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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26. 2017

그렇게 사는구나

오늘 아주 오랜만에 산엘 갔어. 

늙으니 겨울이 무서워, 

추위도 무섭고 세찬 바람도 무섭고, 

정분난 북한산을 그토록 그리워하면서도 자주 못가는 이유야, 

나이 드니까 정분조차 날씨 따라 울증이 와, 

몸만 사위어가는 게 아니야, 정신도 사위어 간다니까, 

흑산을 읽을 때 나는 정약전이 유심히 봐지데, 

죽음 앞에 당당한 약종에 비하면 비굴한 삶이었는데 비굴하다 하여 생각조차 없을까.... 

그러나 도저한 생각을 한다 해도 삶은 지나치게 강하고 견고해서 쉬 바꿀 수가 없어., 

자신의 의지가 아닌 관성에 휘둘리는 것을 안다 하여도 소소한 습관조차 버리기 어려운 것이 삶이야.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답 없는 문제들은 왜 이렇게 내 머릿속을 좋아하는지, 

생각을 몰아내기에는 음악만 한 도구가 없어. 

차에 타서 시디를 골랐어, 

마음이 편안할 때는 그냥 에프엠을 듣고 마음이 편안치 못할 때는 음악을 골라서 듣곤 하지, 

요즈음 주로 듣던 차이콥스키를 빼고 마리아 칼라스를 넣었어, 

난 언제나 시디 프레이어가 시디를 살짝 올려놓으면 스르륵 담아가는 것이 신기해, 

얼마나 부드럽게 흡수하는지. 

이런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나보다 촌스럽다고 하는데 난 정말 신기한 것이 너무 많아, 

여전히 전화도 신기하고, 비행기도 신기하고, 시디도 신기하 해서.... 

그 얇고 딱딱한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에서 그렇게나 한없는 노래가 솟아 나온다니,

이런 신기한 마술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하여간 사가지고 엄청 많이 들었어. 카스타 디바가 나오니 

세상에, 아이고, 순간에 마음이 말이지, 누군가가 내 안에 공기를 훅 집어넣은 것처럼 푹 부풀어 오르더라니까, 정결한 여신은 달을 의미한다고 해, 마리아 카라스 목소리에는 약간 쇳소리가 섞여 있어. 그 쇳소리가 노래에 강인한 힘을 주고 음을 분명하게 잡아주는 것 같아. 놀라울만한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 누구나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목소리, 부드러움이 없는 카스타 디바, 

내가 이야기했던가, 음악 듣기에 가장 좋은 곳은 차 안이라고, 조금 볼륨을 크게 해놓으면 온 공간에 음악이 가득 차. 새어나가지도 못해, 계속 눌려 담아져 점점 음악의 힘이 세진 다니까, 더군다나 이 여신의 목소리는 정말 디바라고, 그것도 카스타 디바, 레냐바 넬 실 레인지오, 도니제트의 루치아,.....

어느새 삼천사에 다 왔더군. 노래 듣는 동안 정말 무념무상했지, 좋았어, 혼자여서 좋고 음악 있어서 좋고 

더 뭘 바라나... 

등산화를 조이고 배낭을 메고 머플러를 두르고 손폰에서 음악을 찾아 플레이시키고 

걷기 시작..... 당연히 아무도 없지, 나처럼 산과 정분난 여자 어디 흔하려고, 

워낙 공간 지각력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금세 낯이 설만큼 이 친구 내게 삐친 것일까? 길이 서네, 낯설어

부왕 동암문 쪽으로 걷다 보니 그늘진 곳에는 눈이 조금씩 있었어, 물이 조금 흐르던 계곡이었는데  얼음이 꽤 넓게 얼어 있었어. 

혼자 걷는 산길은 정말 좋아. 왜 좋을까, 왜? 왜? 왜? 

언제나 겨울 산에 오면 마치 의무라도 되듯이 시들은 이파리들을 한 두 장 찍게 돼. 

나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여전히 동거하고 있는, 동병상련인가? 그 대신 꼭 역광으로 찍어야 해, 

사진이야 어차피 빛의 예술이긴 하지만 이렇게 깊은 한겨울 무슨 시들은 이파리가 어여쁘겠나. 

근데 역광 아래면 달라, 정말 예뻐진다니까, 사람도 그럴까, 늙어도 어여쁠 수 있는 것, 저 시들은 이파리에 빛이 비쳐 전혀 다른 모습으로 화하듯 사람에게도 그 역광선이 있다면....

사람을 비춰주는 역광은 무얼까? 선함, 부드러움, 다정함, 온유함... 저절로 솟아나는 깊은 지성 같은 것, 삶을 바라보는 투명한 시선 같은 것, 

2킬로미터가량 걸으면 동암문에 오르고 거기서부터 의상봉까지는 1킬로미턴데 

봉우리가 네 개, 이름 있는 봉우리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그리고 이름 없는 자그마한 봉우리 하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용출봉에 올라서였을까, 이어진 듯 홀로인 듯, 끝없이 아득한 산그리메에 혹해 있는데, 

아, 내가 산을 좋아한 이유증의 하나는 산그리메를 볼 수 있기 때문이야. 그 거대한 것이 얼마나 정적인지, 

얼마나 고요한지,  거대한 침묵 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해지기 때문이야. 창조주의 섭리와 사람의 작음을 깨닫게 하는, 리 없는, 그러나 형언키 어려운 장엄한 설교를 듣는 것 같은, 

갑자기 휙 소리가 나더니 까마귀 한 마리가 바로 앞 나무에서 날아올랐어, 세상에, 내가 그렇게 힘들여서 내려오고 올라갔던 용혈봉을 휘이익~~ 이초 삼초?.... 사뿐하게 거쳐 하늘 저쪽으로 날아가더군, 

의상봉에서 선이 멋진 소나무에 기대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한참 우연히 앉아 있었어. 

내려오는데 아, 무슨... 톡톡 소리가 나는 거야, 

딱따구리가 졸참나무처럼 보이는 참나무를 쪼고 있었어. 나무가 얼마나 단단한가, 더군다나 겨울나무....

정말 작고 사랑스러운 딱따구리였어, 가만히 서서 나무 찍는 경쾌한 소릴 들었자으려고,.

그런데 말이지, 나 정말 눈물겨웠어. 

세상에, 그 조그마한 새가, 조그마한 새의 머리는 얼마나 조그마하겠어, 그 머리의 부리는 또 얼마나 조그마하겠어, 그 부리로 나무를 쪼는데 그냥 가볍게 톡톡 쪼는 게 아니었어. 난 그 런즐 알았거든, 가볍게 톡톡 그런데

세상에, 그 조그마한 머리를 뒤로 젖힐 수 있는 한 제쳐 가지고 앞으로 전진해서 나무를 쪼는 거야. 부리의 힘만이 아닌 온몸의 힘으로... 그 연약한 것이 뒤로 머리를 제쳤다가 다시 앞으로 내미는 그 과격함이라니....

헤드벵잉도 생각나고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듣고 와선지, 광란!! 이란 단어도 떠오르고, 

여하간 그 작은 것이 나를 사무치게 했어.


아, 너 .그렇게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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