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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29. 2020

새해 기도

       



 


주님! 새해가 되었습니다.

여상한 시간은 주님의 어느 부분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요동치고 있는데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니까요.

코비드 19와 함께 일 년을 보내며 우리는 ‘멈춤’ 속에 있습니다.

앞서야만 성공이고 질주해야만 행복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멈춤은 퇴보이며 실패라는 자본주의의 채찍에 맞으며 정신없이 살다가 토리노의 말처럼 우리는 멈춰 섰습니다. 혹시 멈추지 않으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아 주님께서 우리를 멈추게 하신 게 아닐까,

생각도 설핏 들었습니다. 

 

결혼 전 살던 옛집 본가에는 토종 백합 몇 그루가 있었습니다.

춥지 않은 동네 라선 지 따로 뿌리를 간수하지 않더라도 매해 그 자리에서 피어나곤 했었지요.

초여름 밤의 서늘하고 부드러운 공기는 향기를 담는 그릇이라도 되는 것 같았어요. 

어쩌다가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올 때면 집이 한참 멀었는데도 향기가 먼저 다가오곤 했었지요.

그 무정형의 향기로움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극점에 다다라서 향기의 의식 같기도 했습니다.

희디흰 달빛이 마당에 내려와 있는 날이면 달빛 가닥 올올이 향기가 얹어져 너울대는 것 같기도 했었지요.

이제는 어떤 정원이나 큰 화원에서도 옛집의 향기로운 백합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한 대에 한 송이 어쩌다가 두 송이 피어나던 백합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지요.

여러 송이를 풍성하게 매달아야 하고 은은한 향기 대신 과장된 향기를 지녀야 선택받을 수 있거든요.

강하게, 세게, 화려하게,

어디 꽃 만일 까요. 


 우리가 자연을 그대로 두고 그들과 공존하며 소박한 삶을 살아갔다면 어땠을까요. 

1990년 대만 해도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14%였는데

이천 년대에 들어서면서 77%의 땅을 사람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도 조그마한 빈틈도 없이 건물들이 세워집니다.

과거의 시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빠른 속도로 자연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터전이 사라지면 그 안에 살던 무수한 생물들도 다른 살 곳을 마련해야겠지요.

코비드 19가 중국 깊은 숲에 사는 박쥐들에게서 인간으로 건너온 것처럼 말이지요.

지하수의 저주라고도 부르는 씽크홀이 우리 동네에도 생겨서 그곳을 지나가면서 소름 돋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 씽크홀은 땅이 숨을 쉬지 못해서 참다 참다못해 무너져 내리며 호흡 한번 한 게 아닐까,

지금은 이렇게 가벼운 도로이지만 무거운 아파트나 건물들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땅이 꺼진다면......

기우겠지요.

고개를 흔들면서도 바다가 바다를 지나 마을로 서슴없이 들어서던 것을, 

기우가 현실이 되던 쓰나미를 우리 모두 보지 않았던가요.

세계가 한 마당이라는 것을,

타인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공존하지 않으면 함께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진정한 공존이란 사람들 속에만 있어야 할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도 지켜야 할 룰이라는 것을, 


멈춤과 집콕 속에서 독서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시는 부재의 공간을 상정하는데 시인은 시인조차 부재하는 공간을 직관적으로 포착한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집에 머물러 있지만 결국 집의 공간을 초월하게 된다고요.

그렇게 구성되는 자연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로 여겨지더군요.

시적 공간이 지닌 풍경화는

어쩌면 우리가 실제로 보는 아름다운 풍경보다 더 그윽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바벨론 포로의 눈물이 가슴을 적시고 의지했던 성전이 무너지는 그 슬픔의 시간 속에서 

말씀을 더욱 의지하던, 더 깊이 기도의 뿌리를 내리던 그들의 삶도 묵상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새해 저의 작은 슬로건은 “판단하지 않기‘입니다.

주님!

제 작음을

더 알게 하시고

깊게 보게 하시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땅에 티끌이 되게 하소서.   (교계신문 2021 첫 주 연재 글)


(사진은 수년 전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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