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쿼카킴 Jan 12. 2019

카페인 10. 내게 카페인의 자유를!


 18세기 프랑스의 외교관 찰스 모리스 탈레랑은 커피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바흐는 칸타타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맛있는 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 무스카텔 포도주보다 달콤하다. 커피가 없으면 나를 기쁘게 할 방법이 없다.”

 커피를 향한 이 찬사에, 나는 완벽하게 동의한다.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고소하기까지 한 다정한 커피의 위로를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나는 대부분의 현대인과 똑같이 카페인에 완전히 종속되어 살아왔다. 요즘은 최대한 무의식적인 흐름에 따라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지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고 마시려고 애쓴다. 또 가능한 디카페인으로 마시고 다른 메뉴도 충분히 고려해보는 편이다.

 솔직히 아직까진, 더 행복한 것 같지 않다. 내게 카페인은 단순한 음료의 의미를 넘어 추억과 습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당장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풍경이 많다. 앞서 말했던 커피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친구 L과 제주도로 뚜벅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면허도 없고 돈도 없는 우리는 그 와중에 가고 싶은 곳은 또 많아서 바쁜 일정을 잡았었다. 그리고 제주도 한복판에서 태풍을 만났는데 버스는 우리를 내려준 채 떠났고, 한없이 뒤집어지는 나약한 우산을 황망히 바라보며 근처 낯선 카페로 급히 몸을 숨겼다. 비를 맞은 뒤에 딱 알맞게 족욕 카페였다. 밖에는 계속 세차게 비가 내리는데,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L의 아이패드로 영화 <레옹>을 보면서 뜨거운 라떼를 마셨다. 버스 시간에 맞춰 열심히 움직여야 앞으로 가야 할 곳을 다 다닐 수 있었지만, 그 순간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예정된 일정을 모두 끝마치지 않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더라도,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추억을 떠올릴 때, 나는 언제라도 완벽하게 카페인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감을 느낀다. 그러나 전처럼 생각 없이 마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카페인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건강과 같은 현실적인 요소도 고려하고, 다른 선택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 오롯한 나의 생각과 의지대로 판단하고 결정 내릴 수 있도록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추억들이 앞으로는 조금 더 다양한 공간과 조금 더 여유 있는 시간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마음의 위로를 위해서 굳이 밤잠 못 이루지 않아도 되는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커피의 색으로 칠해지던 우리의 생도 조금 더 다채로운 빛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인 9. 이게 정말 나의 선택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