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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Sep 18. 2017

뒷모습



가을 그림자는 아주 선명합니다. 

습기 탓인가...도 싶지만 

혹시 가을이라서...저물어가는 시절이라서 

그림자는 선명해지고 짙어지는가....

슬쩍 憂愁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합니다. 

아, 그 역시 가을이 지닌 분위기 탓일지도,

봄이 앞모습을 은유한다면 가을은 뒷 모습를 보여주죠.. 

미셀 트루니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가 쓴 책 <뒷모습>도 지금 책상위에 있어요.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는데 

아니 세상에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500대 번호, 

원전에 대한 책들 속에 끼어 있는 거예요. 

사서에게 그랬죠.

‘이게 왜 500번호 속에 있어요? 800번호 속에 속해야 하는데,’

물론 말은 아주 점잖게 했지만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아니 니들 제대로 책을 분류하는 거니?

매우 고까운 시선이 다분히 들어가 있죠. 

“아 팀장님에게  전해서 알아보고 다시 시정하겠습니다.” 

‘이게 노밸 문학상 받은 책이오,’ 

한마디 꼭 짚어놓고  규서에게도 쫑알거렸죠.  

“야 세상에 마두도서관에 갔더니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500대 번호로 분류해놨더라, 

세상에 그럴 수가 있니? 제목만 보고? 사서 하는 일들이 뭐야, ”

했더니 책 분류를 하는 회사가 따로 있다는 거예요. 

워낙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사서들 하는 일들이 많아서 분류 까지 못한다는 거죠.

그리고 대개 그런 회사들은 비정규직 사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이 책 분류하는 값도 엄청 싸서 한권에 200원 정도인가 한다는 거예요.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면서 아이고, 

까다로운 시어머니 눈에 밥에 든 티가 잘 보인다고 하던데

혹시 내가 그런 사람 되어 가는가? 싶지 뭐예요.  

신간서적만 모아놓은 곳에서 한참을 서성였는데도 읽고 싶은 책은 하나도 없더군요.

무슨 쓰잘데기 없는 책들이 그리도 많은지.....하다가

세상에 쓰잘데기 없는 책들이 어디 있겠나, 

누군가의 날밤이 합해진 수많은 날들의 덩어리이고 

수많은 시간이 압축된 시간의 세포들인데

내게는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주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다한 글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환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책 함부로 말하는 거나 사람 함부로 말하는 거나 비슷한 일이지 싶더군요.

그러다가 미술판에 가서 두 권 빌리고

미셀 트루니에 자리에 가서 사진 에세이...사진 시..같은 <뒷모습>을 빌린 거에요.

도서관에 가면 이제 의도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있는 책을 고르곤 하죠. 

글씨만 가득한 책들을 보다가

그런 책들을 펴면 눈도 쉬고 정신도 쉬고 마음도 쉬어지거든요

그러니까 다양한 방향의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글씨가 촘촘한 책 페이지 많은 책과 함께 글씨가 느슨한 책 

그림이 들어있는 책들을 함께 읽어  밸런스를 맞추는.... 

양을 조절한다고나 할까요.  

거기다가 이런 책 저런 책을 빌려다 보다보면 

침대에 어울리는 책

소파에 어울리는 책 화장실 책 그리고 책상용 책...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 집은 아이들  장난감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여기저기  책이 널부러져 있어요.    

전문가가 아닌 아주 무식하고 방만한 무체계적인 독서법인데....

그래도 저는 이것을  여백독서....라고 

고상한 이름을  붙여 놓고 식구들에게 말해준답니다. ㅋㅋ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다가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을 읽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저렇게 아직 푸르른 젊은이가 

삶이라는 상흔을 

어쩌면 이렇게 

무심한  언어로 무심한 시선으로

슬며시 이게 삶의 핵 아닌가....삶의 원자 아닌가...이건 어때? 하며 

슬며시 펼쳐 보여주는지,

아이고 참, 그 답 없는 문제들 앞에서 

가슴이 다시 답답해지더군요.   

이제 글에서 쉼을 얻기란 

현대미술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처럼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을까,   

에두랑르 부바라는 사진작가의 사진...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예술로 승화’ 시켰다고 

책 뒷 표지에 써있었는데... 

그의 평범한 흑백 사진이 그런가...하며 보다가 

이상하게 미셀 트루니에답지 않게 

명료한 시선도 명료한 표현도 나오지 않아서 

내가 잘못 읽는 중이지...하며 읽어 가는데

사진의 보라색 종이가 나온거에요.  

제목은 계집아이와 두 마리 곰....

초판이 2002년이니까....15년 전이긴 하지만...계집아이....라는 표현이 좀 낯설죠.

요즈음은 잘 쓰지 않는 단어이니까,,

어린소녀...쯤이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며... 

사실 글에서는 소녀로 나오니까

번역자의 느낌이 강하게 들어간 건가.... 

사진의 배경은 공원 같은데 

어쩌면 혹시 가족들과 가벼운 피크닉을 나와서 점심을 먹은 후

다른 사람들은 산책을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이 초로의 사람은 오수를 즐기는 중일까, 싶기도 해요, 

이 어린 소녀는 손녀딸 일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물론 이 사진은 작가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는 우연한 산물일 거예요.  

나는 이 어린소녀가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등에 곰을 업고 있기에는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리고 또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이 소녀가 할아버지를 보고 있지 않고 

조금 머리를 숙여 발 아래 보이는 흰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미셀 트루니에는 

추하게 보인다. 냄새도 날것이다 가까 다가가기도 싫을 것이다. 

등에는 수컷 곰 가짜 애인...,.어린소녀에게 미묘한 섹슈얼리즘....을 살짝 덧입히며...

나도  읽으며..오 이런글은...하며 읽었는데   

저 보라색 포스트잇에 아주 단정한 글씨로 써 있어요.   

가엾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소녀도 잠든 노인을 그러한 느낌으로 보고 있지 않을까, 

왜 힘겹게 고개를 떨어트리고 조는 저 늙은이를 

그저 식곤증을 이기지 못해 잠든 추함으로 보는가 

그는 늙었다. 그래서 삶의 짐이 무겁다 소녀는 어리다 그러나 알고 있다. 

그의 고단함을,,,,  

누가 썼을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여자일 것 같아요. 

나이든 아줌마? 할머니는 이런 글을 써서 붙이지 않으리라,

글을 써놓고도 책에 붙일까 말까 한참 망서렸겠지요. 

용기를 내서 붙이는 그녀,  

난데없는 보라색 포스트잇.....속에 배인 익명의 

그...그녀....를 상상해보는 일이 즐겁더군요.   

마치 전혀 바라보지 못한 

새롭고 놀라운 어떤 그림자나...뒷모습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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