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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30. 2020

잠 안 올 때 하는 일 세 가지

                                    고야의 판화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 상상이 이성과 결합되면 모든 예술의 어머니, 모든 경이로움의 원천이 된다"라고                                고야는 썼다.




잘 안 읽히는 철학 책이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내면을 그리는(나도 나를 모르는디)책 을 읽다가 

느낌이 수욱 다가오는 시를 읽으면

금방 가슴이 촉촉해진다.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듣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가령 김종옥이 쓴 ‘잠에 대한 보고서’에서

콩의 잠을 위해 가로등을 깨는 할머니의 말은 이렇다.

‘환한 불빛에 저놈들 보랫빛눈 깜짝이는 거 보이쟈?’(아흐 저 보랫빛~~~) 

‘세상에 잠 안자고 맺어지는 열매 어디 있다냐? 느그들도 환하면 잠 안오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제 자라거나 열매 맺을 일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쓸데없이 잠귀가 밝았다. 

아버지 엄마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다 들려왔고 

가을밤에는 벌레 소리 때문에 잠 못 들다가 다시 벌레 소리 때문에 잠이 깨곤 했다.

어젯밤에 침대 위에 누워 있는데 뭔가가 툭 떨어졌다.

아주 작은 귀뚜라미였다. 

그냥 둘까 했는데 아직 세상에 익숙하지 않아선지 굼떠서 결국은 핸드폰으로 덮었고

휴지로 죽였다. 잔혹하다. 

그러나 자다가 혹시 저 이상한 것이 내 얼굴이나 팔에 기어 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왜 그렇게 벌레는 무섭고 싫은 것일까, 

벌레에 대한 감각에 대해 생각해보곤 하는데

그것들은 거의 본능적이고 생래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잠이 깨는 것도 싫고, 그 서늘한 놀람도 싫고, 무엇보다 벌레가 살갗에 닿는 그 낯선 감촉은 더 싫다. 


그래서 요즈음은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피곤하지 않으면 그냥 불을 켜고 일어나버린다. 

어젯밤에는 노트북을 켜고 DㅡBOX에서 발헨호수의 비밀을 봤다.

젊은 여자 감독이 독일 발헨호수에서 살던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엄마까지 

그녀들의 역사를 찍는다. 

사진 작가이던 엄마 때문인지 과거의 영상들이 많았다.

보다 보니 핵은 엄마가 아니라 이모였고 

보다 보니 히피였고 

보다 보니 명상, 요가를 하는.... 인도의 크루팔 싱이라는 그루를 믿는 사람이었다. 그 엄마가, . 

해변가에서 나체로 살며 아주 적은 음식을 먹고살기도 했고 

약을 하기도 했으며 한 남자와 여러 여자가 함께 살기도 했다. 

성은 문란했고 (내게는 문란이 그들에게는 자유) 영적이라고 여기기엔 매우 감각적이었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앞서가는 것, 다르게 사는 것, 특별한 것을 추구했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앞서거나 특별하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든 생각인데 사실 다큐에는 거의 주제 같은 것이 없다.

뭘 말하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기록? 이런 삶도 있어.... 라는 정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들의 삶이 드라마는 아니니까, 

허니랜드의 주인공은 표정만으로, 그 표정을 만들어주는 쓸쓸하고 황량한 자연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고독을 보여주기도 하더라만, 그런 경우는 좀 드물긴 하다. 

소설은? 

아니 소설은 또 전혀 다른 색깔들이 겹겹이 숨어 있어서, 

다른 삶을 지어내지만 그 지어내는 삶 속에 작가의 철학이 녹아있으니까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재미나다. 


잠이 안 올 때 두 번째 하는 방법은 유튜브에서 

적당한 강의를 하나 찾아 듣는 것이다.

빛은 제일 약하게 해서 귀 옆에 놓고 (오, 전자파 생각을 하면서)

듣다 말다 하면 어느새 잠이 들어서 

핸드폰을 끄다가, 다시 잠이 깨서 또 한참이나 왜 잠이 안 오는 거야? 생각하다가.... 

세 번째는 

백색 소음인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이다. 

진짜 빗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지는 못하지만 

워낙 비를 좋아해선지 그런대로 괜찮다.

물론 눈을 감고 상상을 해야 한다. 

호박잎으로 내리는 빗줄기, 차도 위로 내리는 빗줄기, 

강 위에 어리는 안개처럼 내리는 빗줄기 등.....

내가 보아왔던 그 수많은 빗줄기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

빗소리와 섞는 것이다. 반죽을 잘해야 한다.

그렇게 잠이 들어도 또 깨서 엥? 한시 밖에 안됐어? 이제 세시구나, 네시 반? 

서너 번쯤 잠이 깨고 

다시 또 잠이 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잠을 기다리는 시간은 낮의 시간과 달리 밀도가 높아 굉장히 길게 여겨질지도, 

낮의 시간 십분과 눈을 감은 채 잠을 기다리는 시간의 십분은 다를 수 있다는 것, 

잠깐만 잠이 깨도 그 시간이 굉장히 길게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 


나는 나를 그리 생각하지 않지만 

내 깊은 본성 어디쯤에는 

혹시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많은 걸까, 

세상이 미덥지 못한 것일까, 

깊이 잠 못 들고 반쯤 귀를 열어놓고 잠자리에 드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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