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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26. 2017

북한산 의상봉에서



깊은 밤인데 커피 한 잔 하고 싶다.

커피를 마시기에는 너무 늦은 듯하여 망설이다가 

갈아놓은 커피를 아주 조금만 넣어 

물이 살짝만 스쳐 지나게 해서 한 잔 내린다. 가볍고 순하고 연하다. 맘에 든다. 작은 것이 좋네......

옅은 커피를 마시며 맨날 하도 해서 지겨울만한 소소한 것들에 대한 머릿속 찬양을 다시 한다.  

삶에 대해 소심하기 그지없는 시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큰 것을 대담하게 인식할 수 없는 지적 통찰력의 결여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앞도 보이고 뒤도 보이는 지점을 통과 중, 피치 못할 한계를 여실히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을의 시작은 오동일엽梧桐一葉 오동나무 한 잎 너울거리며 떨어지며 시작되는 것이고

추일 사가지推一事可知 아니라면 그 무엇을 얼마나 경험하며 만지며 알아채겠는가? 

그러니  누가 뭐래도 작은 것들에 대한 어여쁨과 소소한 것들이 주는 정에 취해 살아야지.  

오후엔 잠깐 산엘 갔다. 날씨가 포근해서.... 내일은 또 추워진다고 하니, 이렇게  겨울 산 무서워하다가는

어르고 달래서 겨우 정분난 북한산 내 연인, 너 누구니, 모른다며 고개 짓 하며 쳐다도 안 볼라.....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 연인 만나기 위하여 준비해둔 발열내의를 입고 도톰한 등산용 셔츠에 거위 털 파커 그리고 바람막이까지 입으니 둥근 공이 된다.  털모자에 안경에 김 서리지 않는 기능성 마스크 그리고 장갑...... 북한산 초등학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둘레길 조금 걷다 의상봉 능선 오르는 길로 들어섰다. 가늘고 조그만 길. 사람도 없고 바람 소리조차 숨을 죽인 듯..... 얼마큼 그렇게 산길을 걸어갔을까, 소란하던 마음이 어느 순간 고요해진다. 아버지는 당신의 묘를 친정집 뒷산에 미리 지어 놓으셨다. 그 묘에는 석관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조금만 흙을 파냈고 석관의 문을 열었다. 긴 장대 두 개를 그 석관 안에 담고 아버지의 관을 그 위에 놓고 밀었다. 다시 석관의 뚜껑을 닫고 흙을 덮은 뒤 사람들은 그 흙을 꼭꼭 밟았다. 산의 경계목이기도 한 탱자나무에는 노란 탱자가 가득 달려 있었다. 나는 아버지 관이 묘 속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노란 탱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흙을 밟으며 다지는 소리가 들려올 때도,  소란하던 마음을 그렇게 산이 다져준다고나 할까..... 조금 걸으니 아주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북한산은 어디 봉우리나 산 맛을 조금 보여주는 맛보기 길이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린다. 아이 아버지와 형이 어르는 소리가 들리고....

약간 기이한 형태의 바위 위에서 삼부자가 쉬고 있다. 형은 거침없이 그 바위 위에 올라가는데 심통이 나는지 동생이 흥! 한다, 왜 형처럼 못해서? 아까 저 아래서도 울고 왔단 말에요.. 하, 너도 그랬어? 나도 거기 지나다가 무서워서 울음 나오려고 했어, 아이 얼굴이 활짝 펴진다.  

환한 날은 아니었는데 의외로 가시거리가 좋았다.

응달진 산자락에는 아침에 내렸을 눈이 녹지 않은 채 여기저기 쌓여 있다. 

가만히 있어도 멋진 내 연인을 깊고 그윽한 수묵화로 만들면서 드문드문 구름상에서 나타나는 햇살은

손에 잡힐 것 같은 은총처럼 보였다.

산을 오르기도 쉽지 않지만 내려오는 길도 여여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오늘 유달리 그랬다. 탄력 좋은 엷은 바지 하나 입고 산을 걷는 것과 내의에 두꺼운 바지 입고 걷는 것은 둔하기가 굉장한 차이다. 다리가 퍽퍽했다.  

문득 임보 시인의 시 구절은 기억나지 않는데 영산홍이란 시를 쓰게 된 배경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어디 절에선가 영산홍 나무에 이 시인 정말 홀렸다고 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취해 내려오는데 

절기 와를 팔고 있는 여자 중을 보는 순간,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꽃은 비할 바가 아니어서 꽃은 마음속에서 금방 사라져 버리고... 하도 마음에 남아서 기와라도 사며 말이나 한번 붙여볼까 하고 다시 뒤돌아서 가니 볼 옆 비스듬히 칼자국인 듯싶은 큰 흉터가 있는 끔찍스러운 여인이 거기 있었다는, 

시인은 이 대목을 아주 잘 해석했다.  아름다운 꽃에 흠뻑 빠져 정신을 잃다가, 세상에는 그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보고 또한 여인의 아름다움 뒤에 있는 진면목은 흉측한 것이라는.... 


사실 산을 걷는다는 것은 산이 생각나게 하는 생각의 숲을 거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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