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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게임 5. 현실에서도 행복해지고 싶어!


 대학생 시절, 마지막 학기에 나는 거의 PC방에서 상주하며 엉망진창으로 학교에 다녔고 주위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졸업했다. 게임에 빠져 밤을 새우기도 하고 식사를 미루거나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일상이 되었다. 게임 속에서 나는 관계를 맺었고, 성장했고, 성취했다. 벗어나기 어려운 행복이었다. 

 한편으로는 내 앞에 기다리는 졸업과 취업이라는 거대한 현실의 벽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던 탓도 있다. 로그인하는 순간, 나는 현실의 모든 어려움을 잊고 곧장 액자 속 세계로 빠져들었다. 목표는 명확했고 노력의 대가는 분명했다. 곧 밥을 먹을 때나 공부할 때나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게임 생각뿐이었다. 물론 그건 현실을 바꿔주진 못했지만.

 같은 게임 동료였던 친구 L이 새로운 게임에 빠져 나를 배신하고 회사원 P와 더불어 새로운 게임에 심취했다. 옆에서만 봐도 정말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L은 “이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며 손을 털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RPG에서 잔뼈가 굵은 L이 우선 깜짝 놀란 것은 커뮤니케이션보다 경쟁이 우선되는 게임 분위기였다. 매일매일 끝내야 할 할당량의 숙제가 있고, 그건 캐릭터를 잘 키우고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만 쉬어도 곧 같이 하던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게 되자 L은 ‘조급해하지 말고 나는 나의 속도로 게임을 하자’며 취업 준비할 때나 하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했다. 그런데도 회의감은 금세 다시 찾아왔다.

 플레이어의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는 명성이 자자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나를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걸 개발할 포인트가 부족해서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애지중지 키운 내 캐릭터가 순식간에 ‘망캐(망한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최선의 조합을 선택해서 잘 키우면 좋은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게 끝이었다. 게임에는 벗어날 수 없는 스토리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현실을 좀 잊고 재미있는 걸 하자고 시작한 게임인데 이건 거의 인생을 한 번 더 사는 느낌이잖아.”

 심지어는 게임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 그만큼 유리하고 앞서 달리는 것까지 똑같다고 치를 떨었다. 우리는 현실을 닮은 게임에서는 행복할 수 없었다. 당연히 현실에서 행복할 수 있을 리 없다. 게임이 주는 망각과 환상의 즐거움과 현실로 돌아와 마주하는 끝없는 무기력 사이에서 나는 진짜 즐거움과 행복, ‘논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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