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락재 Oct 24. 2021

우리 모두는 잃으며 살아간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에 나오는 '우리는 모두 잃으며 살아간다' 라는 문장을 처음 보았을 때, 심장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뼈아프게 정곡을 찔린 것 같아서였지요. 우리 두 사람 역시 지난 몇 년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월리의 눈을 잃은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요. 실명과 약시, 시야 결손이라는 낯선 단어들이 우리를 따라다녔고, 월리는 늘 여기저기 부딪치고 넘어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월리의 왼쪽 눈은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외사시는 한쪽 시력을 잃은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질환이었지만,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우리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지요. 이 불편한 경험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어느 봄날, 우리를 조금은 변하게 해준 일이 생겼습니다. 지하철 역에 있던 월리에게 한 남성이 다가와 쇼핑몰로 가는 길을 물었다지요. 월리가 출구 번호를 일러주자 "혹시 출구까지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시각장애인이라 혼자 찾아가기 어려워서요" 하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아주 밝고 씩씩한 말투로 말이지요. 다시 살펴보니 보행스틱을 든 월리 또래의 시각장애인이었는데, 눈이 어두운 월리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지요. 함께 출구까지 올라가는 길, 왼쪽 눈 실명을 털어놓는 월리에게 그는 장애 등급을 물었습니다. 아직 내키지 않아 장애 등급은 신청하지 않았다고 월리가 대답하자, 그는 "장애인 혜택이 얼마나 많은데요. 신청해보세요" 하고 싱긋 웃었다지요. 그늘없이 밝고 긍정적인 그 모습이 월리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나봅니다.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면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 월리는 오래 고민한 끝에 선글라스를 벗었습니다. 욱신거리는 눈을 보호하기 위해 끼게 된 선글라스였지만, 언젠가부터는 선글라스가 있어야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안전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시 증상이 뚜렷해진 이후로는 더더욱 그러했지요.  그런 선글라스를 벗는다는 것은 자신의 장애를 똑바로 바라봐야하는 일이었지만, 월리는 용기를 내주었습니다. 아마도 싱그러운 웃음을 가진 이를 만났던 덕분이었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장애인 복지카드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장애 등급 신청을 마다했던 것은 저였습니다. 월리가 영영 눈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요. 그런데 용기를 내어 선글라스를 벗은 월리를 보자, 이제는 미련한 고집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눈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5년이 걸린 셈이었지요.


우리가 잃은 것은 눈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렵 월리와 저는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었으니까요.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가는 일은 말처럼 근사하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사이 종양이 시한폭탄처럼 터져버릴까봐 초조함은 갈수록 더해갔지요.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좋은 치료법을 찾고 종양이 작아졌다는 진단까지 받았을 때, 우리가 느낀 감격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살았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지요. 그러나 1년 뒤 종양은 다시 커졌고, 우리는 헛된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망연자실했습니다.


지금의 명상 선생님을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종양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 그 본질은 월리의 병든 생각과 마음'이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치료도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니, 치료에 기대기보다는 자신 안에서 답을 구할 것을 당부하셨지요. 몇 년 전의 우리였다면 아마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코웃음 쳤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랜 투병을 거치며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이제는 그 조언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찾던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 이것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지요. 하지만 매일 나와 마주 앉는 것은 매번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을 숙고하기에는 종양에 대한 월리의 두려움이 너무 컸던 탓이지요.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지던 그를, 선생님은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어느 날 월리가 말하더군요. 종양이 아니라, 내가 만든 두려움이 나를 죽이고 있더라고. 이제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말입니다.


모두가 그러하듯, 우리는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습니다. 건강과 눈을 잃었고, 엄마와 어머니를 잃었으며, 갈 길을 잃고 한없이 헤맸지요. 그러나 지나고 보니, 아프게 잃은 만큼 귀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법도, 내 속을 헤아리는 법도 잃기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것들이지요. 그러니 다시 무언가를 잃는다 해도 아주 헛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봅니다. '다 잃은 것 같아도 또 얻는 것이 있더라'는 어느 노배우의 말처럼 말이지요.

이전 11화 시절인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