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1890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가끔 길은 내게 미래처럼 혹은 시간의 순례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산속으로 휘어지며 아득해 보이는 산길, 숲으로 들어서는 길, 굽이도는 잿길들은 아름다운 풍경처럼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오래된 고샅길, 사람의 흔적이 뜸한 두멧길, 온전히 사람의 발길로만 다져진 너덜길이나 나무꾼들의 발길로 만들어진 푸서릿길을 걸을 때면 더 그렇습니다. 어쩌면 내안에 각인된 길이란 개념이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서일까요, 어느 땐 길이 있어 내가 걷는 것보다 마치 길이 다가오는 듯한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길에, 특히 낯선 길에 매혹 당하는지, 가지 못한 길이어서 일까요, 길이란 단어가 지닌 폭넓은 아우라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인 오베르 교회입니다. 고흐 특유의 강렬한 색깔과 붓터치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고흐는 세상을 떠났는데 교회 그림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란 것은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깊은 의미를 주기도 합니다. 길이 두 개 나있습니다. 마을로 가는 길과 공동묘지로 가는 길입니다. 마을은 조금 보이지만 묘지는 전혀 보이질 않는군요. 어쩐지 교회를 향하여 뚫린 길이 있어야 할 듯 한데 오히려 두 개의 길은 교회를 비켜가고 있습니다. 세상도 죽음도 비켜가는 곳이란 의미일까요. 보리가 익어가는 즈음입니다. 오베르교회는 지금도 실제 존재하는 교회인데요, 고딕양식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함께 있습니다. 가만 보세요. 교회가 마치 움직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저 화려하게 대비된 색들은 그 움직임을 더욱 강하게 해주고 있구요. 교회의 움직임을 통하여 고흐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영혼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사람이 지닌 영혼의 울림을 표현하고 싶었을까요. 하늘은 하도 짙푸르러 무거워 보이기조차 합니다. 자세히 보면 교회의 정문이 아니라 뒷모습입니다.
이상하게 그림 속 오베르 교회는 그 어디에도 출입문이 없습니다. 설마 없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옆이나 뒤에 문은 존재하겠지요. 광산에서 복음을 전하던 고흐는 광부 편에 섰다가 전도사에서 해고 됩니다. 성직자의 길을 막았던 교회, 혹은 너무나 깊은가난과고통에 젖어 살던 자신의 생존을 저렇게 닫힌 문으로 나타내려 했을까요. 사실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수많은 성경 구절과 기도문 전도사 시절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박제된,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거절할 수 없는 힘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하시는 분” 고흐가 쓴 편지 속 구절입니다. 어쩌면 그는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면서 혹시 자신이 벗어난 목회 길에 대한 그리움을 저렇게 오베르 교회로 표현해냈을지도 모릅니다. 작가인 앙드레 말로는 이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기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가 지탱하고 있던 믿음은 다수의 열정과 동일한 것이다” 오베르 교회, 아름답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한참 바라보노라면 그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고흐가 즐겨 그렸던 사이프러스나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꽃의 기억은 벌써 희미해진 듯 벚나무는 신록에 덥혀갑니다. 숲들은 어느새 원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무성하게 변해가는 나뭇잎을 보며 아담과 하와의 가림 옷이 되었던 무화과 나뭇잎을 떠올리게 됩니다. 인식은 부끄러움과 슬픔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지요. 고대 인디언들은 사람을 걸어 다니는 나무로 불렀다는 군요. 신만이 나무를 만들 수 있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나무가 만들어내는 숲은 자연이 만든 교회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길 위에 있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붓이 존재한다.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 고흐가 한창 그림과 분투하던 시기에 쓴 편지글을 생각해보면 오베르 교회는 고흐의 신앙고백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고흐의 오베르교회를 보며 아우라는 커녕 ’솟구치기‘ 만을 좋아하는 소수의 교회들도 생각해봅니다. (교계신문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