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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Apr 12. 2019

파김치랑 연애하는 기분이야

난생처음 촉파김치, “역시 제철음식이야!”

다 앞집 할머니 덕분이다. 내가 파김치(?)가 된 건.


앞집 텃밭에는 쪽파가 한창이다. 겨울엔 있는지도 몰랐건만 봄기운 일렁이자마자 파릇파릇 쪽파가 눈에 쏙쏙 들어왔다.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힘이 넘실대는 푸른 이파리들을 보면서 마냥 부러웠다. 우리도 지난해 김장 때 다 쓰지 말고 좀 남겨둘 걸, 후회도 잠시 했고.  


이런 내 맘이 팔순 할머니 귀에도 들린 걸까. 열흘쯤 전에 쪽파 한 뭉치 안겨주시더니 며칠 지나 다시 또 한 다발 건네주신다. 


쪽파 뭉치를 두 번이나 안겨 준 앞집 할머니 덕분이다.  내가 난생처음 쪽파김치를 담그게 된 건.


기뻤다. 하지만 다듬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았다. 쪽파전 두어 번 해 먹고 나머지는 그냥 밭에 박았다. 봄에 뽑은 쪽파는 다시 심어도 자라지 않는다고 아랫집 아주머니가 말씀하시던데,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시들시들해지는 쪽파. 보는 마음이 안타까우면서도 선뜻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저 쪽파들을 한 번에 처리하자면 김치를 담그는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귀찮았다. 다듬기보다 김치 담그기가 더 하기 싫었다. 봄이 제 아무리 좋아도 아직은 김치 노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땅으로 스러지는 쪽파들을 보니 마음에 자꾸만 걸린다. 에라 모르겠다, 끝내 마음을 먹는다.


다듬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아서 그냥 밭에 박았더니 쪽파가 하루하루 시들해진다.


‘내가 농사지은 쪽파였으면 저리 시들도록 그냥 두었겠어? 내 새끼가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지. 얼른 일어나 쪽파한테 가라, 가라!’


시들거리는 쪽파 쑥쑥 뽑아서 반나절 넘게 다듬는다. 이젠 다듬기에 인이 박혔는지 허리 고개 아픈 것 빼곤 괜찮다. 문제는! 쪽파김치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는 사실. 늘 딱 김장에 쓸 만치만 심다 보니 파김치까지 만들 기회가 없었네.


도리가 있나. 인터넷 선생님께 묻고 또 묻는다. 그러곤 내 방식으로 적당히 승화시키기. (집에 있는 재료로만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반나절 넘게 쪽파 다듬기. 이젠 인이 박혔는지 허리 고개 아픈 것 빼곤 괜찮다.
곱게 다듬은 쪽파가 참 곱다. 이 맛에 다듬기를 한다니까!


김치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닌데 괜스레 설레는 기분. 이럴 땐 꼭 김치랑 연애하는 느낌이다. 찹쌀풀을 많이 넣었는지 양념이 좀 됨직해서 걱정은 됐으나 어찌 되겠지, 하는 맘으로 난생처음 쪽파김치 마무리! 저녁밥상에 두근대는 맘으로 조심스레 올렸다. 


“역시 제철음식이야! 이 매운맛이 겨울을 버티게 한 힘일까?”


쪽파 다듬는 데 손 보탠 옆지기가 감탄을 되풀이하면서 한 접시, 두 접시 속속 비운다. 김치 담근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흐뭇한 일은 없으리니.  


가느다란 쪽파김치, 보기만 해도 맛있다!
난생처음 쪽파김치 완성!


휴우, 다행이다. 다 쪽파 덕분일 테지. 얇고 작아서 다듬기는 힘들었지만 아마도 그래서 더 맛있을 것만 같으니까. 그동안 시큼한 김장김치만 내주기 쫌 거시기한 마음이 있었는데, 봄바람 타고 하나둘 날아들 산골손님한테도 제철김치 맛 보여 줄 수 있게 됐으니 이 또한 참말 기쁘지 아니한가!


작은 통 하나도 다 채우지 못한 쪽파김치 담그기. 파김치 될 만큼 고된 일은 정말 아니었는데 저녁 먹고 나니 기운이 좀 없다. 처음 해 보는 일 앞두고 아무래도 손보다 마음을 많이 써서 그런 걸까? 어쩌면 덜 익은 파김치 안주로 서너 잔 죽죽 넘긴 막걸리 덕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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