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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02. 2021

하이쿠를 읽다

2021년 첫날

바쇼의 일본 우표


새벽 잠자리에서 어젯밤 읽다 둔 바쇼의 하이꾸 책을 펴 들었다.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은 서늘한 아침. 

부드러운 이불은 내 체온으로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얼굴에 와 닿는 겨울의 서늘함이 좋다. 

온몸이 추운 것은 싫은 일이나 

얼굴이나 발이 서늘한 것은 정신을 신선하게 해 준다.

겨울이라 무조건 따뜻함만을 추구할 것은 아니다.

굳이 겨울에 여름처럼 살 일은 아니다. 

여름의 더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겨울에는 겨울이 주는 서늘함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반팔은 여름에도 싫증 날 정도로 입는다.

겨울에 집을 후끈하게 데워놓고 반소매를 입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겨울에는 내의가 주는 따뜻함도 느껴봐야 하고 

여름과는 다른 서늘한 기운을 집에서도 즐겨야 한다. 

도시에서 사는 자의 자연에 순화된 삶이라고나 할까,

온도 일도만 낮춰도 연료량은 엄청나게 줄 것이다.

그러면 미래의 우리 아이들 살기가 좀 더 나아지겠지.    



하이쿠에는 季語가 있다.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지만 시간만이 아니라 이미지까지 환기시키는 주제어이다. 

녹초가 되어/ 여숙 찾을 무렵이여/ 등꽃 송이

이 하이쿠의 계어는 등꽃 송이이다. 

그러니 등꽃 피는 시기뿐 아니라 

등꽃 송이가 일본인들에게 준 어떤 느낌을 알아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디 온전함이 쉬운 일인가, 

그러니 온전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노력하더라도 결말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비슷한 일이다.


하이쿠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의 하나가 ‘단절’이라고 한다. 

연결되지 않는 단절로 상상의 여백이 커지고 

그 사이로 들어찬 시공간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하이쿠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를 읽는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둔 것이다. 

현대의 미술이

가령 인터랙티브 아트가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관자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처럼 

하이쿠는 그 옛날에 이미 독자의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닐까,     

하이쿠의 근원은 와카(和歌)다. 

모노노아와레.... 가 바탕이 된 감성의 노래, 

화려하지만 금방 지는 벚꽃, 아련한 달빛이 어울리는 시였다. 

히라카나가 생기기 전 한자음을 빌어와 와카를 기록했는데

중세 무사 시절 전란기를 맞아 와카는 여러 사람이 읊는 렌가(연가)로 이어졌다. 
 공감대 형성으로는 최고였지만 차츰 까다로운 규칙이 생겨났고 

지나치게 우아한 모습을 요구하고 유현을 추구해서 지식이 필요했고 어려웠다. 

이런 렌가에 反한 해학적 렌가 하이카이노 렌가가 생겨났다. 

우아함 속으로 삿된 것들이 들어갔고 해학이 자리하며 하이쿠가 되었다. 


하이쿠의 교부 바쇼는 

깨달음을 얻고 속으로 돌아간다는 고오귀속高梧歸俗을 말했다. 

결국 돌고 돌아 속이 답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별다른 삶이 없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깨달아도 거기 특별한 삶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하이쿠를 통해 

자연과의 합일, 자연과의 정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파초에 태풍 불고/ 물 대야에 빗소리/ 듣는 밤이여

바쇼라는 그의 이름은 파초의 일본어 발음이다. 

그는 뜰에 파초를 심고 집 이름도 파초 암이라 불렀다.     



고요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    

이우환 선생이 책의 말미에 바쇼의 시를 통해  

작품이란 거창한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광경을 반짝 열어 보이는 일이라고 썼다. 

이우환의 조응이 생각났다.

극도의 여백 미니멀리즘은 그가 살던 일본문화와도 특히 하이쿠와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그는 누군가 읽을 수만 있다면 

그냥 하얀 캔버스를 작품으로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소음이야말로 경이로운 음악이다고 말한 존 케이지의 

연주되지 않는 음악 4분 33초처럼   

   

2021년 첫날 하이쿠를 읽다. 

파를 하얗게 /씻어서 쌓아놓은/ 매운 추위여


                                          바쇼의 기념관 (사진은 구글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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