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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pr 19. 2021

게으름뱅이의 천국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시절입니다. 

벚꽃은 지는 것이 서러웠던지 꽃보다 더 붉은 진자리 꽃을 피워내고 있네요. 

신록 역시 꽃과 비견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살짝 움트는 신록의 모습과 색을 표현해줄 온전한 말은 어디 있을까요, 

단풍을 찾아 헤매고 겨울 눈이 아름다워 강원도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탄 것도 여러 번이지만 

겨울만 계속되거나 여름만의 세상이라면 삶이 훨씬 더 지루할 것 같습니다. 

자연은 최고의 벗입니다. 

사계절이 있어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다른 훌륭한 벗을 꼽으라면 제겐 그림입니다. 

그는 아름답고 온순합니다.

 같이할 때마다 계절처럼 다른 모습으로 풍성한 상상력을 주는 재능 많은 벗이기도 하죠. 

피터 브뤼헐은 16세기 네덜란드 사람입니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 훌쩍 네덜란드로 떠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득한 시절 오백년 전으로요.

 그 시절 거의 화가들은 귀족이나 신화 속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는데 브뤼헐은 풍경화와 평범한 서민들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래서 농부 화가라는 별호를 얻기도 했습니다. 

나와는 다른 사람, 뛰어난 사람, 사람이 아닌 사람들만 바라보다가

 내 이웃들이 그려진 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소박한 이웃 사람들과 삶의 양태를 그릴 때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사랑과 민주주의를 실천한 게 아닐까요? 

그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어 무척 재미있기도 합니다. 

중세 유럽인들의 삶도 만만찮았습니다. 

우리가 복숭아꽃 피어난 무릉도원을 그리듯이 그들도 이상향을 꿈꿨는데

 그게 바로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코카인(cockaigne)이란 나라입니다.

 그곳은 일을 안 해도 원할 때마다 음식이 쉬지 않고 나오는 환상적인 나라죠. 

맛있는 음식이 있어 아무런 걱정이 없는 땅,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나라, 

브뤼헐이 그린 나라입니다. 

마치 뱀 대가리처럼 생긴 통통한 소시지가 켜켜이 쌓여 담이 되어 있습니다. 

식당처럼 보이는 집인데 한 여인이 하늘을 멍히 쳐다보고 있지요.

 일해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온 세상이 음식 천지니 망연한 눈빛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녀도 음식에 취해서 뭐 다른 게 떨어지지 않을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거위는 맛있게 구워져 있고 돼지는 통통하게 살찐 몸에 칼을 차고 있습니다. 

이미 살이 베어져 있는 품새가 누구든 그 칼로 돼지의 몸을 베어 먹어도 된다는 것 같아요. 

납작한 케이크로 구어진 선인장 나무는 땅에서 바로 솟아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먼데 하얀 강은 우유가 흐르고 있구요. 

배에서 바로 우유를 뜨고 있습니다. 

껍데기가 깨진 계란은 빠른 속도로 먹는 자를 향해 걸어가려고 발이 달려 있습니다. 

오른쪽 위의 구멍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사람은 이 땅으로 들어오기 위한 어려움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맛있는 스프를 먹다가 그 안에 빠져버린 사람이 다시 또 스프 속을 빠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끝까지 수저는 들구요. 

작품의 한가운데 나무에 걸려있는 식탁에는 닭과 계란 술병과 술잔 빵과 파이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식탁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게으르던지 식탁 아래 세 사람은 기울어진 식탁에서 떨어져 내리는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특히 눕혀있는 술병은 학자의 입으로 흘러내렸겠네요.

 얼마나 배가 부르던지 옷은 잠가지지 않아 벌려있고 그래도 허리춤에는 학자를 나타내는 잉크통을 차고 있습니다.

 책은 단단히 채워 있어 그가 학자인 자신과 관련된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내 줍니다. 

그 옆 농부는 일해야 하는 자신의 도리깨를 깔고 누워있습니다. 

세 번째 빨간 망토의 사나이는 기사로 보입니다만 그가 들고 있어야 할 창을 발아래 깔고 누워 아예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맛있는 것을 일하지 않고도 실컷 먹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사는 이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농부의 눈빛도 그렇지만 가장 잘 보이는 학자의 눈빛은 살아있는 사람의 눈이 아닙니다.

 행복도 불행도 생각하지 않는, 아니 생각할 수 없는 상태의 눈빛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 생각납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사람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 

후안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죽음 뒤에 아주 아름다운 곳에 다다랐다고 해요. 

흰옷 입은 사람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실컷 먹고 즐기고....

얼마 후 그는 흰옷 입은 사람에게 말합니다.

 저에게 일을 주세요. 쓸모없는 사람이 된 느낌입니다. 

흰옷 입은 사람이 낮은 목소리 묻죠. 

일이 없는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시대가 무척 달라졌죠.

 지금은 많이 먹는 것도 재능이어서 엄청나게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돈을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물주가 꿈인 젊은이들이 많다고 하니 게으르고 탐식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적인 그림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배>만 채운다면.

 그 <배>가 꼭 음식만이 아니라 돈이나 지위 권력등, 보통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은 것들을 적용시켜 본다면,

 충분히 연상해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저두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래도 저는 배고픈 소크라테스 편에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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