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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Sep 15. 2017

큰오빠 謹弔

나는 거기 다가갈 수 없으니/그대 너무 멀리 있지 않기를

나는 별빛 내린 나무가 되어/이전처럼 움직일 수가 없어

나는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그대 너무 외면하지 않기를

나는 하늘 가린 나무가 되어/예전처럼 노래 할 수도 없어

나무가 되어/나무가 되어/끝이 없는 그리움도/흙 속으로

나는 이제 따라갈 수 없으니/그대 홀로 떠나 갈 수 있기를

나는 비에 젖은 나무가 되어/예전처럼 외로움조차 없어  


****

큰오빠,

조동진의 나무가 되어.....노래라네. 마지막 유작이래.

큰오빠와 동갑이야, 1947년 생 

이 사람도 죽었어. 얼마 전에 큰오빠처럼...

아 큰오빠처럼은 아니네,  

큰오빠는 갑자기 죽었고 조동진은 방광암으로 투병하다 죽었으니....

큰오빠, 

죽었다. 죽다가 버릇없이 들리제?

돌아가시다 소천하시다. 귀천하시다 영면  절명  하직 별세 타계 운명 작고 서거 종신 

많기도 하네,

이렇게 좀 더 다른 언어로 고급하게 표현하면 죽음이 희석될까?, 

죽음이 내포하고 있는 숱한 감정들  

슬픔이든지 고통이든지, 원망이든지 외로움 같은 거.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죽음을 그리다> 의 작가는 

끝나다...라는 단어는 아주 싫은데 

죽다!는 좋다고, 달구어진 쇠처럼 단단한 단어라고

한 문장에 한 번씩 죽음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읽다보니 죽음이 삶인지 삶이 죽음인지 헷갈리기도 해.  

“왜 삶속으로 가다, 라는 말을 할까, 우리는 살아 있는 내내 죽음에게로 

조금씩 다가가고 천천히 글을 쓰듯 우리 자신의 죽음을 끊임없이 다듬는데 말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의 말이래 

보들레르는 그랬다는 군, 

“오 죽음이여 나이든 선장이여 때가 왔도다, 닻을 올리자”

프르수트는  “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강렬해진 나머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고

앙드레 지드는 죽음에게 좋아! 라고 했고 

에밀리 브론테는  아니, 아니,

제인오스틘은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오로지 죽음을!

아나톨 프랑스는 어머니 어머니...를 불렀다네 

그러고 보니 그 할머니 생각이 나네

재작년에 엄마...다리 골절이 있으셔서 두 달여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잖아. 

그 때 같은 병실에 치매와 함께 암이 깊으신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할머니 이도 하나도 없으신 데도 되게 자그마하고 귀여우셨어.

내가 가면 나한테 자기 아들네 집에 왔다고 가라고 소리치시고....

할머니 여기 우리 집도 되요, 하며 장난치면 막 내게 욕두 하시고...

그다음에 엄마에게 갔을 때

그 할머니가 갑자기 쇠약해지셔서 그냥 눈을 감고 누워 계시드라고 

그러면서 가끔 우시는데 어머니 어머니...하면서 우시는 거야,

가까이 가보니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아주 마음이 짠했어..

이조차 없는 파파할머니가 죽음을 앞에 두고 어머니를 부르는....

아무리 치매라도 

슬픔의 눈물과 그리운 어머니까지는 침범할 수 없는 걸까,   

 

의사인 마종기 시인이 그러더군

막 주검이 되면 사람의 몸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고 

눈물샘이 기능을 잃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난 시인의 그 이야기가 그의 어떤 시보다 더 인상적이야. 

시신에서 흐르는 눈물이라니...

시가 침범하지 못하는 팩트에....고인 눈물이라니...

큰오빠두 마지막 눈물을 흘렸을까, 

오빠 회사 사람이 큰오빠를 모시러 왔을 때 

오빠가 아파트 앞 현관에 앉아 있었다고 했어. 

