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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26. 2016

회화나무

팽나무와 괴화 그리고 매미소리

굳이 학자수를 거론하거나 자명괴를 기억해내지 않더라도

이즈음 피어나는 회화나무 꽃은 

마음 깊은곳에 담아두기에 좋은 꽃이다.  

은은하고 고상하다. 

짙은 초록에 

그보다 조금 더 옅은 빛깔의 미색, 거의 연두와 흡사한....... 

연두라고 해도 봄철의 연두와는 확연히 궤를 달리한다. 

봄의 여린 순 연두가 사랑스러움과 치기어림을 함께 지니고 있다면

회화나무 꽃의 연두는 절제된 감정의 고급함과 우아함이락도 할수 있다. 

지니고 싶은그리 되어가고 싶은 은은함이다.  


박상진의 <궁궐의 우리나무>에는 무안군 현경면 가입리의 팽나무가 나온다. 

가장 아름다운 팽나무라는 별호가 있는 이 나무에게 

사람들은 지금도 삼년에 한번씩 볏집 옷을 해 입힌다고 한다. 

黃木根이라는 번듯한 이름을 지닌 팽나무도 등장한다. 

연한 황색 꽃을 피운다는 뜻에서 황이란 성을 지녔고 나무의 근본이란 뜻에서 

황목근이란 이름을 지니게 된 이 팽나무는 

마을 공동재산인 2821평의 많은 땅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땅 부자 이기도 하다. 

종합토지세나 지방세를 체납하지 않는 성실한 납세자라고 한다. 

2000년에는 1만 330원의 종토세를 납부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얼마나 될까,


시골 본가.. 뒤 안에 서있던 아주 오래된 팽나무는 친정아버지의 오랜 원수(?)였다. 

방풍림으로 즐겨 심는 수종답게 

그 가지나 이파리들이 본채 외에도 아래채 창고와 우사까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줄만큼 크고 거대했다. 

봄이나 여름에는 그저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문제는 가을이 시작되면서 부터다. 

팽나무 잎은 그 커다란 덩치에 비해서 상당히 작고 섬세한 모양을 하고 있다. 

입추 지나 하늘이 조금 높아지고 바람에 소슬한 기 담았다 싶으면 

다른 나무보다 유별나게 빨리 바스락 거리기 시작한다. 

나뭇잎 습기 말라가는 소리를 

가장 먼저 내는 것이 아마 팽나무일지도 모른다. 

처서 즈음이면 벌써 나풀거리며 한잎 두잎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초겨울, 그 많은 숫자의 옷을 완전히 벗을 때 까지 

날마다 친정집 마당에는 여기저기 팽나무 옷이 굴러다니는 것이다. 

하여 가을 초입 팽나무 옷벗기 시작할 때 부터 

팽나무는 아버지의 원수가 되기 시작한다. 

유별나게 깔끔하시던 아버지는 도대체 팽나무 잎 굴러다니는 마당을

용인할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이른 아침이면 앞마당 뒷마당 티 하나 없이 쓰는 것을 

일과의 시작으로 여기시던 아버지, 

마당의 선명한 비질 자욱이 바라보기 좋다고 하시던 아버지, 

팽나무 잎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아버지의 마당을 사람이 안사는 집처럼 만드는 것에 대해 

아버지의 분노는 해마다 팽나무처럼 자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도끼를 들고 그 팽나무에게로 다가가 내리치기 시작하셨다. 

도마의 재료로 가장 좋은 것이 팽나무라고 한다. 

나무의 결이 얼마나 단단했을 것인가, 

톱의 켜도 잘 들어가지 않을만큼 목질은 단단했다. 

언제가 아버지께서는 누군가 나무 죽이기에 특효약이라 했다며 

석유 한통을 통째로 팽나무 뿌리에 부으셨다. 

그러고도 팽나무는 여전히 봄이면 잎을 틔웠고 가을이면 앞을 떨어뜨렸다. 


우리 동네는 회화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것 처럼 

어느 꽃 어느 나무라도 아름답지 않으랴?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 가는 수종이 있기 마련이다. 

회화나무는 얼핏 보면 아카시 비슷해서 대개의 사람들은 나무가 지어내는 

시원한 그늘 아래를 지나가면서도 눈길조차 쉬 주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나무이다. 

봄이 한껏 깊을 무렵에서야 회화나무는 서서히 눈을 뜬다. 

이미 다른 나무들 햇살 따뜻하고 촉촉한 春雨에 

한껏 목 빼어 내며 수런거리고 있을 때 깊은 겨울잠에서 뉘엿뉘엿 깨어나는 것이다 .

그 품이 느리고 게을러 보이기보다는 

수다와 소란을 피한 우아한 겸양처럼도 보인다. 

회화나무는 궁에 심는 대표적 수종이며 선비의 집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회화나무가 진실을 밝혀주는 힘이 있어 

재판관이 송사를 진행할 때 반드시 회화나무 가지를 들고 재판에 임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회화나무에 어려 있는 

전설 같은 신비한 이야기는 참으로 회화나무를 흥취있게 만든다. 


회화나무에는 자명괴(自鳴槐)라 하여 

스스로 우는 꽃이 나무마다 꼭 한 송이씩 있다고 한다. 

중국의 고서 <태을통독(太乙通讀)>에 의하면 

까마귀가 이 자명괴를 따서 먹고 괴화의 정(精)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세계의 길흉을 미리 아는 능력을 얻어 

흉한 일이 닥칠 집을 보고 까욱까욱 짖었다고 하니 

만약 사람이 이 자명괴를 먹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신비의 자명괴를 얻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회화나무 꽃이 피기 시작할 때부터 큰 망태기를 메고 다니면서 

한 송이도 땅에 떨어뜨리거나 빠뜨리지 말고 모두 따서 모아야 한다. 

이것을 여러 그릇에 나누어 담고 사위가 고요해지는 아주 깊은 밤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면 

어디선가 은은하게 쇠붙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 소리가 나는 그릇의 괴화를 

다시 여러 그릇에 나누어 담고 밤새 지키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릇 하나에 괴화 한 송이를 담을 수 있을 때 까지 나누다 보면 

마침내 소리를 내는 괴화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이 소리 내는 괴화. 자명괴를 먹으면 영통(靈通)해져서 

천상의 일과 인간세계의 일을 모두 아는 신통력을 얻는다고 하니....... 

그러나 자명괴는 어느 순간, 

땅에 떨어져 버리므로 

그것을 얻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기록되어있으니 

그저 꿈같은 이야기런가,

아부지 돌아가시고

엄마조차 떠난 옛집에서

여전히 팽나무는 마당 굽어보고 있을것이고

며칠 지나면

불어오는 초가을 바람에 생명의 습기를 방기할것이다.


회화나무 꽃을 바라보며 걷다가보니

어디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정말 며칠전 아침부터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시작하면서 끝을 알려주는 것들이 가끔 있다.

朱夏!!

그 한가운데서

회화나무 꽃, 팽나무 잎 매미소리가 ㅡ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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