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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07. 2017

만추 속에서 푸념




푸념은 커다란 목소리가 아니다 .

한숨처럼 새어나오는 작은 언어다 . 

푸념으로 말해지는 사안이라는 게 또 그리 큰 것이 아니다 .

그렇다고 그저 스쳐 지나가도 될 만한 거라면 푸념 , 

말로까지 되어 나오지는 않는다 .

말은 생각과 느낌이라는 제법 긴 터널을 지나오기 때문에

그 터널 안에서 멈출 수도 있고 삭힐 수도 있다 . 

멈추지도 못하고 삭혀지지도 않은 채 결국 나타나고야 마는 말 푸념은

작은 소리라 애닯고 혼잣말인 듯 ... 하여 외로운 말이다 .

어쩌면 푸념은 누군가의 긍정적 동조를 필요로 하는 부정의 언어일 수도 있겠다 . 

그보다 푸념은 자기 회한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 

타인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겨누는 회한,

무엇인가를 베어내거나 도려내지도 못하면서 아프기만 한 고통스런 칼날 . 

푸념이 그렇다는 것이다 . 

글이란 것이 마음을 포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푸념도 한숨 깃들인 態 만 다른 포쇄와 동급일수도 있겠다 .

포쇄는 봄에도 하지만 가을에도 했다는데 ,

아주 청명하고 바람 좋은 날 길일을 택해 하는 것,. 

벼슬이 제법 높은 사람이 ...

흑단 옷을 입고 책고에 절을 한 뒤 책방 문을 열었다니 , 

먼지를 털고 햇살 알현시킨 다음 책갈피마다 닥종이를 한 장씩 넣고 .....

다시 기름종이로 싼 다음 천궁과 청포를 넣었다고 한다.  

나도 그러면 어떨까, 내 관에 ...아니다 관에 넣으면 타버릴테니 .....

그렇다면 유골함에 ....창포나 천궁을 넣는 거. 

영혼이야 살아온 과정이 문제이지 

천궁 창포 함께 한다고 하여 무슨 없던 격 있어지겠는가마는 

남아 있는 아이들이나 사람들에게 혹 우아한 기억으로 연상되지 않을까 , 

'울엄마 그걸 원하셨어 . 당신의 마지막에 창포와 천궁을 넣어달라는 것 , 

엄마는 그래서 창포를 말리시곤 했어 천궁은 궁궁이라고도 하는데 ....

울엄마는 식물을 엄청 좋아하셨는데 식물로 된 수의를 입고 싶으셨던 것일까? 

스토리 시대니 규서 담휘에게 엄마의 마지막 스토리 ㅋㅋ ... 

하나 남겨주는 것도 어떨까?

별거 아니지만 그런 의식적인 행위로 인해 별리가 분위기 있어질 것 같은,    

기실 나는 회색분자다 

진보 앞에 가면 진보인척 가만히 듣고

보수 앞에 가도 보수인척 가만히 있다.  

무슨 이념일지 가치랄지 ..

이런 거대한 담론 앞에서만 회색분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

아주 작은 일 소소한 일 날마다 부딪히는 일

그러니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의 사안 앞에서도 쪼잔한 회색분자라는 이야기다 .

내게 옳은 것이 꼭 남에게도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 ,

생명이 오가는 일 아니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것 , 

가능하면 가만히 있을 것,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으려 하지 말 것

무심한 나무를 더 많이 바라볼 것, 

지혜는 자신의 들보를 보는 것이라는 학자의 말은 새겨 들으니 

그러니 무슨 색채가 있겠는가,   

며칠 전 친구네 집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그 친구는 정말 여성스러운 여성이다.

수놓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하고 자신이 놓은 수로 여기저기 장식해 논다.

아주 작은, 수십 개는 족히 될 것 사진틀에 가족들 사진을  넣어놓고 있다.  

나처럼 여성성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질문한다. 

저 사진틀에 먼지 쌓이지 않니?

