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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카페인 9. 이게 정말 나의 선택일까?


 노량진에서 젊음을 불사르다 최근 한결 여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N을 만났다. 카페인에 대한 최근의 고민을 털어놓자 N은 격렬하게 공감을 표현했다. 카페인을 끊고 싶어도, 도저히 커피를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노량진에 엄청 맛있는 커피가 있다며 흥분해서 얘기하다가도, 다시 우울해져서 자기도 너무 커피 의존도가 심하다고 말했다.

 “내가 어떤지 알아? 아침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먹어야 해. 강의에서 앞자리에 못 앉더라도 커피는 꼭 항상 있어야 하고, 가끔 늦어서 지각하게 될 때도 커피를 안 마실 수가 없어.”

 노량진에 대한 N의 이야기는 다 결이 비슷했다. 월세는 지나치게 비싸고, 방은 형편없고, 학원엔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피곤하고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 묵묵히 자신의 공부에만 치열하게 빠져있는 공기. 카페인은 N에게 노량진을 대표하는 기억이자 그곳을 함께하던 그야말로 ‘생명수’였다.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집 앞에 있던 도서관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자주 가던 그곳엔 항상 책 대신 문제집을 펴고 앉은 사람들과 꼭 그만큼의 커피가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풍경의 일부로 살아온 나에게는 이미 익숙한 풍경인데도 유독 수많은 커피가 눈에 걸렸다. 카페인은 기호식품이라는데 덜 자고 더 많이 집중하고 더 좋은 효율을 위해서 우리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카페인을 마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커피산업의 발달과 사회적 분위기는 ‘자유의지’로 카페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더욱 조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히 모든 걸 얘기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삶에 대해서도 카페인과 마찬가지의 착각을 할 때가 많다. 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에서,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에 따르기보단 사회적으로 강요되고 유도된 대로 흘러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저마다의 색이 있고 가고자 하는 길도,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기왕이면 남들보다 더, 최소한 남들이랑은 비슷한 수준과 속도로 나아간다면 좋겠다는 생각 속에서 우리는 선택의 가능성을 잃는다.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있다고 믿지만 솔직히 ‘이게 정말 오롯한 나의 선택이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카페인과 내 인생을 뗄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더 바빠지고, 더 많은 결과를 내고, 더 많이 억제하며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론, 사회,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우리는 카페인이 주는 무감각한 중독에 빠져들 듯이 관성적 삶에도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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