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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05. 2020

사랑이 한 일

이승우




소설이 논리적일 필요는 없다. 

삶이 어디 논리에 기인해 있던가,


소설은 삶의 궤적을 그린다. 

삶을 떠난 소설은 없다. 

소설은 과정을 그리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어쩌면 결론 몇 줄을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의 전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목적인 글이다. 

타인의 삶을 가장 객관적으로 그리는 장르가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은 또 필연적으로 논리를 품고 있어야 한다.  

논리는 이해의 필수 불가결한 도구이다.   

논리는 삶을 보여주는 길이다. 

어쩌면 진짜 삶 속에서 무수한 우연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지라도

소설은 그 우연에 깃든 논리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태어났다 죽다. 두 줄로 완성되는 인간의 삶에 

하나님이 진흙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듯, 

사람들의 생에 생기를 넣는 글이 소설이다.  

그러니 과정은 우리의 생기일 수도 있고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사랑이 한 일>은 이승우의 소설 다섯 편의 집이다. 

그가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 한 대로 

위대한 원작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는 수줍은 손가락이기를 바라는 소설.

위대한 원작은 성경이다. 

그것도 맨 앞의 책 창세기 중의 몇 대목 ㅡ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ㅡ이 

소설의 테마이다. , 

창세기는 머리가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사람이거나 

믿음이 출중한 사람들이 믿음이라는 거대한 문에 들어서서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창세기의 시작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사람이나 세상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절대 열리지 않는 비밀의 문이다. 

하다못해 알리바바의 주문도 열려라 참깨!처럼 매우 단순하지만 

그 참깨가 콩이나 벼 보리 혹은 크기가 매우 비슷한 겨자등을 사용해도 

절대 열리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지하는 우주의 탄생은 더욱 비밀스럽다. 

대략 150억년 전 빅뱅이 일어났다. 

우주는 하나의 점이었다. 

태초의 우주가 매우 높은 온도와 밀도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은 엄청나게 팽창해 현재에 이르고 시간과 공간 에너지가 만들어졌다. 

나는 150억 년 전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도무지 감이 안 오는 시간이다. 

우주가 하나의 점이라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빅뱅이라는 추론도 내겐 가능하지 않다. 

이 섬세한 인간이 먼지 속에서 그 먼지가 얽혀 탄생했다고?


그보다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가 상상하기 힘든 추론보다 훨씬 더 믿기 쉽다. 

진화론에 덧댄 이론들보다 여러 가지 부문에 명쾌한 답을 내려준다. 

그렇다고 모든 것들이 다 이해하기에 쉽지는 않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고 긴 세월을 기다리게 한 다음 100세에 아들을 주신다.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끝났을 때다. 

사라는 늙은 할매인 자기가 애기를 낳는다는 말에 너무나 웃긴다며 웃었다.   

그러나 이삭은 태어났고 얼마나 사랑스러우랴, 

그러더니 그 아들을 당신에게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려고 땔감을 준비해 사흘 길을 떠난다. 

이삭은 그 사흘 길 동안 깨달음을 얻는다.

<사랑이 한 일> 이라고, 그래서 사랑은 무서운 거라고,    


교회에서는 이 대목에 주로 순종을 대입한다.

죽음을 불사할 순종이 우리에게 아브라함처럼 있어야 한다고,

신에 대한 순종은 사실 가장 잘사는 방법의 하나이다. 

신에 대한 인간의 당연한 행위일 뿐 아니라

신에게 자신의 복을 빌만한, 혹은 자녀의 복을, 그리고 사회의 복을 빌만한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종은 이타가 된다. 


그러나 이승우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사랑하는 자에 대한 시험, 

신은 아브라함을 사랑해서 니가 과연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아브라함이 그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통한 시험을 주신다.

그 시험은 신 자신이 인간이 되는 길이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아브라함에 대한 사랑의 시험은 신 자신에 대한 시험이 되기도 한다

신의 가슴을 졸이는, 신의 고통스러운 시험이기도 하다.


‘바침’에 대한 명상도 이어진다. 

다른 글들도 좋지만, 

‘사랑이 한 일’ 이 너무 좋아서 다시 또 읽었는데

감수성을 터치 하며 깊게 다가온 이유가  

내가 신앙인 이라 더욱 그러했구나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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