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Apr 15. 2019

‘딱 이렇게 평생 살아도 좋겠다!’

김매기 반나절에 숙취도 마음도 풀어진 날

어제 반가운 산골 이웃들이 찾아와서 신나게 술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에 있는 막걸리가 딱 떨어졌다. 갑자기 생긴 자리다 보니 집에 술이 얼마 없어서 그리 된 것. 보통 땐 독해서 잘 안 먹는 오미자술이며 담금술까지 꺼내는 바람에 아침 늦게 늦게 일어났는데도 참 오랜만에 숙취란 놈이 밀려온다. 도시에선 흔했지만 산골에선 자주 만나기 힘든 순간. 왠지 오늘 하루 마냥 빌빌댈 것 같은 느낌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던 김매기를 하러 나섰다. 


오랜만에 숙취가 밀려온 날, 김매기 하러 밭으로 나섰다.


백수 산골살이의 특권을 제대로 누리자면 이런 날 뒹굴뒹굴 뒹굴어도 좋을 것을. 밭매기를 더 미루면 안 된다며 나보다 더 술 많이 먹어 놓고는 아침부터 텃밭에서 몸을 부리는 옆지기 덕분에, 낯짝 두꺼운 나도 도저히 집 안에 못 있겠더라. 


시작할 땐 몸도 마음도 무거웠는데 뜨뜻한 햇볕 등에 지고 호미질을 하니 슬슬 기분이 좋아진다. 풀 쑥쑥 뽑아서 흙 탈탈 터는 김매기. 너무 오래만 하지 않으면 마음이 꽤 후련해지는 일이다. 그래선지 씨 뿌리기보다는 잡초 뽑는 이 일이 나는 훨씬 더 좋다. 


밭일도 역시나 옆지기가 게으른 나보다 잘하고, 또 열심히 하고!
엉덩이 의자랑 호미만 있으면 밭에 있는 시간도 충분히 그럴듯하다.


허리와 엉덩이가 슬슬 아파 오면 한바탕 쉬고 참도 먹으면서,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니 딱 한 골을 깨끗하게 만들어 냈다. 몹시도 흐뭇한지고~ 계속 물을 들이켜게 만들던 숙취도 잡초랑 같이 깨끗이 사라진 것만 같다. 


나머지 밭일은 옆지기에게 맡기고 봄볕에 바싹 잘 마른 빨래를 걷는다. 지는 햇살 사이로 “이삐요 이삐~♪” 새소리가 흐른다. 아, 이토록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간이라니…. 


지난해 거둔 고구마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도 마냥 고맙기만 한 날.


저녁밥이 모자라 참으로 쪄 둔 고구마를 끼니 삼아 먹는데 마음 한 끝이 구수하게 시큰하다. 


‘이렇게, 딱 이렇게 평생 살아도 좋겠다!’ 

숙취까지 안고 하루 종일 일했는데도 이토록 평온한 마음이 찾아오는 건 밭매기 때문일까, 산골 이웃들 덕분일까, 아니면 숙취 탓일까. 아마도 그 모두 덕분이겠지. 내가 평생 사랑하며 살아갈 자연과 사람 그리고 술!   



작가의 이전글 파김치랑 연애하는 기분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