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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10. 2020

참 시시한 글





글도 결국 외로움의 산물이구나 싶어,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 봐줬으면 하는, 

내 삶을, 생각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나는 거,

김윤식 선생이 그랬었지.

외로움은 사람의 의무라고, 

그러면 글은 일종의 직무유기네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보면 외로움이 감해질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지)

혹시 그러면 글은 관음증 유발자 아닌가,   

觀音은 불교용어로 음악을 바라보면 도를 알게 되고(이런 단어는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데)

觀淫은 음란을 바라보는 거니(이런 단어는 상상력을 천박하게 하지)결국은 증과 함께 사는데,   

물론 그 둘의 차이야 현저하지만, 

문득 시니컬해선지

비슷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아 자랑일수도 있겠구나, 


근데 자랑처럼 허무한 보여주기가 또 있으려고, 

자랑은 인정에 대한 욕구의 발현이지, 

그니까 자기 혼자서는 

자신의 삶에 아무런 자신이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광고하는 거지,     

글은 벗을 찾는 일일까?    

어제 가까운 호수....원래는 저수지였는데 호수라고 이름을 정식으로 바꿨대,

그 주변으로 ‘하니 랜드’라는 말랑거리는 이름의 관광지가 있었는데 

난데없는 식당에 ‘가든’자가 붙더니 어느 순간 사라진 것처럼

랜드라는 이름도 그렇게 사라져가는지 그곳도 황량했어,

그래서 추측컨대 지자제 분?께서  

호수를 아마 자연 혹은 사람에게 돌려주려는가 봐. 








호수 주변을 걷기 시작하는데 처음 안 사실, 

겨울이 왜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는가.... 했더니,

이파리 떨군 나무들 때문이었어, 

깨 벗은 거지, 홀딱,

그러니 깨 벗은 사이로 아무것이나 들이차고 

깨벗은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니

저절로 자연스러움을 깨닫게 하는 거지. 나무가ㅡ 사람에게ㅡ 겨울나무가, 

테크 사이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줄기 사이사이로 하늘이 들이차니

하늘을 품은 나무가 되더라고, 

크지 않은 호수인데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고요한지.....

호수 위를 날아가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오고(새소리를 글로 적을 수는 없어) 

호수 위에 사는 오리들 소리도 제법 크게 들리더라고,       

그래서 사진을 몇장 찍었는데

이게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거야. 

누군가 그래, 아 멋진데...... 감탄한다 한들 그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득 이 이야기도 하고 싶네.

아침에 일어나면 웨이스트니퍼 차는 것이 내 일의 시작이라고, 

호크를 열 세개를 걸어야 하는데 

이게 관절염으로 양손의 엄지 손가락이 아프니 쉬운 일이 아니야, 

거기다가 하나로는 헐렁해서 두 개를 입어야 뭔가 딱 조여지고 허리에 힘이 생기거든,

그러니 스물 여섯 개 호크를 채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러고 나서 책을 서서 읽기 시작해,

이게 제법 벽돌책이라 무거운데 내 의자 머리맡에 책을 살짝 걸쳐두고 

그래도 한 시간가량은 서서 책을 읽었어.

물론 재미있어서 가능한 이야기지. 

로렌스 스턴이란 영국사람인데 나는 이사람 이름을 최근에 처음 알았어.  

열린 연단에 에세이 코너가 있는데 

나는 그 코너를 나의 외출용 책으로 여기고 있어. 

지하철이든 버스든 찻집에서든, 심심할 때 마다 여는, 

문광훈선생이 스턴씨...하며 웃음 이야기를 써 놓았더군, 

당장 리브로피아에서 검색을 하니 가까운 도서관에는 없어서 상호대차를 신청했더니 

그제 연락이 왔더라고, 

시간이 아까워서(이게 유머인 것이 별일도 없는 백수가 말이지)  

책을 많이 안 빌리려다가 <도서관엔진>이 저혼자 걸리더라고. 

그래서 결국 칠권을 빌리니

사서가 알아서 삼 주를 잡아주더군.

여튼 벽돌책을 가끔  킥킥거리며 읽는데

글 쓰는 사람이 새는 바가지가 되어서 자꾸만 여기저기로 새는 거야,  

그러면서 그게 일탈이라고.....일탈이 없으면  글이 안된다고, 

근데 나는 그 일탈이 해찰이라고... 해찰이라는 단어를 써야 알맞다고 

300년 전 저자 아저씨, 아니 저자 목사님 아니 로렌스 스턴씨께 말을 하다가

혹시 그분은 해찰이란 단어로 썼으나 번역하신 분이 일탈로 쓴게 아닌가,    

아홉시에는 김미숙이 나와서 당신 곁의 배경 운운하며 눈타령에 캐럴에 

아이고 음악을 보내주더군. 

그래서 그 분 시키는 대로 음악을 배경으로 깔면서 올랜도를 읽기 시작하는데

옴마야,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울프 책을 읽고 있는데 울프 이야기를 하니, 

뭔지 그럴 듯 하더군,  

                   

글이 참 시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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