도 맛나겠으니 조만간 저 북어들 열심히 패 줘야겠다. 속상한 일 있을 때 하면 더 특별한 기분이 들 것도 같네.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북어 패고 두들기기. 색다른 재미가 다가올 것만 같아서 벌써부터 기대가 잔뜩 되는구나. 역시 시어머니 택배 상자는 ‘사랑과 행운의 상자’가 맞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