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뤼겔 1558
그림은 풍경처럼 서서히 다가오기도 하지만 책처럼 갑자기, 사람처럼 느닷없이 곁에 와 설 때도 있다.
짐 자무시의 패터슨이란 영화는 패터슨이란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버스기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들여다본 영화다.
자극도 없고 특별한 스토리도 없지만 시를 찾는 패터슨의 시선에 의해
관중도 함께 시를 찾게 되는 시적인 영화,
영화의 잔향이 강해서 실제로 패터슨에 살았다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라는 시인의 시를 찾아보다가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이란 시를 읽게 되었다.
<브뤼겔 그림에서 /이카로스 떨어진 건/바로 봄/ 밭에서 농부쟁기질/
아롱다롱/한해 볼거리 온통 깨어 들썩들썩 /바다언저리/자기 일에/골똘하여/
날개 밀랍/녹인 볕에/ 땀 흘리는데/ 별일 아닌 듯/ 앞바다에서 /일어난 일/
아무도 몰라준/풍덩소리/이카로스 익사였네/>
전체적으로 동시처럼 맑고 싱그러운 것은 브뤼겔의 작품이 주는 느낌과 흡사하고
또 그 시를 들여다보면 함의하고 있는 뜻들이 많아서 다시 또 브뤼겔의 그림과 흡사하다. 바로 봄!
붓보다 사색의 힘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브뤼겔의 그림을 어렵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스토리가 내재되어 있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즐거운 이야기를 가늠해보는 풍성한 작품이다.
피터 브뤼겔은 농민들의 평범한 삶을 유머와 함께 사랑스럽게 표현해서
'농민의 브뤼겔'이라고 불린다.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역시 가장 중요한 지점에 컬러풀한 옷을 입은 농부가 밭을 갈고 있다.
바로 곁에서 싱그럽게 자라나는 나무나 무한대로 펼쳐 있는 바다,
그 바다위의 범선 그리고 먼데의 도시풍경일지 아름다운 산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밭을 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농부의 밭 아래쪽에는 양치는 목동이 있다.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목동은 지팡이에 살짝 몸을 기댄 채 먼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자,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카루스-제목대로라면 주인공일-가 보이지 않는다.
추락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유심히 살피면 그제야 바다로 떨지는 사람의 다리가 보인다.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한 다리....
바로 그 앞에서는 낚시꾼이 낚시를 하기 위하여 먼데로 찌를 던지고 있다.
이카루스의 오만한 태도 때문에 빚어진 상황 즉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지혜로운 말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한, 교만 때문에 생긴 당연한 결론으로 저 무심함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타인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인간상을 그린 것일 수도 있겠다.
네덜란드에는 "사람이 죽었다고 쟁기질을 멈추지 않는다." 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은 네 앞에 펼쳐진 현실이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브뤼겔은 주목한 것일까,
어쩌면 죽음의 허약함을 저 빛나는 햇살에 실어 보낸 것일까,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고독한 삶의 여정을 저 눈부신 봄날과 사람들의 무심함에 빗대어 표현한 것일까,
그러니까 너의 고통이나 좌절 고독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
저 아름답고 변함없는 세상 속에서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도 윌리엄스의 시 한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무도 몰라준 풍덩소리”다.
브뤼겔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이카루스의 추락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이카루스 자신조차도 추락하면서야 추락을 인식하는 그런 ‘현재’를 그렸을 수도 있다.
사월이다.
봄이 오는 것을 보리라,
꽃이 피는 것을 보리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도
어느새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 서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사라져 갈 것이다.
혹시 이봄 모든 일이 드러나는 주의 날이 도둑처럼 올수도 있겠지.........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을 보면서 든 서늘한 생각!
(교계신문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