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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15. 2016

아 좋다

유월의 숲

흔히 한 장의 백지가

그 위에 쓰여지는 말보다

더 깊고,

그 가장자리는

허공에 닿아 있으므로 가없는

무슨 소리를 울려 보내고 있는 때가 많다.

거기 쓰는 말이

그 흰 종이의 숨결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상품이고

허공의 숨결로 숨을 쉰다면, 명품이다.//흰 종이의 숨결 / 정현종 


백지 흰 종이ㅡ 

글이 써지지 않는 빈 공간에 대한 이야기지만 

기실은 아직 써지지 않는 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변죽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 변죽이 어느 울림보다 크다.

비유적인 은유라기보다는 

정말 시를 감추인 채 

그냥 백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 가장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그 숨결을......지극히 고급한 정신적인 부분을 

슬쩍 내려뜨려 상품하품으로 구별하는.....아주 우아한 시다. 

그 한가운데에 시가 있다. 꽁꽁 숨겨진 채....


네 시간이나 차를 타고 가서 지리산 자락에 도착했다. 

남원에서도 다시 지리산을 찾아서 한참....

반선이란 곳....하마 삼십 여 년 전에 틀림없이 몇 번은 왔을......동네인데

아무런 기억이 없다. 

내게 부여된 시간은 다섯 시간 반

길 초입에서 세상에 개회나무 꽃이 보인다.

함박나무 꽃도 보이고....뭐야 저것은 다래나무?

그리고 발아래 때죽나무 꽃이 가득하다.

본래의 길이 아닌 나무 데크가 놓인 곳도 많았지만

오른쪽으로 연이어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유장하다.


지리산은 전설이 무성한 곳이다.

전설이 많다는 것은 품이 넓어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요.

무엇보다 넓은 품으로 안긴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다. 

지리산이 뚜벅뚜벅 걸어서 세상으로

나왔는데 어느 요망한 여자가 

‘산이 걸어 나온다!’ 소리치는 바람에 거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는....

지리산의 전설은 그 넓은 자리만큼 무한한 상상을 하게한다.

산이 걸어 나오다니, 세상으로, 그 큰 몸으로..... 

그중에서도 뱀사골은 

여기저기 뱀과 용의 이야기가 무성한 곳이다.

맑고 푸른 물이 깊게 고여있는 용소는 

신령한 스님이 신선이 되는 이야기.

그러나 결국 이무기가 스님을 잡아먹은 이야기 

절은 이무기에게 신령한 스님을 제물로 바치는 비열한 이야기, 

하여간 더욱 신령한 스님이 이를 알아챈 이야기....

그래서 반선도 신선이 반만 되었다는....

용이 되지 못한 채...계곡을 굽어보는 .....용바위도 있다. 


그렇게 유월의 숲으로 들어선다.

물이 푸르다. 푸른가 하면 녹색이다.

청록색인가 하면 지나치게 맑다. 

특히 자그마한 소의 물빛은 뭐라 형용키 어렵다.  

모든 맑음은 색을 떠나 존재하는 것 같다. 

아 좋다.  

무엇이, 왜 어떻게.....는 전혀 필요치 않다. 아니 없다.

그냥 좋다. 

숲은 특히 유월의 숲은 그의 울과 창으로 

내가 지닌 모든 빗장을 제한다. 

그리고 맨마음의.....나를 끌어낸다. 

시가 쓰이지 않는 백지가 

허공에 닿아있는 것처럼

숲은, 정중동의 유월의 숲은 

맨마음의 내게 가없는 그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백지의 상태 아닌가.

순수... 원초.... 근원..... 

그러니까 숲을 걷는다는 것은 

시인이 백지에서 시를 찾듯 

숲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일수도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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