당연히 쌓이니까 거의 매일 닦아준다고...

내속으로 그런다. 오메, 난 저런 것 못하겄다. 

물론 나는 태생적으로 벽에 거는 것 붙이는 것 엄청 싫어한다.

사실 벽도 책꽂이만 그득해서 빈곳도 없지만,....

그리고 나를 호사시켜 주겠다며 아주 예쁜 커피 잔을 내온다.

이름도 어려운 체코잔이란다. 

커피 가는 기계는 아주 새빨갛고 아주 천천히 지니 주전자에서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커피잔이 이쁘니 커피 맛도 더 좋네.

친구가 좋아한다. 나도 진심이다.

그러나 그런 커피 잔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은 일도 없다.

색중에서 가장 우아한 색을 꼽는다면 나는 단연코 회색이다 . 

우아가 무엇인가 , 

우아는 선명함이 없을 때 혹은 나타나지 않을 때 살짝 나타나는

마치 그림자 같은 현존이다 . 

멀리 갈 것 없이 옷 색깔만 봐도 그렇다 .

눈부시게 환한 노란 빨강 파랑색들 , 예쁘고 귀여우며 사랑스러워 세련까지는 가더라도

적어도 우아 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 

지나친 밝음과 선명함속에 우아함은 깃들기 쉽지 않다 . 

블랙부터 조금 밝아지기 시작한 그레이 .....

그 차분함 ㅡ 흐릿한 어두움 속에 우아함은 존재한다 .

성정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 

호오가 분명한 사람 .....선명한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

감정의 격랑이 얼굴에 잘 나타나는 사람 . 우아하지 못하다 .

이렇게 살피다 보면 쪼잔한 회색분자에게 당위성을 부과하려는 게 아닌가 ,

의심의 눈초리가 생길수도 있다. 아마 사실일지 모른다. 

회색이 분자 ....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언어와 함께 조합될 때 

그 순간 회색이 지닌 우아함은 아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

대신 흐리멍텅 어쩌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   

저 놈의 꽃들 또 피었네 

먼저 핀 꽃들 지기 시작하네 

나는 피는 꽃 안 보려고 

해 뜨기 전에 집 나가고 , 

해 지기 전엔 안 돌아오는데 . 

나는 죽는 꽃 보기 싫어 

개도 금붕어도 안 키우는데 , 

나는 활짝 핀 저 꽃들 싫어 

저 꽃들 지는 꼴 정말 못 보겠네 

날마다 부고도 없이 떠나는 꽃들 , //날마다 상여도 없이 / 이성복 

시인이 지닌 어깃장이 아주 잘 들어나 있다.  

시인은 느낀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게 부여된 참혹한 아름다움을 .

그것들에 혹해가는 마음을 ,

그런데 그들 ....

부고도 없이 상여도 없이 떠나가는 것들이 꽃 만일까?

지기 위해 저다지도 아름답게 변하다니 ...

이즈음 단풍들어가는 나무를 볼 때 마다 가슴이 아린다. 

흔하디 흔한 느티나무도 얼마나 어여쁜지

연노랑에서 샛노랑 그리고 붉으면서도 맑은 밤색 아마 조금 있으면 탁한 갈색이 되겠지. .

느티나무 세 그루만 중문 안에 심으면 세세부귀를 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

느티나무 세 그루를 포용할만한 땅이라면 

당연히 부자겠지 ....라는 해석은 삭막하다.  

느티나무 새순을 보고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니까,.

봄에 새순이 돋을 때 

일제히 싹이 돋으면 풍 그렇지 않으면 흉 .

그런데  . 

저 수많은 이파리들이 설령 일시에 돋지 않는다 한들

일시에 돋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나. 

너무나 이파리들이 많으니까 . 

그러니 길흉을 점치는 것 보다는 

그냥 희망을 본 게 아닐까, 

이런 깊은 가을에는 더불어 소멸의 아름다움을 볼것이고.

옛이야기속부자는 지금처럼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만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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