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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스마트폰 5. 비좁아지는 나의 세계


 이쯤에서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을 나의 당적을 밝히자면 나는 녹색당원이다. 지인들의 추천과 당의 지향에 대해서 정독하다가 “나야말로 천생 녹색으로 된 인간이다!” 하면서 계속 당비를 내고 있는데, 사실 당에서 하는 모든 일에 찬성하는 건 아니고 심지어 우리 당이 뭘 하고 있는지도 대체로 잘 모르고 산다. 아무튼 유령 같은 당원이라도 꼴에 당원이라고 선거가 있으면 꼭 녹색당을 찍는데, 커뮤니티를 열심히 하던 시절에 생각보다 녹색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어? 이러다가 국회의원 한 명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런 행복한 착각을 했더랬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독자유당보다도 낮은 득표율을 받았다. 기독자유당이 나쁘고 좋다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는 SNS며 커뮤니티에서는 이름조차 언급된 적이 없는 곳인데 이렇게 실제로 호응이 큰 당이었다니 상상도 못 했다는 뜻이다! 내가 갖고 있는 정보와 너무도 다른 현실의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나의 세계는 정말 끔찍할 만큼 좁았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커뮤니티나 SNS는 실제의 현실과 아주 다른 감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원하는 글만 읽고, 그런 사람들만 친구로 연결해두고, 내 기준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바로 차단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생각과 처지인 사람들을 만나 공감과 위로를 얻는 데 정신이 팔렸다. 그 자체가 한계가 되어 버린 것도 모르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감정적으로 편안함을 주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구나’ 혹은 ‘나보다 심한 사람도 많이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나의 생활에 위로와 정당성을 더해주었다. 세상이 어쨌거나 사람들은 살아가고,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강렬한 소속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건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안주하고 편안함을 얻는 데서 그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력할 필요도 없었고, 스트레스받는 일은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했다.

 이런 생각은 실제 삶의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사람을 사귈 때도 마음속으로 나와 맞는 사람일지 아닐지 판단하려 들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서로 에너지 낭비일 뿐이라는 게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우리가 학생처럼 억지로 매일 봐야 하는 사이도 아닌데, 맘 안 맞고 싸울 것 같으면 서로 보지 않으면 될 일이라는 간단한 생각은 인터넷을 벗어난 영역에서까지 나를 고립되고 갇힌 사람으로 만들었다. 점점 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줄어들었고, 빛나는 아이디어와 용감한 생각들은 습관처럼 내뱉는 “맞아, 맞아” 에 묻혀 의욕을 잃고 희미해졌다.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의 방대한 정보는 내 사고를 좀 더 풍족하게 만들긴 했지만, 필요 이상의 정보들로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일반적’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고, 세상 모든 문제에 참견하고 내 의견을 밝혀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감정적인 부분도 격해졌다. ‘그럴 수도 있지’ 같은 관용은 거의 변절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사건이 나를 거쳐 갔고, 함부로 말을 하고 휩쓸리며 마음대로 감정과 시간을 낭비했다. 전혀 그럴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커뮤니티 속 세상에서 그건 정말로 중대한 문제였고 마치 기본적인 인간의 소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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