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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pr 13. 2019

액괴와 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


경기천년 제목 라이트는 딱 내가 좋아하는 글씨체이다.  굳이 지금 하이든의 음악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동글동글한 모습이 전형적인 선함과 다정함 그리고 부드러운 균형을 내포하고 있어서 

하이든의 음악 같기도 하다. 

여하튼 이 글씨체를 쓰면 마음이 여려지는 듯하면서 균형이 잡힌다고나 할까,     

나는 좀 전에 노브랜드의 커피 라테를 마시면서 현대문학상 소설들을 읽었다.

소설만 읽은 게 아니라 이 노브랜드.....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한참 생각했다. 

브랜드가 아니면서 브랜드를 나타내는. 그리고 그 브랜드 뒤에 엄청난 브랜드 이마트.... 그 뒤 삼성까지 버티고 서있는,  노브랜드라 하면서 엄청난 브랜드를 나타내 주는 이 절묘한 이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었으니 소설의 어느 부분은 살짝 넘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대신 자세하고 세밀하게 읽지 못한 대신 느낌은 좀 더 날카롭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깊이 들어가지 않는 대신 크게. 블랙홀도 밖을 찍지 않았던가... 큰 밖을, 

소설을 제법 읽는다고 생각을 하는데도 이즈음 젊은 사람들이 쓴 소설이 내겐 조금 어렵다. 

하긴 어려워야지, 

이미 현대미술은 너무나 어려워서 설명 없이는 작가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지역으로 이사 간지가  언젠데

소설이라 하여 새 땅으로의 이주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들도 새로운 사람인데...

가령 이주란의 ‘넌 쉽게 말했지만’ 이란 단편소설은 

시간대별로  현재를 적어, 그리면서 이야기해나가는데

나는 여전히 나이 든 사람이라 그래도 뒤에 무엇인가 나오겠지....... 하며 읽어 가는데 

결국 내가 원하는 혹은 나올 거라고 예측했던 어떤 결과물도 없더라는 것, 

소설 속 액괴인지 슬라임인지, 아이들이 조무락 거리며 말랑거리는 괴물을 가지고 노는데 

이 소설이 딱 그 액괴 같더라는 것이다. 

그냥 주무르고 그냥 퍼지고 그냥 변하고 

그런데도 괴물인 것은 아이들의 손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그 액체도 아닌 것이 액체 같아 괴자가 붙은 그 괴물이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주무르는 손이 괴물일 수도 있다는 것 정도가 내 생각이었다. 

선자는 고의적인 빈틈으로 재현해야 할 것을 누락시키는 방법으로 상처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회복기를 둘러싼 사물들의 아름다움이라고도 했다. 

이 밋밋한 글에서 어떻게 

멋진 것, 잘 쓴 것,  촌스럽지만 개성을, 뛰어남을, 남과 다름, 을 찾아내는가 말이다.

그러니까 혹시, 이런 것이 세대차이(아 이 촌스러운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니) 아닌가, 

굳이 또 인과응보식으로 어떤 원인을 찾는다면 난삽한 나의 독서법(이 책 저 책 마음대로 읽다 놓다를 수시로 하는)대로 혹시 함께 읽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탓일 수도 있다.

불같은 그의 문체 열정 덩어리인 그의 표현  황홀한 사유력 주변을 태우고야 말겠다는 액티비티~

이 들과 너무나 다른..... 액괴 같은 표현들 상황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는 것,  

그런데 이전에도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요즈음 젊은 작가들의 방향을 살짝 내식으로 이해 볼라치면 이렇다.

첫째, 동쪽 이야길 을 하려면 먼저 서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그 서쪽의 풍경을 동쪽이 아니니까 객관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세 째,  한구석에서 남의 일처럼 넌즛이... 매우 넌지시 이야기를 하다가

아주 잠깐 

아주 살짝 

동쪽으로 돌아온 듯하다가 다시 서쪽으로 가서 바닷가 모래사장을 서성거리며

황혼을 바라보다가 누군가와 회접시에 소주 한잔 기울이다가  돌아오는 것, 


평론가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닌 사람의 이야기니 뭐 그리 썩 정확하랴만

이즈음 소설이 이런 양식을 즐겨한다는 느낌이 오더라는 것이다.      

소설이 삶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면 그러니까 무슨 답이 있으랴,

오히려 그 답을 찾아서, 없는 답을 찾아서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카잔자키스가

슈퍼맨처럼  스파이더 맨처럼 조로처럼 옛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겠구나.

허무맹랑한 문체로 여길 수도 있겠구나. 

답 없는 세상을 

모르는 세상을 그러니 겨우 '나'나 조금 알까, 그러나 그 '나'도 어려워서 

사실은 직시하지 못하고(사실을 직시하는 것도 촌스럽고 유별나고 객기처럼 여겨지니 안 하고 말고,)

그저 산책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생각 없는 산책.

근데 이런 빈틈에 매혹되다가도 모두 다 이런 빈틈에 함몰되면 어떨까.....   

 

교회 아이들이 액괴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다. 한번 살짝 만져봤는데

차갑고 미끄덩거리면서도 손에 전혀 붙지 않는 그 이물감이 독특하면서도 약간 소름이 돋았다.

이런 기이한 괴물 속에는 숱한 화학물질이 섞여 있다가 어린 피부 속으로 스며 들어올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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