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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Oct 23. 2018

상강에 쓰는 편지


모스크바의 신사라는 700페이지의 책을 다 읽었습니다. 에이모 토울스라는 작가의 책인데 오바마가 추천한 책이라더군요. 사실 오바마가 유명한 사람이고 좋은 대학에 그리고 연설도 잘하니 언감생심 게임이 안 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추천한 책이 대단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예측대로  글의 시작이 문학적이지는 않더군요.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은 당연히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장르인데 문학적이지 않다고 하면 당신께서는 문학적인 게 뭔데 물으실 법합니다. 정말 문학적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문은 무의 상대어로 글월 글 문자 등을 나타내는 단어이지만

문에는 어쩐지 철학이 있어야만 문이 될 것 같습니다. 

철학은 또 조금 먼 학문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문학 속의 철학은 학문의 철학과는 달리 어렵거나 고답적인 것이 아니라 가령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깊은 것이  오붓한 것이 혹은 저만의 독특한 것이.... 있어야만 문학의 철학이 아닐까 한다는 거지요. 

문학의 철학은 지나치게 세련돼도 그렇다고 촌스러워도 안 되는 그렇다고 한중간인 중용을 간다 해도 문학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문학적인가?

그거야 사실은 저두 모른답니다. 너무나 수많은 문학적! 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딱 꼬집어 말할 수 있겠어요.

쓰지는 못하면서도 서당개가 되어 저만의 풍월이랄까,  그게 시선의 풍월 같기도 해요. 

개들이 먼 데서 오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채듯 문을 알아채는 촉하나 가 있다는 말을 이렇게 

평생 안자르는 구이저우 성 여인들 머리처럼 기다랗게 하고 있네요. 

소재도 독특하고 상당히 지적이고 그런데도 매력 없는 글이네, 생각하면서 글을 읽어갔죠. 

그런데 200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주인공 백작이 호텔의 지붕에를 올라가게 돼요. 거기서 오래전 '바람'을 만나게 되고  예순이 넘은 잡역부 아브람을 만나게 되고 그와 커피를 마시게 되죠. 맛있는 커피, 원두를 바로 가는 나무 기계 그리고 벌을 만나게 되고 벌꿀 바른 흑빵을 먹게 됩니다. 라일락 향기가 나는 꿀, 그는 한참 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죽으려고 지붕에를 올라가요. 그 순간 아브람이 나타나고 사라졌던 벌이 돌아오고 그 벌의 꿀 속에서 사과꽃 향기가 났죠.

그는 다시 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런 대목들이 좋아요. 아주 사소한 것들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거요.

슬픔은 아름다워지고 기쁨은 황홀해지곤 하죠.

굉장히 지적이고 깊은 사람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감각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  

제가 보기엔 이 글의 백미는 시인이던 백작의 친구가 고골리의 글을 편집하는데 고골리가 외국에서 쓴 편지에 맛있는 빵을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ㅡ그 대목을 지우라는 상부의 명령에 지우고 난 뒤(1920년부터의 일이거든요) 죽을 때까지 빵에 관한 구절을 연구해요.  그 글을 친구의 아내가 백작에게 가져오고 백작을 시인으로 살게 하고 그 시 때문에 살게 되는, 오래전 시가 바로 그 친구의 작품이라는 것도 펼쳐지죠. 

이런 대목에서 작가의 결기 혹은 구상의 깊이, 혹은 그만의 상상의 나래가 소설의 복선이 되는, 하나지만 매우 치밀한 복선이 등장하죠. (아 돈을 감춰둔 탁자 다리도 신선했어요)   

그러니 글이 재미있어지더군요. 동화처럼 결국 해피앤딩이고....

문학적인 것과는 아주 결이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저는 여전히 해피앤딩을 좋아해요.

문학은 거의 고통이나 슬픔 그리고 깊은 우울을 그 태생으로 하고 있죠. 어둡고 칙칙해야만 하는 숙명을 품고 있는 존재라고나 할까, 삶이 원하는 것과는 괴리되어 있지만 그래서 삶이기도 하죠.  

가을이 깊어가고 있네요. 동네 가로수 단풍이 얼마나 빨갛게 노랗게 주황색으로 변해 가는지

그 변함 속에 칼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을 날카롭게 베는, 

 색은 특히 노랑과 주황은  이미 이파리 속에 들어있던 색인데 봄과 여름엔 엽록소의 작용으로 녹색을 띠다가 햇살이 짧아지면 엽록소는 파괴되고 안토시아닌이 나무의 가지나 몸통으로 영양분을 저장하며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발현하게 되는 거죠. 아름다운 단풍 속에 고약한 이야기가 숨어 있기도 하죠.

적도 근처의 사람들에게는 가을이 없어요.  수확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상심으로 땅이 황량해져 간다고요. 

딸 페르세포네를 지하의 신 하데스가 납치해서요. 가을이요. 

가을엔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증가해 이성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고도 하더군요.   

근데 여자건 남자건 간에 늙으면 잘 안 보이는 거 아세요? 늙을 老는 흙으로 화하는 거니  잘 안보일 수밖에요.  

묘할 妙는 어린 소와 여자가 합해진 글자죠. 매력적인 묘한 어린 여자, 남자들의 속셈이 엿보이는 글자 기도 해요.  

젊음의 지대한 속성 중의  하나가 매우 상대적이라는 거예요. 자신보다 조금 더 젊으면 엄청나게 젊게 여겨지거든요. 육십 대에는 오십 대도 빛나는 청춘으로 보이는걸요.

사람의 시선이 너무 젊음을 향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문학에 심취하는 것은 그런 것을 알게 해주는 것도 잇겠지만 

그보다는 그 속에서 나오는 공평함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싶어요.

젊은이는 늙을 것이요. 모든 부귀는 헛됨이며 가을이 깊어지면 더 아름다운 겨울이 올 것이요.

봄은 또 사람을 환장하게 하겠지요. 

서리 내리는 시간에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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