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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08. 2017

맛에 대한 표현




겨울 과일로 귤만 한 게 있을까. 크지도 작지도 않는 알맞은 몸피에 노오란 색깔이 참으로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꼭지에 작은 초록 이파리 하나 살짝 붙어 있으면 더욱 싱그러운 모습이 된다. 손에 들면 다가오는 부드러운 느낌은 탱글거림과 말랑거림이 딱 알맞게 조화되어 있어 아이들 어릴 때 통통한 종아리를 만질 때의 느낌이다. 귤은 부드러울수록 껍질이 얇다. 살짝 벗기면 어쩌면 그렇게 쉽게도 벗어주는지 귤은 칼이 필요치 않는 흔치 않는 과일로 다정하기 이를 데 없다. 가끔 귤과 오렌지를 같은 선상에 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다른 태생이다. 귤은 자연스럽게 몸을 내어주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천진함을 지녔다. 소박하고 순수하다. 오렌지는 거칠고 두껍고 사나워서 칼이 다가올 때서야 항복을 하는 질긴 과일이다. 굴은 입에 넣어 살짝 이빨이 닿기만 해도 톡 터지며 온몸을 던져 안겨오지만 오렌지는 딱딱한 알로 부서진 뒤에서야 못이긴 척 즙을 내어주는 내숭이 심한 과일이다. 귤은 너무 큰 것도 상품이 안 되고 너무 작은 것도 상품이 안 된다고 한다. 알맞은 크기의 귤은 달콤새콤하다. 아마도 미식가들은 당연히 새콤달콤을 선호할 것이다. 그 둘은 선명한 맛으로 서로에게 윈윈하는 하모니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작은 귤보다는 대과라 하여 쥬스용으로 판매 되는 커다란 귤이 좋다. 대과는 단맛도 좀 적고 새콤한 맛도 적으며 그 대신 물이 많아서 약간 싱겁기도 하다. 뭔가 여유가 있다고나 할까, 투박한 크기도 마음에 든다. 가격도 저렴하다. 

 뮈리엘 바르베르는 <맛>이란 소설에서 ‘맛에는 인생이 있다’고 적었다.  그가 하는 맛에 대한 표현들은 맛 이상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맛에 대한 기발하고 재기발랄한 표현이 맛은 맛이 아니라 표현된 어떤 것인가.....싶기도 하다. 가령 ‘미천한 고등어와 세련된 연어’ ‘고기는 낯설고 강하지만 생선은 낯설고 잔인하다’ ‘회는 고체의 편에서는 무에 저항하는 견고성을 간직하고 기적 같은 유동성과 부드러움을 빌려온 물질이다.’ ‘마요네즈와 채소의 사이는 매우 성적이다’. 맛의 세상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최고의 요리 평론가가 죽음 앞에 선다. <맛>은 그가 평생 누려왔던 그 수많은 맛들 중에 잊어버린, 어떤 맛을 찾는 과정을 적은 글이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가장 원했던 음식은 설탕으로 만든 슈퍼마켓의 슈케트였다. ‘시장이 반찬이다’는 맛에 대한, 그 접근에 대한 무한한 범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음식은 상대적인 게 아니라 절대적이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의 맛은 유일무이하며 무한절대다. 얄따란 책이 주는 느낌이 심상찮다는 것은 책도 맛을 지녔다는 이야기다.   

 귤은 순 우리말처럼 보이지만 귤나무 귤橘로 한자다.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고사성어는 회수 남쪽의 귤을 회수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인데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사람을 나타내주는 은유이기도 하다. 귤만이 아니라 과일이나 열매들은 거의 다 고도를 탄다. 맛있는 귤을 대접 받자 어머니를 위해 슬며시 소매에 넣었다가 인사할 때 귤이 또르르 굴러 나오는, 귤과 효를 잇는 회귤유친懷橘遺親도 있다. 지금 우리가 자주 먹는 온주밀감은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인데 그 시작은 재일교포들이 친척에게 보내준 묘목이라니 살짝 애잔하기도 하다. 아모스에서는 이스라엘이 여름과일 익은 과일로 번역된다. 끝을 보여주는 절묘한 비유다. 

 제법 커다란 귤껍질을 벗긴다. 속에는 항균 항바이러스 작용을 하는 비타민 P가 풍부한 귤락이 가득하다. 하나 떼어내 입에 넣으니 달콤한 물이 가득 새어나온다. 다른 귤보다 크게 자라서 하대 받는 그대를 먹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한 구절도 생각나는 구나. “서두를 필요 없다. 반짝일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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