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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y 13. 2020

드디어 감자 싹을 보고야 말았다!

세상 모든 ‘우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은 밤

3월 이십 며칠. 감자를 심었다. 지난해 텃밭에서 거둔 감자였다. 심으면서 걱정이 됐다. 작고 쪼글한 저 몸에서 과연 싹이 날까, 싹을 틔울 수 있을까. 


4월이 끝나갈 무렵까지 감자밭은 휑했다. 왠지 슬펐다. 감자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네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운 작고 작은 너에게, 다시 새 생명 틔우라는 크나큰 ‘임무’을 맡겼으니 얼마나 힘겹고 어려웠을까…….  


감자를 심으면서 걱정이 됐다. 작고 쪼글한 저 몸에서 과연 싹이 날까,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이대로 감자 싹을 볼 수 없게 된다면 뭔가 내 안에서 무너질 것만 같은 애달픈 두려움에, 게으른 텃밭 농부는 뽑아야 할 풀 그득한 밭들 뒤로하고 그저 감자밭 언저리를 서성이곤 했다. 


아, 자연의 힘일런가, 신비이던가. 오월 어느 날 그예 싹이 나고야 말았다, 드디어 싹을 보고야 말았다! 감자 싹을 처음 본 순간 얼마나 기뻤던지, 얼마나 고마웠던지,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자연의 힘일런가, 신비이던가. 오월 어느 날 그예 감자 싹이 나고야 말았다!


감자한테 물어보고만 싶었다.


‘한 달 반 가까운 시간 동안 땅속에서 넌 무얼 했니.
어느 때보다 추웠던 3월, 4월
어느 해보다 날씨가 요상했던 이 봄, 얼마나 힘이 들었니.
그런데도 참고 버티고 이기고 끝내
싹을 올릴 수 있던 그 힘은 어디서 생겨난 거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니.
장하다, 멋지다, 참참 대단하구나!’


다른 때는 정말 안 그랬는데, 밭에 있는 온갖 풀 모른 척 지나칠 때가 태반이었는데 감자밭에만 가면 조금씩 손을 놀린다. 감자가, 감자 싹이 고맙고 이쁘기만 해서 얘네들 못 자라게 막을 풀들을 자꾸 뽑아 주고만 싶다. 예전엔 정말 안 그랬는데……. 


감자 덕에 뜻밖에도(?) 전에 없이 마음 졸인 덕분인지 감자밭에 다녀오면 자꾸 눈에 밟히는 책이 있다. 하늘에 계신 임길택 선생님이 남긴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누가 울 때 왜 우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울 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울게 하는 것처럼 나쁜 일이 이 세상엔 없을 거라 여깁니다. 짐승이나 나무, 풀 같은 것들이 우는 까닭도 알고 싶은데, 만일 그 날이 나에게 온다면,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덩실덩실 춤을 출 것입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_<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에서


감자밭에 다녀오면 자꾸 눈에 밟히는 책이 있다. 하늘에 계신 임길택 선생님이 남긴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사람이 자연의 마음을 감히, 어찌 알 수 있으랴만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차가운 땅속에서 가끔은 감자가 울었을지도 모른다는, 씨감자 몫을 하기엔 모자라기만 한 자기 몸뚱이를 땅에 부린 나를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어쭙잖은 생각 또는 걱정. 


추억의 책장을 펼치듯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를 보고 어디엔가 남겼던 내 글을 열어 본다. 15년도 더 전 세상에나, 무려 이십 대였던 내가 쓴 글. 


“이 책. 읽는 내내 힘이 들었다. 책 내용이 너무 아름답고도 슬펐기 때문이다. 몇 장 보고는 덮고, 몇 장 보고 덮고, 하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책 읽는 시간도 많이 걸렸다. 시골, 산골, 탄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한 선생님이 쓴 이야기가 왜 이렇게 가슴 저리게 만들었을까? (……) 난 내가 마음 약한 게 참 싫은데. 임길택 선생님 같은 분을 책에서라도 만나니 참 반가웠다. 그러나 이젠 하늘나라로 가셨다니. 아쉽다. 아깝다. 아마 나를 만났더라면 임길택 선생님은 우는 ‘나’를 사랑해주셨을 것이다.” 


자주감자, 하얀 감자가 따로 있는 줄도 몰랐던 그때. 하물며 감자 싹은 본 적도 없던 그때. 철없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건만 그래도 달라진 게 있기는 하구나. 감자를 심고, 키우고, 거두고 먹으며 살아간다는 것.


에, 또, 그리고……. 덧없이 우는 ‘나’를 감자가, 감자 싹이 안아 주고 보듬어 준 시간을 여리게나마 느끼게 된 것. 


감자가, 감자 싹이 고맙고 이쁘기만 해서 얘네들 못 자라게 막을 풀들을 자꾸 뽑아 주고만 싶다.


깜깜한 산골 밤하늘에 “휘이 호~” 소리가 흐른다. 귀신새라고도 부르는 호랑지빠귀다. “개골개골 개굴개굴.” 연이어 개구리들도 울어대니 늦은 밤 귀가 호강한다. 


호랑지빠귀도 개구리들도 슬퍼서 우는 건 아닐 터인데 왜 우리는 ‘새가 운다’고, ‘개구리가 운다’고 말하게 되었을까. 그 까닭은 뒤로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 모든 ‘우는 것들을’ 사랑하고만 싶다. 개구리가 울고, 호랑지빠귀가 울고 또 내 마음도 맑게 울어 예는 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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