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 캔버스에 유채 텔아비브 미술관
쓸쓸함이 고독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 갈래로는 충분할 것이다. 쓸쓸함은 모든 고독 속에 섭리처럼 배어있는 필요충분조건 같기도 하다. 저 깊숙한 심연에 자리한 고독을 퍼내는 마중물 같기도 하고,
내게 각인된 가장 쓸쓸한 풍경중의 하나, 이제는 남의 집이 되어버린 옛집은 마당이 넓었다.
꽃이 심어있는 정원이기도 하고 상치 오이가 자라는 텃밭이기도 하며
감나무 배나무 무화과 열매도 익어가고 있었으니 과수원 모양새도 있는 뜰이었다.
여름의 끝 무렵이었고 꽃이 무거워 고개를 숙인 다알리아가 장독대 뒤에서 뒷목을 보이며 가득 피어나 있었다. 아버지는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다행히 아파하시지는 않고 잠을 많이 주무셨다. “아니 무슨 잠을 그리 주무시오?” 엄마가 깨우시면 “그러게 웬 잠이 이리 쏟아지는지 모르겠네.” 대답하고 다시 주무시곤 했다. 이남이녀이던 우리들은 자신의 가족들 까지 이끌고 옛집에 있었다. 우리는 거실에 앉아 마당을 내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하며 가끔 웃기도 했다.
아버지 소천 하신 후 이상하게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웃고 있는 그 시간에 죽음의 길에 들어선 아버지는 홀로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필경 우리의 웃음이 아버지를 더 쓸쓸하게 했을 것이다.
샤갈의 <고독>이다.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호답게 거의 모든 작품들이 독창적이고 화려한데
이 작품은 어둡고 심오하다.
등장인물들은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어서 날거나 공중을 부유하는데 어이된 일인지 <고독> 속의 중년 남자는 마을을 저 멀리 뒤로하고 사람 없는 들판에 홀로 앉아있다. 두루마리 성경을 품에 안고 고뇌하고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예언자의 모습 같기도 하다.
그는 성경을 품고 있지만 성경에는 관심이 없는 듯도 보인다. 오직 그의 시선은 땅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땅이 형상하는 것들 속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은 것일까,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힌 것일까, 들판에 홀로 서서 기도하리 나섰는데 기도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일까, 암소는 고독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암소의 눈망울은 맑고 긍휼에 가득 차 있으며 걱정스럽기 조차 하다.
유태인의 주석서 미드라쉬에 의하면 밭갈이를 하던 소가 멈추자 농부가 매로 쳤다. 그 때 하늘에서 소가 성전 파괴를 애도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잠시 후 다시 소가 일어나 즐거워하는데 다시 하늘에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소는 샤갈의 작품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상징한다. 내 팽개쳐진 바이올린 역시 유대인에게 성전의 파괴를 의미한다고 한다.
샤갈은 미술사의 형식적인 면을 무시했다. 오히려 어던 파나 주의가 자신을 옭아맨다고 생각했다. 실제 파리에 거주할 때 입체파나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은 자신만의 자유로운 세계로 귀향했다. 그래서 그는 <고독> 했을 것이다.
<고독> 은 1933년 작품인데 그해 만하임 미술관 전시 후 샤갈의 작품들은 나치에 의해 공개적으로 소각되는 불운을 겪었다. 프랑스 시민권을 박탈당한 것도 그즈음의 시간이었으니 <고독>은 샤갈 자신의 심경을 나타냈을 수도 있다,
정말 고독할 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작품은 사람의 시선에 대한 응축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조금만 시선을 옮겨보자, 그래서 암소의 시선을 만나면 아, 거기 너 있었구나....함께 라는 따듯함, 한 때 마음을 떨리게 하던 바이얼린 소리가 기억나며 그 때 같이 했던 그리운 사람들도 생각나겠지, 그리고 좀 더 눈을 높이 두면 빛을 발하는, 희망찬 날개 짓을 하는 천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소녀시절에는 고독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다. 멍히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본다거나 어디 사람 없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펼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등, 치기어린 행위로 여겨 기억 속에 없는 척 살아왔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것 역시 여물지 못한 풋것의 고독 지향이었다.
<고독>은 우리 모두의 벗이므로,
(교계신문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