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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카페인 3. 아찔한 커피와 첫 만남


 어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카페인의 포로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커피가 술이나 담배처럼 몇 살까지 먹어선 안 된다는 게 딱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는 어쨌든 금기되던 유년 시절엔 커피에 엄마의 하이힐이나 립스틱처럼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금단의 매력이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엄마가 “먹어볼래?” 하면서 권했던 믹스커피는 달콤함도 부족하고 밍밍하고 어딘지 애매한 구석이 많은 맛이었다. 좀 더 자라 여전히 커피의 세계에 대해 전혀 모를 때, 어디선가 등장한 아메리카노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가진 완벽한 어른의 맛을 상징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맛도 모르면서 그 자체를 동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만났던 강렬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등학교 3학년, 친구 C와 광복동 도넛 가게에 도넛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놓고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그 시절에도 이미 아메리카노의 참맛을 아는 친구는 많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둘 다 아메리카노가 초면이었다. 사실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C가 가진 쿠폰이 도넛 한 개와 아메리카노 한 잔이었기 때문에 싫어도 하는 수 없었다. 조금씩 맛보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내가 물었다.

 “맛없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길 바라는 말투였을 것이다. 고상하고 어른스러운 맛이라는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C가 격하게 동의를 표한 다음에는 둘이서 어떻게 하면 이걸 좀 더 먹을 만하게 만들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스틱 설탕 한 봉지를 깔끔하게 탈탈 털어 넣은 다음 잘 휘젓고 다시 마셔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나에게 C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도넛이랑 같이 먹으면 낫지 않을까?”

 도넛 한 입 먹고 커피 한 입 마시는 정상적인 모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말했듯 우리는 아메리카노를 이미지로만 접해온 사람들이었으니까. 우리는 과자 광고에서 봤던 것처럼 설탕 도넛을 커피에 찍어 먹는 기행을 선보였다. 맛은 어땠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꽝이었다. 그날 우리는 도대체 왜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쓰기만 한 정체불명 고통의 액체에 열광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1년 후, 나는 정확히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쓰기만 한 정체불명 고통의 액체에 열광’하는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잘못 알고 있었던 것 하나를 정정하자면, 나는 ‘열광’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중독’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증상은 더 심각해졌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몸에 피 대신 카페인이 흐르는 보통의 현대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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