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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16. 2016

유월 ㅡ 동중정의 숲

  이상한 슬픔 덩어리 한 조각

무성하게 차오르며 녹음의 정점을 향하여 가는 

유월의 숲은 

동중정이다. 


이른 봄 작은 풀잎 사이에서

혹은 이파리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꽃대궁 쑤욱 솟아나며 피어나는 작은 풀꽃들,

 피어나는 꽃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고요하기만 할까, 

아 마도 그 꽃을 발견할 때 우리에게서 저절로 발해지는 탄성 못지않을 것이다.  

자그마한 풀꽃들의 소리만 그러랴.. 

나무들,

햇살 여유로워지고 그 햇살에 땅들이 몸을 열고 기지개를 켜며

넓어진 수관 속으로 햇살을 담는다.. 

양양 해지는 식물들.... 거침없이 꽃을 피워 낸다. 

아마 꽃피는 시간은 식물의 때 중 가장 수선스러운 시간일 것이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빚어내는 요요한 함성들....

그 화려한 빛깔을 지닌 봄꽃의 군무가 주춤해지면 

키 큰 나무 꽃들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잘 보인다 하여도 거의 흰빛이거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꽃송이 자그마한 것들이 태반이다. 

그들의 속삭임은 

그리하여 

내적이고 지적이며 기품 있다.

겸손하다. 대갓집 부인네들의 소리 죽인 수다.......  


유월 숲은 초록이 가장 아름답게 성장한 시간이다.

초록 냄새.. 초록그늘... 바람조차 초록으로 화하는 곳,

유월 숲에서는 가능한 한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혼자 걸어야 한다.  

혼자 걷기로 한다.

혼자 걸었다. 

그래야 무엇인가 다가온다.

초록 기운이 데려온 아득한 기억들.

숲만이 불러내는 지나가버린 시간이 있다니까,.  


동그랗게 만든 자그마한 대바구니

바구니 끝이 약간 오므라져 있다. 색이 몇 개 덧입혀진 어여쁜 바구니 

일상으로 쓰는 대나무 바구니보다는 

더 이쁘고 반질반질 윤이 난다.  

그 안에 담긴 색색의 종이 조각들 종이가 귀한 시절 

무엇으로 오렸는지도 기억 밖의 일이다. 

그냥 그 바구니를 옆에 끼고 앞으로 나가면서 종이 조각들을 뿌리라고 했다.

내 곁에 같은 포즈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가 누구였더라 

사실 정말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화동을 여자아이 혼자 하지는 않았겠지. 

아마 생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서 홀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 

싫었던가?

좋았던가?

혹은 부끄러웠던가?

그런 감정의 기억도 있을 턱이 없다. 

자그마한 예배당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몇 발자국 안 되는 아주 짧은 거리였는데

그 길을 아주 빨리 나아가며 뭉텅이로 종이 조각들을 던졌던(?) 기억은 선명하다.  

사실 그 기억은 외할머니 집에 있던 사진이 만들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간 딴 쿠에 아주 높다랗게 올린 머리를 하고 있다.  

하마 오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들의 결혼식에 종이가루를 뿌리던

(근데 그 무렵이면 장미 철이었을 텐데 장미 몇 송이 면 멋진 꽃가루가 되었을 텐데....... 왜 종이를 뿌렸을까?)  

그 어린아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자취도 없고 흔적도 없는 그 아이......  

함박꽃은 지고.... 피고 있었고

국수나무는 도열해 있었다.

때죽나무는 나무보다 땅위에 더 많이 있었고

주걱 댕강나무는 몇 개

줄 댕강나무는 그늘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그냥 댕강나무는.... 그냥.... 지고 조금 남아 있었다.

은행나무 유종을 찾으려 했으나 못 찾았고

불두화는 하얗게 피어나고 노랗게 져가기 시작했다. 

말발도리는 무늬 비비추 위에 하얗게 지내려고

고광나무 꽃은.... 웨딩드레스처럼.... 깨끗하고 우아했다 

개 회나무는 머금고 있었고

쥐다래 잎은 변해가기 시작했다.

만병초도 피어나고

보라색 엉겅퀴는 선명했다. 

어성초 앞에서는 괜히 킁킁거렸다.        

꽃 진자리...

많이 보였다. 

특히 숲 트레일... 어둑신한 속에서 피었다 지는 

동의나물 꽃 진자리가

아이처럼....

어여뻤다. 

 숲 속 트레일에서는 소풍 온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보여줘..... 아이들은 수줍은 듯 가렸다.

그 아이들 중  오십여 년 전의 아이 혹 있을까...... 잘 있니... 있는 거지.


유월의 숲 ㅡ 

동중정의 시간.

짙어가는 녹음의 숲에서

이상한 슬픔 덩어리 한 조각 부판... 같은 질 머지고 가는 아이를 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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