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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15. 2017

근조 박상륭



‘아깝다’라는 감정이 슬픔의 세상에 사는 슬픔의 본류인 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쩌면 소소한 것들의 상실 일지 

혹은 물건이나 소유에 대한 개념으로만 여겼거든요.

큰오빠가 떠난 지 석 달이 되어가지만

그 완벽한 소멸에 대해 아직도 전혀 정리가 안 됩니다.

큰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저절로 슬픔이나 고통보다 우선해서 마음이 철렁 해집니다. 

철렁한 뒤  커다란 공간 하나 가 생기는데... 그게 아주 박하처럼.. 싸아한데 

차갑고 서늘하고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파요.  

선생님의 부음 소식을 듣고는 갈무리된 봉지..... 를 여민 끈이 툭 풀려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쏟아지는 것  같았어요. 

아 도서관 한 채가 붕괴되었구나..... 붕괴는 또 얼마나 무서운 건가요. 

그 허망함이라니...    

인사동 경인 미술관 찻집에서 큰오빠 생각과 선생님 생각이 동시에 나더군요. 

무더운 거리를 걷다가 미술관 나무 그늘로 들어서니

세상에 온도가 2도쯤은 낮은 것 같았어요.

목련도 감나무도 무상하게 짙푸르기만 한데 

세상 모두가 그저 여일한 것 같은데

 여전히 누군가는 세상을 하직한다는 거지요. 

40대 무렵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 전날 김현 선생과 술을 마시고 

광화문 흙을 파먹으면서 우셨다는 이야기는 가슴 저리지요. 

그리고 시체실 청소부로 시작한 캐나다 이민생활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아부하는 글 같은 것 쓰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선생께서

원고지 삼천장의  ‘죽음의 한 연구’와 자비 출판비를 들고 김포공항에 나타나셨다고요.

 그리고 이내 작가들의 작가가 되셨지요.  

어쩌면 삶의 소식만큼 허다한 죽음의 소식들이 난무하지만

아주 가가운 지인의 소식만큼 마음이 서늘해서.....

오래전 선생께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

 어젠 오랜만에 같이 사는 휴 마넷과 산엘 갔습니다.

저야 올여름을 산에서 보내려고 마음먹고 특별한 일만 없다면 

책 한 권 필수로 산으로 가자!이지만 같이 사는 휴 마넷과는 오랜만이었죠.  

선생께서 만드신 조어 HUMANET

humen(인 ) planet(간 )은 

인간도 하나하나가 혹성 우주라는 뜻은 마음에 듭니다. 

고상한 뜻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이고 이 인간아! 도 품고 있어서 ^^* 

아이고 이 사람아! 에는 정겨움과 걱정 , 부드러움이 가득한데 

아이고 이 인간아! 에는 

미움과 짜증이 약간 포진하고 있는지,

사이가 들어가서인가요. 아니면 측간 , 방앗간 집칸.... 등 너무 커져서 인가요 , 

물소리를 좋아하는 휴 마넷이라

당연히 물이 흐르는 밤골 쪽으로 가서 걷습니다. 

물길은 그쳤다가 다시 나타나고 그러면서도 위로 오를수록 작아지곤 해요.

마침 알맞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이고 사람 소리가 물소리를 잡아먹더군요. ,

여자들끼리의 수다는 그래도 괜찮지요.

아니 산에 와서 웬 화투를 그렇게도 많이 친답니까 , 

설렁설렁 싸온 집에 있는 반찬 , 

열무김치 깻잎장아찌 갓김치 마늘장아찌

그리고 멸치볶음....

사실 집에서는 이런 반찬 잘 안 먹는데. 

근데 이 밑반찬들이 물소리 나는 옆에서 먹으니 괜찮더군요. 

같이 산은 올랐지만 휴 마넷은 일이 있어 일찍 가고

나는 세네 시간 물 곁에서 책을 읽다가 귀가하려고 했는데

아이고 시끄러워서...

화투 치는 옆에서 독서라니..... 차라리 집이 낫겠다 싶어 

같이 내려오다 절묘한 자리를 만납니다. 

길에서는 약간 떨어진 곳 ,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 , 

돌벽이 비스듬하게 등 받침 하기에 딱 좋은 곳 , 

물은 꼭 나만의 샘 하기에 족하게 고여 있고.... 

당신은 가.... 

나는 아무도 안 보이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선생을 읽기 시작했지요. 

휴 마넷이 떠나기 전 그런 나를 보고 한마디 하더군요.

‘신선 같네.’

아이고 신선이 뭡니까? 신선이 , 

그보다 아주 쉬운 단어 , 당신 예뻐 보이네. 라든지

예쁘다가 언감생심이라면 , 

지명이 지난 지가 언젠데 사실 깔끄러운 단어지요. 

그러면 그보다 더 쉬운 단어 

‘좋아 보이네 ’도 있잖아요. 

그런데 늙은 아내에게 하라 부지 신선이라니.... 

