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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28. 2021

20210728 염하

조르고네


덥다. 엄청 덥다.

이리 더울 수 있을까,

갈수록 나는 더위에 약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

더위가 살짝 무서워 지려고 한다.

그대여

나는 가끔 그대를 생각한다. 아니 그대를 부르고 싶다.

그러나 그대는 이 세상에 없다.

내가 부르는 그대는 아무도 아니다.

그런데 왠지 나는 가끔 그대여 그대를 부르고 싶다.

더위 탓일 게다.

가을이면 가을 탓일 게고

눈이 내리면 눈 탓일 게다.

생각해보니 그대여,

그대는 나도 모르는 나의 근원적인 그리움의 대상인 것일까? .

그리움이 사랑으로 인해 파생된 감정이라면 혹은 애절한 사랑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면

내겐 그리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 부끄럽게도 이제야 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애절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보고 싶어 눈물 흘린 적도 없고ㅡ

가장 많이 흘린 눈물은 아버지와 큰오빠를 잃고 다시 볼수 없을 거라는 애탐과 상실에 의한 눈물이었다.

눈물을 엄청나게 흘리고 보니

눈물이 꼭 슬픔을 의미하지는 않더라

눈물은 뭐랄까,

내 몸안에 있긴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우물이라고나 할까,

오란비 시간에 짬을 내 북한산에 가면 온산에 물길이 터져나곤 했다.

나는 마치 장맛비를 몇날 며칠 맞은 북한산처럼

식구들 부르세요 라는 간결한 의사 말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식구들 부르세요.

그 말은 아버지가 금방 돌아가실 거라는 이야기였다.

의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은유를 쓸줄 아는 시인이다.

그 은유를 깨닫는 순간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식구들이 돌아오고 마지막 예배가 시작되고 끝나고 그래도 우물물은 자꾸만 솟아 나왔다.

더 이상한 눈물은 딸아이를 낳고 나서다.

지금이야 그것이 산후 우울증이라는 명징한 단어가 있지만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눈물은 교활한 친구였다.

아이와 내가 단둘이 있을 때만 찾아왔다.

우리는 가장 약한 사람이었다.

아이는 갓 나서 약하고

어미인 나는 이전의 나와 아이를 낳고 난 후의 나 사이에서 한껏 투명해져

경계에 서있던 시절이엇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 시절의 잠자리 날개같은 나였다.

큰약한 사람이 작은 갓난 사람을 안고 울었다.

아침에 화분을 만지다 보니 무려 세 시간이 지났더라.

아침마다 대강 둘러보며 눈 맞춤했는데

오늘 보니 세상에 진드기가, 낙엽이, 용을 쓰지 못하고 찐득이는 이파리가,

벌레 많은 곳은 잘라버리고 작은 곳은 씻어주고 죽여주고 여기저기 낙엽 치우고 자리도 좀 옮기고

그러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났더라.

커피 한잔을 들고 나니 지병이 시작되었다.

이게 무슨 의미 있는가

나의 지병은 <의미>에 있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확신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의미를 따지는 병,

나의 아침 시간 세 시간을 식물에게 줄만한가,

너에게 주지 않고 독서를 하고 글을 썼다면 혹은 의미심장한 영화를 봤다면

혹은 누군가와 만났다면 그것들은 또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대여 내 병은 의미만 아니라 하염없음에도 있다.

일종의 습관이다.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라고 해도 좋다.

전도자의 상태라고나 할까,

이 나이 들어 허무하지 않다면

그는 인생을 헛산것이리.....생각해도 즐거울 수는 없다.

아픈 엄지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설거지할 때 가장 아픈데...그래서 식기 세척기를 주로 사용하는데

엄지가 혼자 잘난 척하지 않고 검지 손가락 있는 쪽으로 붙으면 괜찮아서

아주 열심히 숫자 많은쪽으로 붙여가며 일을 하는데

그래도 어느 순간 혼자 힘을 썼던가,

엄마가 효력을 보던 자그마한 자석을 두 군데 넣은 동전 파스를 엄지에 붙이고

그리고 밴드로 동여맸다.

그래도 편치 않다.

잊히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면

아픔도 일종의 사랑 행위다.

있는지 없는지 생각조차 안하며 살던 부분이 아프면서

바라보게 한다.

의식하게 한다.

잊지 못하게 한다.

당분간 고이 모셔야 할 듯 하다.

이십여년 가까이 키운 고무나무가

이 더위에 시달리는지

원래 그 아이는 더위를 아주 좋아한 터라

작년까지만도 새순을 번쩍번쩍 올리던데

올해는 기운 없이 지친 모양이다.

그래 사람도 가는데 너라고 가지 못하겠니.

식물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을 해도 더위만이 싱싱하게 살아남는 시절이다.

사서思緖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언제런가, 그대여




조르조네의 그림들 이상하게 하염없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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