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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07. 2017

희미하다 무의미하다

혼자 여행길에서


하회 마을을 천천히 걸어 다니는데 

담이란 게 그렇더라. 

아예 볼 수 없게 담장이 높다면 들여다볼 생각도 없을 텐데

꼭 들여다 볼만하게... 낮거나 높거나 하더라는 것,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 

천으로 친다면 박사薄紗....라고나 할까,

하긴 그도 그럴 것이다.

담이 사람의 키보다 훌쩍 높다면 그것은 거절일 게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다 보여주고 살 수는 없으니까

딱 그 마마 한,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장의 키... 

밖에서만 그러랴, 

안에서도 높은 담이라면 우선 자연과의 소외를 이룰 것이고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지나가는 사람들 머리를 바라보며 

소통을 이루어내는 것, 

격리를 뜻하면서도 격리가 아닌 미묘한 자태의 담.... 


안동을 가기 전 

울진 이곳저곳에서 바다가 보였는데

그날 바다의 파도는 세차고 깊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소리... 아니 물의 소리... 물이라는 수많은 개체들이 무한으로 모여 있어 

그들의 합한 소리..... 는 아름답고도 무서웠다. 

세찬 파도.... 거대한 군중... 물의 군중..... 들이 

우우..... 히스테리나 경련이 아닌 즉 보이지 않는 에너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기이한 자태로 

몸을 불리며 키를 키우며 

더군다나 매혹적인 흰빛.... 

바다의 그 짙푸른 청람색과 대비되며 다가오는데

그 거대한 아플라....

....

혼자인 여행은 

낯 섬을 더욱 낯설게

생경함을 더욱 생경하게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다이..

시간을 더욱 현재 되게 혹은 더욱 존재하게 해서 

나를 위무한다. 

여행은 그래서 어쩌면 나 같은 범박한 사람에게는 

유일 가능한 철학과의 대면일지도 모르겠다. 

철학이 삶에 대한 시선을 배우는 거라면 적어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자연의 겨우 한 모퉁이

그리고 모래 알갱이만 한 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어느 시간의 일 

참으로 미미한 작은 일이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 세상 모든 것들이 작아지는 경험,

마치 대인국에 갑자기 도착한 것처럼 

내가 작아지고 내가 지닌 것들 욕망들 꿈들 소유들 질투들조차 

아주 작아지는 느낌.  

내내 견지하던 정신 우위의 혹은 유기체 인간에 대하여

신체는 유기적인 게 아니라는 단호한 강변..

오히려 유기체는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가두고 있는 것이라는 이론들

가령 지금 파도 소리를 무서워하는 게 

내가 아니라 

나라는 유기체가 아니라

신체라는 현재형.....

신체 안의 개별적인 것들. 

가령 심장 일지 간일지 허파 일지...

그것들이 느끼는 감각이라는 것,  

집중해서 안 하던 메모까지 가끔 해가며 읽은 

들뢰즈의 글들이

양양의 파도 앞에서 사정없이 무산되더라는 것이다.

저 선명하면서도 거대한 보이는 힘을 존재케 하는

존재자와 

피조물인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겨우 이 작은 내 몸안의 움직임과 반응들 

경련 구토 마비 히스테리 등....

들뢰즈의 해석처럼 설령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그만의 독특한 방법과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시간의 존재를 그려냈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정교한 철학자의 시선이 

새로운 세기를 향한 문을 열었다손 치더라도 

바람 부는 날 파도 앞에 서니 

저 속으로 슬쩍 발을 딛기만 해도 

속절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 텐데

그러니까 자연은 생사를 직면하게 하는데 

겨우 모래 알갱이인 

나의 논리나 이론이 

혹은 나의 시간이나 존재조차 

희미해지더라는 것,

무의미해 보이더라는 것, 

그렇다 

자연은 내 꿈의 비루함을 깨닫게 해준다.

나의 일상들이 역사와 시간 

혹은 우주공간 앞에서 수많은 삶들 사이에서 

얼마나 작은지 나를 보게 해준다. 

그렇다고 그런 깨달음이 

단순한 허망과 허무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부드럽기 한량없어서

다시 쉬 일상으로 돌아서게 하고

다시 작은 것들을 눈여겨보게 하지만 

그런 순전한 깨달음은 내 진부함 삶 속에서 ‘

청랑하게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이 되는 것이다.  

하회마을을 싸고도는 섬진강을 따라 걸었다. 

멀리 산이 감싸고 있고 

그보다 가까이 강물이 휘돌아 흐른다. 

강은 참으로 바다와 얼마나 다른가.

자연스러운 굽이굽이들 

아무에게나 곁을 내주어서 

마치 솔밭은 강을 따라 흐르듯 함께 흐르는 것처럼 여겨졌다.

결국 인간이 아무리 자연을 개척하거나 정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은 자연에 기대어 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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