그러니 무슨 연심이 품어지겠습니까 , 이젠 그저 가족인 게지..... 요  

선생의 ‘소설 법 ’은 몇 달 전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결국 못 읽고 반납한 뒤

인터넷 서점에서 다시 산책입니다.

소설의 법이라기보다는 작은 설법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 

선생도 그런 예견으로 제명하신 게지요?

승패 병가지상사라

그래서 이번에는 도무지 헤아리기 어려운 앞글 제치고

앞보다는 뒤에서부터 글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그 어려운 소설이 아닌

선생의 강연 원고가 두 편 실려 있더군요.

강연 원고를 읽기 전 김윤식 선생이 쓴 해설..... 

머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 소설과 썩 그리 다르지 않은 해설... 을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아주 열심히 정독한 뒤였지요.  

살짝 미소를 지은 것은

선생께서 작품이 다르듯 독법도 달라야 한다는 말씀 ,. 

뱀 해엄 치기 , 깜깜한 밤중의 신길 걷기 같은 

이청준의 작품은 

장례식장 한 모퉁이에서 읽어야 되지 않을까 , 하신다는 

에서 말이지요. 

어떠신가요? 

선생의 작품을 , 

한여름 날 제법 깊은 북한산 자락에서 사람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 오직 물소리만 가득한 돌팍 위에서 

읽는 중늙은이 아주머니의 독법은요. 

다행스럽게도 문학 평론가들 앞에서 하는 선생의 강연

‘깃털이 성긴 늙은 백조 깃털이 성긴 어린 백조 ’는 

세상에 , 

<읽어지더군요!!!!>

다시 태어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선생의 꿈..

언어가 가장 적게 개발된 오지에서 태어나

즉 덜 혹사당한 언어 , 

신성한 언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 

선생의 글에 대한 생각은

선생이 적은 모든 문장처럼 단순해 보이되 도무지 어려운 어떤 곳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말이 되나 말이지요.. 

저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학의 다리는 못되더라도 머 참새 다리 정도는 되어서 

웬만한 책들 종종거리며 읽어가기도 하는데 

선생의 글에 대한 깊은 사고점은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어서 말입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현학도 없는

오히려 작고 고요한 어투와 겸손하기 그지없는 품새이신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환경문화 세미나의 원고도 다행히 읽어지긴 했지만 

그리고 더 다행스럽게도 조금 이해되기도 했지만

이해한다 하여 선생께서 지닌 사고 , 

그 사고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이해를 , 

닮기는커녕 이해라도 하는 것인지 ,

글은 읽었으되 

나는 다시 모호해지고 말았습니다. 

환경론자들이 아니 우리 모두가 지구를 환경을 지켜가야 하듯이

인간은 잃어버린 인간 , 

훼손당한 아담 , 

에덴에서 축출당하기 전의 상태로 복귀....

즉 어쩌면 프라넷 보다 더 나쁜 상태에 처한 휴 마넷을 

선생은 직시하고 있더군요. 

그래도 프라넷은 목련이라도 피워내고

흙의 삼시랑들이 열매를 밀어 올리는 것을 보면 

플라넷은 영혼이라도 살아있는 것 같은데

휴 마넷은 이미 그 혼을 짐승에게 상납하여

육신이 신앙해야 하는 대상으로 되었으며

몸의 우주로 떨어져 내린......

아 정말 무섭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가요? 휴 마넷! 

선생의 책이 우리 집 책꽂이에는 무려 여섯 권이나 있습니다. 

평심 산해기 죽음의 한연구 아겔다마 잡설품 소설 법 

잘 읽었느냐고요?

아니요. 전부 다 읽다 두 손 들어버린 책들입니다. 

독서는 글자를 해독하는 것인데

글자가 해독이 안되는걸요.

그런데도 나는 작가 하면.... 왜 선생의 이름부터 떠오르는 걸까요?

그것도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말이지요.  

오늘 인사동에 나가면서 다시 읽기 시작한 달과 육 펜스를 

시원한 전철 안에서 푹 빠져 읽었습니다.

어렵기는요. 

너무 재미있고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소설은 그래야 하지 않나요? 

하지만 선생의 짧은 원고 

그것도 강연 원고 

선생의 소설에다 대면 보드랍기가

우리 교회 십 개월 된 진교의 살결 같은 글 두 꼭지에는

얼마나 수많은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편린들과 투명한 직시가 채워져 있는지 ,

읽는 동안

내내 눈부셨지요..

읽어내는 나도 아주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요.

오죽하면 제가 리뷰 대신 어리광 섞인 

이런 편지글이나 적고 있겠습니까?    

언제고 제 꿈의 하나가 선생을 알현하는 데에 있습니다. 

뵈올 때면 질문도 안 하겠습니다.

감히 무슨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하시는 말씀 그저 가만히 들어야지요.  

선생은 선생의 눈이 송사리 눈만 하다고도 했는데

그렇다면 그 송사리 눈도 못 되는 제 눈의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긴 합니다만,

선생의 글은

어렵고 모호하고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함부로 쉬

버릴 수도 없는......

삶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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