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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락재 Oct 24. 2021

시절인연

언젠가 위암 투병 중이던 한 작가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투병 후 멀어진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잘 살아, 나쁜 년들아’였는데, 아픈 사람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싶어서 쓴웃음이 났습니다.


성품 좋은 월리에게는 절친한 선후배도, 직장 동료도 참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학교 미식축구 동아리 후배들과는 친형제보다도 가까운 사이였지요. 사회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각별했던 그들은 늘 월리의 집에서 주말을 보내며, 이웃들에게 '조폭집단이 아니냐'는 말 못할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월리에게 그들은 20년이 넘도록 가족같던 사람들이었고, 간병으로 힘들었던 저에게는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습니다. 뇌수술한 월리를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와주고, 끼니도 거르기 십상이던 나의 식사를 걱정해주던 다정한 사람들. 수술 후 한 달 만에 목욕하는 월리를 씻겨주고, 무료함에 베이킹을 시작한 그를 위해 오븐을 선물해주던 속깊은 사람들. 그들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참 고맙고 든든했지요.

그러나 달라진 생활은 그들과 월리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매일 연락하고 매주 만나던 이들의 연락이 점차 끊어졌고,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스팸이었지요. 월리가 먼저 연락해보아도 그 뿐이었고, 돌아오는 전화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 이외에는 누구도 만날 일이 없어진 월리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렸지만, 그들끼리는 여전히 매주 함께하는 돈독한 사이라고 SNS가 친절히 알려주었지요. 설상가상으로 누군가 나쁜 뒷소문까지 만들어내는 모양이었습니다. 어느 나이많은 선배가 ‘그렇게 살지 말라’며 우리에게 막말을 던지고 간 뒤, 저는 오래도록 분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아픈 사람을 두고 책임지지 못할 소문까지 퍼뜨리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절친한 이들을 잃은 월리는 병을 앓은 자신을 탓했습니다. 더는 술자리에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이지요. 서운한 마음이 클 텐데도 월리는 한번도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더 속상했던 저는 신의없는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 뒤로 시간이 꽤 흐르고 야속한 마음이 흐릿해지고 나서야, 지난 미움의 이유를 뚜렷하게 알 것 같았습니다. 좋아하던 그들과 멀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은 아쉬움의 다른 이름일 겁니다. 그러나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인연도 다 때가 있어서 오고 가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지요. 월리의 잘못도, 그들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함께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을 뿐이지요.

곁에 누가 있고 없음이 이토록 우리를 흔드는 것은 실은 내 속이 공허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고단해서 그들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그 때의 우리처럼 말이지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지만, 내 안의 결핍을 다른 이의 온기로 채우려는 마음은 결국 자신에게 상처를 남기더군요. 타인과 내 마음이 같을 리 만무하니, 그럴 때마다 서운함과 원망이 늘어날 밖에요. 그래서 다짐합니다. 우리 스스로 충만해지기로. 혼자서도 더 바라는 것 없이 충만한, 그래서 둘이 되면 기쁨이 두 배가 되는 삶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오랜 벗들에게 월리의 마음을 대신 전합니다. 20년이 넘도록 친형제보다 더 형제처럼 지내온 그 정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고, 그 덕에 지금껏 잘 살아왔다고 말입니다.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납시다, 우리.

예전처럼 반가운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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