세상에..오빠가 현관...그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는  말이지,

큰오빠 스타일로는 절대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인데...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때 큰오빠 마음이 어땠을까,

왜 이렇게 힘들지?  왜 이렇게 아프지?  오늘 서울엘 꼭 가야 하는데,

규서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병원에 가서는 안 되는데...

나는 그날  규서 친구가 예약해준 마사지를 받고 있었어. 

마사지 같은 것 즐기지도 않는데...딸하고 같이 해선지...

동남아시아 마사지 샵처럼 어두컴컴하질 않아선지

기분이 괜찮았어. 

시원하게 샤워 까지 하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나보다 더 빨리 핸폰을 점검한 규서가 다급하게 말했어

엄마 아빠께 경화 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큰외숙이 쓰러지셨다고....      

머리가 좀 느리게 도는 것 같았어. 

오히려 손이 더 빨리 움직이는 것 같더군. 

옷을 입고 핸드폰을 챙기고 여러 번 온 경화 전화번호를 누르고...

쓰러지다...쓰러졌다면....그냥 가벼운 일이겠지...괜찮을 거야. 

그럼 규서 결혼식에 못 오실지도 모르겠네.... 

그런 한심한 생각 까지도 했던 것 같아.

앞으로 한 시간 내에 아빠가 깨어나시지 못한다면 사망선고가 내려 질거래 고모....

뭐라? 뭐라고? 아니 그러면....어떻게 해, 아니 어떻게..어떻게 어떻게.......

비명이 섞인 내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고,

사람의 생각들이 얼마나 다면적인지...괴이한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 가운데에서 이게 내 목소리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아득하다고나 할까,

내가 잘꾸는 꿈처럼 산길을 가는데 그 산길이 저점 가팔라지고 

어느 순간은 길이 90도 각도로 세워져 뒤로 떨어지는 꿈같기도.... 


다리 부러졌 때 그 때 내가 갔어야 하는디 하나님 그 때 나를 왜 살려 주셨소

나 같은 것 데려 가셔야제 나 같은 것 놔두고... 

내 아들 전화 소리 은제 들을까....

헐개 좋은 내 아들 언제 다시 볼까....  

아이고 내 아들,

여전히 지금도 엄마 방에서 들려오곤 하는 단발마의 비명.

그 소리를 듣는 내 가슴이 찢어지는데

엄마의 가슴은 어떠실까,    

‘니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니 정말 내 마음이 편하구나....고맙다’

엄마 모시는 거야 엄마가 우리를 키운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늘상 내게 고마워했던 것은 큰오빠가 효자여서지,

아부지 돌아가실 때도 엄청  울었는데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는데

오빠처럼 이러지는 않았어. 다섯 달이 지났는데 지금도 생생해, 피가 흘러,  

바둑 당구  테니스 골프에 능해서

누군가 당구 이야기를 하면 울 큰오빠 800치던 당구도 사라졌네

바둑두는 것을 보면 조훈연선생과 바둑 둔 기사와 사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큰오빠가 생각나고 

이녀 일남 그리고 언니 속에 여전히 오롯이 살아계시고

내 가슴에도 여전히

엄마가슴에는 큰오빠가 터를 잡으셨고...

경화 말처럼 

우리 아빠 멋지게 사시더니 쿨하게 가셨네,      

 

사람 오고 가는 길이 참으로 무상해,

큰오빠 가신 곳 비록 여기서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기쁘고 편안한 곳일 거야. 

조동진 노래처럼 외로움 없는 곳....

  

큰오빠, 

포도순절에 이제야 작은 필설로 

큰오빠 근조를 하네

 

(사족: 전라도에서는 자네, 하네, 이런 반말투의 말을 윗사람, 언니 오빠에게도 사용한다. 더없이 친근하게

오빠들 결혼해서도 이런 투의 말을 사용하니 

작은 올캐가 막내가 어린양 하는것 처럼. 보인다고 싫어했다.

그래서 그뒤로 반반 사용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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